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넉넉한 만나의 밥상

모두가 넉넉한 만나의 밥상

[ 생명밥상 ] 기독공보 생명밥상 캠페인

정경호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0일(월) 17:10

 
구약성서 출애굽기 16장에 나타나고 있는 만나의 밥상 곧 '메추라기와 만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히브리 민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희망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데 광야의 갈 3일도 채 되지 못하여 우린 모두 애굽 땅에서 배불리 먹었는데 이제 광야에서 굶어죽게 되었다는 불평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을 내려 히브리 백성들을 먹이신 사건이 곧 만나의 이야기이다. 1-18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이 먹을 만큼,식구의 수대로 한 각각 오멜씩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두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으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었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거둔 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명하셨으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음날을 위해서 남겨 두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는 모두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괴연 이러한 만나의 밥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만나의 밥상이란 밥상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만나의 밥상의 주체는 출애굽후 광야의 삶을 가능하도록 공급하신 분은 애굽제국의 바로 왕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나의 밥상의 주체는 돈을 신으로 섬기는 물신(物神,Mammon god)도 정치의 힘이나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도 아니며 수익을 많이 올리는 대기업도 거대한 초국적 농산물 기업이 아니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만나의 밥상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생명되게 하시어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둘째,만나의 밥상이란 모두가 평등한 공정한 밥상이며 그리고 모두에게 넉넉한 밥상이라는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18절에 나오는 말씀으로써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평등의 밥상이기에 평등한 분배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나의 밥상은 각 사람이 가져간 양은 서로 달랐으나 모두가 넉넉한 만족한 밥상이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특히 신자유주의의 경제세계화가 보여준 밥상은 많이 가진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반면에 적게 가진 자는 살인적인 빈곤으로 신음하고 있는 양극화의 밥상이요 불평등한 밥상이다. 그렇기에 만나의 밥상은 우리들에게 모두가 함께 즐겁고 신나며 모두가 함께 넉넉한 밥상이 되어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만나의 밥상은 약자보호 및 약자우선의 밥상이며 상생의 밥상이다. 적게 거둔 자에게 규제가 전혀 없는 반면에 많이 거둔 자에겐 남은 양식이 썩는 규제가 있다는 것은 사회ㆍ경제ㆍ문화ㆍ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하며 지극히 약한 약자에게 먼저 우선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약자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악자보호의 경제요 지극히 낮고 작은 자들을 봉사하며 섬겨나가는 경제이어야 만나의 밥상이요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밥상인 것이다. 만나의 밥상의 원칙은 하나님이 그냥 주시듯 우리들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만나의 밥상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며 자신이 가진 것 아낌없이 함께 나누며 섬기는 나눔과 섬김의 밥상이 만나와 메추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나의 밥상이란 모두가 하늘사랑이 충만하여 평등하고도 공정하며 모두가 온전한 삶을 살아기야만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인 것이다. 만나의 밥상은 바로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의 생명ㆍ정의ㆍ평화의 삶인 것이다.

정경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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