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을 건져야 할 때도

넋을 건져야 할 때도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최원탁목사
2012년 05월 25일(금) 11:38

어느날 오후였다. 집사님 한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사택의 문을 두드리며 불렀다. 급히 문을 열고 나가 보았더니 "이일을 어쩌면 좋아"하면서 불안과 절망에 몸부림치며 울고 계셨다. 몸을 부축여 의자에 앉힌 후에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일주일 전 외손녀가 방죽에 빠져 죽었는데 방죽의 주인이 논일을 마치고 해질 무렵에 방죽을 나오는데 죽은 손녀가 나타나서 발목을 잡으며 "할아버지 발 씻고 가세요"하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으로 인하여 방죽 주인이 찾아와서 방죽에 딸린 논을 사든지 아니면 손녀의 넋을 건져가든지 하라고 했다며 넋을 건져 달라는 것이다.
 
마음 아파하는 집사님의 사정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까? 넋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넋을 건질 것인가?
 
신학대학에서 배운 일도 없고,실습해 본 일도 없고,경험도 해보지 않았으며,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처방을 받아 본 일도 없는 넋 건지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솔직하게 못한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명쾌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앞이 캄캄했다. 그렇지만 순간 떠오르는 영감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절망에 몸부림치는 집사님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말했다. "집사님,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내일 넋을 건져 드리겠습니다. 울음을 그치시고 방죽 주인에게 가서 말하세요. '내일 우리 목사님이 오셔서 넋을 건져 주신다고 했다'고".
 
위로와 소망을 주면서 돌려보낸 후 큰 고민의 짐을 지게 되었다. 고통스러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넋을 건질까? 밤새도록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새벽기도회 나가 기도하던 중에 "방죽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소녀의 넋아 물러가라"고 명령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하고 나무십자가를 만들어 가지고 가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열분의 권사님들과 함께 문제의 방죽에 가서 방죽 주인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예배를 마친 후 만들어 가지고 간 십자가를 방죽 가장자리에 세우면서 "어르신 이제 넋이 건져졌습니다. 오늘,해질 무렵 방죽을 지나가 보세요! 소녀가 '할아버지 발 씻고 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주일날,방죽 주인이 큰 아들내외,작은 아들내외 손자손녀 등 가족 모두를 데리고 교회로 나오셨다. 반갑게 영접하고 말씀을 들어보니 해질 무렵 방죽을 몇 차례 왔다 갔다 해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모두 교회 다니기로 결정하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넋을 잘 건지는 목사'란 소리를 들었다.
 
목회 현장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일들이 때론 무거운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예측 불허한 상황을 만났을 때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건을 통해 더 성숙한 사명자로 세워 가시는 성령의 역사임을 깨닫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이성적 판단으로 불가능한 일을 만났을 때와 황당한 일을 만났을 때 믿음의 기도로 해결해가는 행복함 속에서 하나님 사람의 신령함을 더 노래하게 된다.
 
양무리의 목자로서 목양 자체가 희생적인 일이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일어날 아픔들에 대해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새 희망을 보기도 한다. 목자는 오직 양을 위한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방향보다도 양을 돌보는 삶의 방향으로 변화될 때 행복함을 누리는 것이다. 양의 울음이 목자의 눈물이며,양의 근심이 목자의 걱정이며,양의 아픔이 목자의 고통이며,양의 기쁨이 목자의 행복이라고 할 때 목사는 교우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최원탁목사/전주 현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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