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 미운 오리 새끼

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 미운 오리 새끼

[ 말씀&MOVIE ] 영화-미운 오리 새끼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07일(금) 15:56
[말씀&MOVIE] 미운 오리 새끼 (곽경택, 드라마, 15세, 2012)

곽경택 감독은 '친구' 이후로 줄곧 남자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왔다. 남자들의 거친 삶과 내면의 세계를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서 재현했는데, 그의 열한 번째 영화 '미운 오리 새끼' 역시 대한민국 남성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군대 이야기다. 직접적인 배경은 6월 항쟁이 있었던 87년대이나 아마도 80년대에 군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나 심지어 여성이라도 시대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제목은 안데르센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이다. 동화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패러디라고 생각하며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80년대 격동의 한국적인 정치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꿈과 좌절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군대 이야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고, 끈끈한 부자 관계를 읽을 수 있으며, 성장 이야기로도 독해가 가능하다. 때로는 정치 사회 비판적인 안목에서 조명될 수도 있다. 대단히 뛰어난 내러티브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영화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동화에 관심을 돌려보자. '미운 오리 새끼'는, 오리와 함께 부화한 백조가 오리들과 함께 살면서 미운 오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지만, 성장해 나가면서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날개가 있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오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백조임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부조리한 현실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갇혀 살지 말고 현실의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갈 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곽경택 감독은 동화의 주제이며 교훈을 군대 이야기로 패러디 하면서 당대의 정치사회 현실과 정체성의 문제를 결합시켰다. 다시 말해서 당시는 혼란의 시기였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앞으로 무엇이 되겠는지,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없고 그럴만한 형편도 되지 않는 시대였다. 그저 하루하루를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는 일이 최선일 때였다. 유신정권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민주화의 봄이 온 듯 했지만, 곧 이어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 하며 등장한 5공의 세력들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절망의 시대, 술 권하는 사회, 바로 이런 시대에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 시대의 아픔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그저 미운 오리 새끼로 사는 것일 뿐이다. 현실에서 도피하든가, 피가 나도록 싸워 죽든가, 아니면 회색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지를 알 수도 없고 그저 막막한 세월만을 보낼 뿐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바로 이런 정치 사회 상황 속에서 정체성 문제를 군대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게다가 6개월 방위, 신의 아들이 아니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다는 방위병을 전면에 내세운다. 방위병 낙만이는 빽이 있어서 방위로 근무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전직 사진기자로 활동하다가 전두환이 통치하던 시절에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이 된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방위가 된 것이었다. 엄마는 이혼하여 미국으로 떠나 있다. 현역병에 의해 소외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헌병 방위로 근무하면서도 군인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사역을 해야 하는 신세다. 게다가 훈련병 동기이면서 친구처럼 지냈던 현역에게 방위라는 이유로 결정적인 순간에 모멸감을 당한다. 그렇다고 낙만이가 현실에 충실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군대의 논리대로 헌병으로서 살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자신의 왜곡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희망이 있다면, 복무기간을 조속히 마치고 엄마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반공이데올로기에 부딪혀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도대체 이런 현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무엇이 될 것이며,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막막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밝은 미래를 제시한다. 정신이 나가 거리를 헤매는 혜림이가 누구의 아기인지도 모를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을 본 낙만은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린 것이다. 미친 혜림이의 몸을 통해서 난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 모르듯이, 정신 나간 아버지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백조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갈 그날을 고대하며 다만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갈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까지다.
 
기독교인의 정체성 문제는 세상이 생각하는 방향과는 많이 다르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에 좌우되거나 구속되지도 않는다. 우리의 참 모습은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 있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고, 그의 약속을 소망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한, 우리는 그 안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또 현재 무엇이 아니라고 해서 절망할 이유도 없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순간에라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도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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