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인류공동체 회복을 위한 도구

교회, 인류공동체 회복을 위한 도구

[ 선교 ] 제6차 뱅쿠버 총회(1983년)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2년 03월 20일(화) 17:59
그동안 WCC 총회는 유럽에서 두 차례(암스텔담, 웁살라), 그리고 북미(에반스톤)와 아시아(뉴 델리), 아프리카(나이로비)에서 각각 한 번씩 열렸고 6차 총회의 개최지는 다시 북미로 돌아왔다. 개최지는 캐나다의 뱅쿠버. 6차 총회에는 모두 3백1개의 회원교회로부터 8백4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뱅쿠버 총회에서는 총대의 구성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 여성 30%, 청년 15%, 평신도 46%가 되었고, 특별히 남반구 교회들의 참여가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회원교회의 대륙별 구성을 보면 북미 1백58개, 서유럽 1백52개, 동유럽 1백42개, 호주ㆍ뉴질랜드 26개, 아프리카와 아시아 각 1백31개, 중동 53개, 남미 30개, 태평양 22개, 카리브 19개 등이다.

6차 총회가 열렸던 1983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자. 1977년에 파키스탄에서는 민주적인 정권이 다시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 1979년에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반미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니카라과에서도 독재자 소모사가 추방됐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아프가니스탄의 대소항쟁이 전개되었다. 1980년에 살바도르 독재정권은 로메로 주교를 암살했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독재에 의해 고통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짐바브웨가 백인독재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이 과정에서 WCC는 짐바브웨 해방 전선을 지원했다. 한국에서는 신군부에 의한 광주시민 학살이 일어났다.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1982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5차 나이로비 총회 이후 WCC 총회 가이드라인 위원회는 향후 활동 방향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고 교제를 하고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PSS)를 추구하며 △교회일치와 인간 공동체 갱신의 관계 연구와 △진정한 공동체를 위해 갱신과 교육 강화에 맞췄다. WCC는 이에 따라 1977년에 종교 간 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1982년에 리마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BEM 문서와 리마예배서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박사는 WCC가 웁살라 총회 이후 '신앙과 직제'를 약화시키면서 사회정의와 교회일치를 연결시키는 경향성을 반대했다. 1982년에 WCC 중앙위원회는 '에큐메니칼 확언'을 채택했다.
 
뱅쿠버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이었다. 이 주제는 성령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독론적 신앙고백을 사용했다. 당시 시대적 징표는 '생명'이었다. 총회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 등을 생명을 죽이고 손상하는 죽음의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기독론은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대교회 이후로 성육식 기독론과 십자가 기독론 사이에는 긴장이 있었다. 바울은 십자가의 빛으로 부활을 이해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은 성육신-십자가-부활을 연속적으로 연결시키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교회 일치론과 관련해서 뱅쿠버 총회에서는 'BEM문서'를 교회일치의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가시적 성례적 친교'를 교회일치와 인류공동체에 대한 성례적 비전을 열어주는 징표로 사용했다. 교회란 회복할 인류공동체의 표징이고 인류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도구라고 역설했다.

(자문:서울장신대 정병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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