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총회를 가다, 1912년 그때 그 시절

제1회 총회를 가다, 1912년 그때 그 시절

[ 교단 ] 제1회 총회를 가다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2년 09월 14일(금) 17:37

<편집자 주> 본보는 총회 창립 1백주년을 맞아 1백년 전 총회 창립의 감격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1백년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1912년 9월 1∼4일 평양신학교에서 열렸던 제1회 총회의 가상 참관기를 기획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록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내용임을 밝힌다.

   
1912년 9월 1일 평양신학교에서는 전국 7개 노회에서 파송한 총대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초의 총회가 열렸다. 

1912년 8월 31일. '이제 하루만 지나면 역사적인 총회가 열린다니…' 원두우(元杜尤, H. G. Underwood), 기일(奇一, J. S. Gale)목사, 함태영, 김규식장로 등 경기충청노회 총대들과 함께 평양으로 올라온 서경조목사가 감개무량한 듯 혼잣말을 되뇌었다. 중국 심양에서 존 로스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고 1882년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번역했던 젊은 날의 기억, 5년 전 독노회가 창립할 때 장로교회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평양의 가을 하늘은 언제나처럼 눈부시게 맑고 푸르렀다. 평양장로회신학교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다. 경기충청 남평안 북평안 황해 전라 경상 함경… 전국 7개 노회에서 모여든 총대들이 삼삼오오 입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소 무거워 보이는 구식 양복을 입고 있는 선교사들 사이로 두루마기 한복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총대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각기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끼리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담소하는 가운데 이미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더러는 기차를 타고 왔지만 말을 타고 온 사람, 3~5일 동안을 걸어서 온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린 지 46년 만에 드디어 조선 총회가 조직된다는 감격과 함께 2년 전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비분강개가 서려 있었다. 총대 가운데는 이미 잘 알려진 애국지사와 독립투사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 민족을 위해 이 장로교 총회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평양경창문안여성경학원 성가대가 자리를 잡고 순서맡은 이들이 앞자리로 나와 착석했다.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던 이눌서(李訥瑞, W. D. Reynolds)목사가 10시 30분이 되자 강대상 위로 등단했다. 굵은 금테 안경 너머로 회중을 내려다보던 이눌서목사는 천천히 그러나 결코 서투르지 않은 조선말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목사님 장로님 여러분, 오늘은 매우 기쁜 날입니다. 드디어 조선 반도를 단일 교구로 장로교 총회가 조직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을 선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전 총대가 일제히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경성신보와 대한예수교회보의 기자가 사진기(寫眞機)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어 이눌서목사가 히브리서 12장을 읽고 '장자회(長子會)' 제하로 강도(講道)함으로 개회한 후 마포삼열목사(S. A. Moffet)가 떡을, 원두우목사가 포도즙을 가지고 축사함으로 성찬례를 거행했다. 정회 후 남평안노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먹고 다시 모인 총대들은 김석창목사가 로마서 8장을 통해 '나는 괴롭다'는 주제로 강도한 후 첫째날 일정을 마쳤다.
 
둘째날 회장이 총회 취지를 설명한 후에 서기가 회원 점명한 결과 평양신학교에 모인 총대들이 목사 96명, 장로 1백25명으로 총 2백21명이었다(조선인 목사 52명, 외국인 목사 44명). 만국장로회연합총회, 미남장로회, 미북장로회 총회, 영국 캐나다 호주장로회 총회, 중화관동교회에서도 조선의 총회 창립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회장의 인도로 길선주목사가 문안 인사를 보내온 해외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회중이 투표로 임원선거한 결과, 신임 회장에 원두우, 부회장 길선주, 서기 한석진, 부서기 김필수, 회계 방위량(方緯良, W.N.Blair), 부회계 김석창으로 1회 총회를 이끌어갈 일꾼들이 세워졌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후원 덕분에 지금 제주에는 믿는 자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녁 7시 장대현예배당에서 열린 예배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1907년 독노회 창립 기념으로 제주선교사로 파송된 이기풍목사였다. 부회장 길선주목사와 서기 한석진목사 등 동기생들은 이기풍목사의 생생한 제주선교 이야기에 연신 눈물을 훔쳤다. "교인 중에 권능을 받아 병고치는 자 많고 전도인이 전도함에 문이 크게 열렸다. 직분들이 화합하고 교인들 신령하고 열심히 있다"는 전도국 위원의 보고도 이어졌다. 제주 뿐만 아니라 일본 동경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海蔘威)에서의 전도 사역에 대한 보고도 이뤄졌다. 블라디보스톡으로 파송됐던 최관흘목사는 부득이하게 사역이 정지됐으며 "현지 관리에게 핍박당해 갇히기를 한달동안, 이수(移囚)되기를 세 번이나 하는 등 그 고생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핍박의 소식에도 불구하고 해외 선교에 대한 장로교인들의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 총대가 "독노회를 시작할 때 제주선교사를 보내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했던 것처럼 총회를 시작할 때에도 외국 전도를 하자"며 중국 산동에 선교사 파송을 제안했고, 1년 중 한 주일을 정해 외국 전도할 뜻으로 기도하고 힘써 연보하자는 청원도 있었다.
 
노회마다 보고를 통해 국내 전도의 열기를 전해오기도 했다. 황해도노회에서는 "2년간 수재로 여러 교회가 곤란을 당했지만 믿음이 조금도 이즈러짐이 없고 전도할 마음은 더 많아져서 전도인을 많이 세웠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렸고 경상도노회에서는 "앞으로 신학도를 많이 배출하고 전도회를 잘 조직해 교회 없는 곳에 전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본지방 전도위원의 보고 시간에 총대들은 "일할 사람 없는 노회와 일할 사람 있는 노회가 서로 서로 도와 사경회나 특별부흥회를 열기로" 복음전파의 뜻을 모았다.
 
"의장!" 4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회를 앞둔 마지막 날 회중으로부터 긴급 동의안이 나왔다. "총회가 모인 것을 총독부에 통지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안은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고 조선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원두우목사가 에베소서 3장 14~21절을 읽고 마포삼열목사가 기도함으로 제1회 총회는 끝이 났다. 총대들은 다음 총회 장소인 경성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각 지역으로 돌아갔다. 그해 장로교 목사는 1백28명, 장로 2백25명, 교인 12만7천2백28명, 예배처소가 2천54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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