'심의(心醫)'와 '살의(殺醫)'

'심의(心醫)'와 '살의(殺醫)'

[ 데스크창 ] 데스크창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3년 03월 14일(목) 14:35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쓴 '의약론(醫藥論)'을 보면 의원을 8가지로 분류합니다.
 
먼저 '심의(心醫)'는 '환자가 항상 마음을 편안하도록 하여 환자에게 큰 해가 없게 하는 이'입니다. '식의(食醫)'는 '입으로 달게 음식을 먹도록 조절하는 이'로서 "입이 달면 기운이 편안하고, 입이 쓰면 몸이 괴로워지는 것이다. … 지나치게 먹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식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약의(藥醫)'는 '단지 약방문에 따라 약을 쓸 줄만 알고, 위급한 때에 이르러서도 복약 권하기를 그치지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혼의(昏醫)'는 '위태한 때에 먼저 당혹하고, 급할 때 조치할 바를 알지 못하므로, 자기가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광의(狂醫)'는 자상히 살피지 않고, 약과 침(針) 쓰기를 또한 꺼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귀신을 만나도 공격하여 이길 수 있다"고 하나, 만일 무당을 만나면 술에 취하여 춤을 추는 자라고 합니다. '망의(妄醫)'는 목숨을 건질 약이 없거나 혹은 병자와 같이 의논하지 않아야 마땅한데도 가서 참여하기를 마지 않는 자이며 '사의(詐醫)'는 마음으로는 의원이 되려고 하나 의술을 잘못 행하고, 사실 온전히 의술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살의(殺醫)'는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그르다고 여기어 능멸하고 거만하게 구는 무리로써 "최하의 쓸모 없는 사람이니, 마땅히 자기 한 몸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 기록돼 있습니다.
 
의원을 분류한 것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않고 '낮게' 여기는 이, '내 탓'이라 하지 않고 '네 탓'이라 하는 이들. 아무튼 세조가 분류한 의원 랭킹 중 '심의' 다음으로 '식의'를 둔 것이 이채롭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매체입니다. 동양에서 식사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신성한 과정으로 간주됐습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곧 서로가 대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서양도 비슷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라틴어 어원 '꼬뮤니까레(Communicare)'의 어원은 '공유'입니다. 즉, '커뮤니케이션 ^ 공유'라는 등식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의미의 '공유'와 '교환'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컨데 두 사람이 식당에서 한 냄비에 담긴 해물전골을 먹습니다. 두 사람은 음식을 공유하여 먹고 있지만, 의식의 내면에는 "내가 먹는 걸 너도 먹는다. 내가 이런 맛을 느끼니까 너도 느끼겠구나"를 인지하면서, 서로 "맛있지?" "그래 맛있어"를 이야기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죠.
 
세조의 이 '의원 랭킹'을 보며 최고의 의원과 최악의 의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조는 이를 '의원이 누구에게 중심을 두느냐'로 분류한 것 같습니다. 친구들 손에 이끌려 온 중풍병자, 38년 된 병자, 혈루증 앓던 여인, 눈 먼 자 등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 진료한 예수님처럼 상대의 마음을 먼저 편안케 한 '심의'와 자기중심적 사고로 상대를 능멸한 '살의'의 '의'자 대신 '지도자'를 대입시켜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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