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민생행보를 그린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세종의 민생행보를 그린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 말씀&MOVIE ] 영화-나는 왕이로소이다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20일(월) 10:20
[말씀&MOVIE] 나는 왕이로소이다 (장규성, 코미디, 역사 판타지, 12세, 2012)

총선과 대선 기간은 후보자들이 소위 민생행보로 바쁘게 보내는 때이다. 서민들의 애환을 듣고 그들의 삶의 진상을 파악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인데, 실상 서민들에게는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을 알리는 일로 여겨질 뿐이다. 쉽게 말해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정치 지원자들이 제시한 거액의 재산 신고나 정치권력을 얻은 후에 행하는 일들을 통해 알게 되는 일이지만, 대부분 그들의 삶은 결코 서민적이지 않았고, 불법투성이며 또 서민의 실상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민적이지 않다고 비난받을 때마다 등장하는 화두는 '과거에 나는 어려웠다'는 식이다. 어렵게 살아보지 않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여정에서 힘겨운 때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또 어떤 정책을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당선되기만 하면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역겹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민생행보라는 식상한 쇼에 국민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 정치인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비록 처음부터 원했던 일은 아니지만 우연히 시작된 충녕의 민생행보를 그리고 있다. 비록 코미디 판타지의 형태이긴 해도 정치를 풍자하는 요소가 많아,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 내용은 이렇다. 충녕(주지훈 분)은 워낙 책읽기를 좋아하던 터라 정치에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형을 제쳐놓고 세자로 등극하는 일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세자의 길을 가야만 했을 때, 충녕은 3개월 후에 있을 세자 즉위식을 피해 궁에서 도망할 생각을 한다. 마침 궁으로 끌려간 주인 아씨를 찾아 궁 담을 넘어서려던 노비 덕칠과 마주친 충녕은 그의 옷을 바꿔 입고 거리로 나선다. 공교롭게도 충녕과 노비는 얼굴이 닮았다(주지훈의 일인이역). 덕칠은 궁에서 충녕의 역할을 하고, 충녕은 노비의 행색을 하고 궁 밖을 배외한다. 숱한 좌충우돌의 이야기 속에서 충녕은 백성들의 삶이 어떠하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백성들의 피폐한 민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의 허망한 실상을 깨닫는다. 그야말로 그의 민생행보는 왕으로서 진정 무엇을 해야 백성을 위한 정치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자신의 할 일을 깨닫고 궁 안으로 들어간 충녕은 조선과 조선의 왕을 우습게 여기는 명나라 사신의 후안무치를 혼내주고, 정치적인 야욕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친다는 이야기다.
 
세종대왕이라는 워낙 큰 역사적인 인물을 팩션도 아닌 순수 판타지와 코미디로 다룬다는 상상력 자체가 도발적이라 처음에는 영화의 이야기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핵심은, 한글을 포함해서 수많은 발명품을 업적으로 남긴 세종대왕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감독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읽어내는 데에 있다. 정치권력과 치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서 어떻게 백성들의 편의를 돕는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충녕이 어떻게 조선을 강력한 나라로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한글의 제정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극복해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수많은 발명품에 대한 동기와 국토확장과 왜군 토벌에 대한 열정 역시 비슷한 맥락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박 겉핧기 식의 민생행보로부터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결국 감독의 관심은 바로 민생행보의 진정성에 있었다. 비록 우연히 일어난 신분의 변화였지만, 노비로 살아가면서 백성들의 애환을 피부로 느껴보았을 때, 비로소 백성을 위한 정책이 가능했다는 메시지다. 실제로 충녕이 그런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을 했든 하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백성을 위한 정치에 뜻을 두고 또 실천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시 말해서 민생행보를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표를 얻기 위한 가식이 아니라, 국민들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고, 그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그리고 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정치를 진정성 있게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은 책을 좋아했던 학자였고 정치적인 경험은 없었지만, 그런 점을 책잡으며 세종이 어떻게 정치를 알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세종은 오히려 왕의 도리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정권을 얻으려는 작업이 아니라 국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실천하는 일임을 알았기에 자신 있게 역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적인 경력을 앞세우며 화려한 정치이력을 자랑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물론이고 민생행보를 빌미로 표를 얻기 위한 쇼는 그만둘 것이며, 진정한 정치의 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존중하며, 개인의 야심을 앞세우지 않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계 지도자를 뽑는 선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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