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정책

[ 총회1백주년 ] 통일시대의 교회과제

정종훈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23일(월) 17:34
총회1백주년 기획

과거 분단시대의 공과

우리가 민족분단의 아픔을 지닌 채 분단시대를 살아온 지 67년이 되어 간다. 우리 민족의 분단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주체적 역량이 미흡해서 생겨났다. 분단 이래 동서 이데올로기 냉전의 한 가운데 있던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아직도 치유하지 못해 긴장과 갈등, 대립의 관계에 있다. 분단시대의 한국교회는 일제하에 범한 순교자적 신앙의 결여와 신사참배 등의 부끄러움을 정리하지 못함으로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의 비민주적인 행태 앞에서 양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분단시대의 한국교회는 원수사랑의 덕목을 외면한 채 반공, 승공, 멸공의 논리에 머물러 이데올로기에 대한 객관적이고 책임있는 비판을 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또한 분단시대의 한국교회는 물질적으로 잘 살아보자는 천민자본주의의 축복관에 머물러 경제적 양극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물질을 기꺼이 나누는 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실천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에 매몰되지 않은 소수의 예언자적인 목회자와 평신도들, 일부 교회에 의해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는데, 그 일에 우리 교단의 인사들은 주도적이었다.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에 김형태목사, 서광선교수, 이삼열교수, 노정선교수 등 우리 교단의 적지 않은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통일운동의 이정표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 후 우리 교단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희년 준비를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진행된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남북한 인간띠잇기 대회'에서 보수와 진보, 각 교단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일치운동에도 앞장섰다. 또한 우리 교단은 총회적으로나 노회적으로 또는 개교회별로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에서 큰 몫을 담당해 왔고, 평양봉수교회 신축예배당 건축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져 2008년 7월 16일 헌당하기까지 했다.

현재 남북한의 상황

북한동포들은 뿔이 달린 도깨비들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람들도 아니다. 상종할 가치가 없거나 상종해서 안 되는 치한들도 아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악인들도 아니다. 그들이 비록 무신론의 사회 한 가운데 존재하고, 핵무기로 무장하고, 3대 세습권력자 김정은의 잔인무도한 지배 아래 있을지라도, 그들은 분명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형제자매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동포를 일방적으로 원수화하거나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와 북한동포는 공동의 평화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북한동포가 평화롭지 않은데 우리만 평화로울 수도 없다. 하나님의 용서로 하나님 자녀가 된 우리가 먼저 북한동포를 품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분단 1세대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과 피눈물이 여전히 하늘에 사무치고 있다. 탈북새터민들이 가족과 친지, 고향을 떠나 전혀 낯선 삶의 자리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남북은 더욱 이질화되었고, 분단의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분단의 과거로부터 멀어질수록 남북통일의 열차는 가속도가 붙어 통일의 정거장에 정착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정권은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다가 앞의 정권들에서 대화적이었던 남북관계를 극악한 적대적 관계로 만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남북관계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사격 사건 이래로 완벽한 단절 상태에 있다.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조차 쉽지가 않다.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관계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무조건 만나 신뢰구축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합의보다는 남북정상 간에 이미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 보다 쉽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래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과제

총회창립 1백주년을 맞이하며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보자. 첫째로, 대북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개교회가 경쟁적으로나 과시적으로 하지 말고, 정책적인 차원은 총회가, 집행하는 차원은 노회가 효율적으로 분담해서 감당해야 한다. 지금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심판날에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어진다. 죽어가는 형제자매 이웃은 일단 지혜와 힘을 모아 살리고 볼 일이다. 둘째로, 남남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신앙과 일치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보수주의나 진보주의, 어떤 이데올로기와도 등치될 수 없고, 모든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뜻 신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라면, 다름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서로 상호보완의 기회로 삼도록 이끌어야 한다. 셋째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아와 아사의 위기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도 인권의 문제이고, 독재정권 하에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것도 인권의 문제이다. 이 둘의 문제는 양자택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선순위를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른 전략적인 측면은 정치인들의 몫이지만, 하나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과 상관관계에 있는 인권의 문제는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몫이다. 넷째로, 북한에 두고 온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통일의 과정에서 옛 재산권의 문제는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보았듯이 인간갈등의 원인이자 통일비용의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온 교회나 지역노회가 공적인 포기를 선언하고, 다음으로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월남한 가족들이 포기하도록 지도하고, 국회에 재산권포기의 입법을 청원한다면, 통일운동이 불타오르는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다섯째로, 탈북새터민들과 더불어 사는 훈련을 해야 한다. 북한을 가장 잘 아는 남한사람이자 남한을 가장 잘 아는 북한사람의 양면을 지닌 탈북새터민들은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통일된 나라에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들이 확실히 정착해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기까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인간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요청된다. 끝으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반대하고 군비를 축소하는 평화주의를 주장해야 한다. 전쟁은 정치의 완전한 실패이다. 양극화 세상에서 군비를 축소하고 복지로 전환할 때, 삶의 질은 배가 된다. 예수께서 산상교훈과 십자가에서 보이신 교회전통의 중요한 축인 평화주의를 한반도에서 성취해야할 때이다.

우리의 각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체제내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사명에 헌신해야 한다. 우리의 통일은 갈라졌던 남과 북을 재결합시켜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문화, 새로운 사회구조와 대안, 새로운 공동체와 교회상을 창출하는 창조적인 통일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고,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이다. 은혜의 선물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은 감사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이제 우리는 자기 삶의 자리에서 평화와 통일의 도구로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정종훈교수(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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