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서당>한국교회 현대사=에큐메니칼 역사

<에큐메니칼 서당>한국교회 현대사=에큐메니칼 역사

[ 선교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1년 10월 20일(목) 08:53
   
▲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린 WCC 창립 총회. 우리나라의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창립회원으로 참여해 1차 총회 때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WCC 홈페이지

한국교회의 현대사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린 WCC 1차 총회 때 회원으로 가입했을 정도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며, 제3세계 교회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1953년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나뉘는 아픔을 겪게 되고 기장 총회는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린 WCC 2차 총회 때부터 독자적인 교단명으로 회원권을 가지게 된다. 1959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현재의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된 일도 WCC 가입이 문제가 되면서 촉발됐으니 한국교회의 현대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사는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관심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8년 열린 WCC 창립총회에는 김관식, 엄요섭목사가 참석했으며, 1952년 열린 IMC 세계대회에 유호준, 김인준목사가, 1958년에 열린 IMC 6차 총회에도 한경직목사와 유형기목사 등이 참석하는 등 초창기 기구적 에큐메니칼 운동에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교회가 WCC 창립 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이후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험난한 시절을 보낼 때 세계교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동인을 제공했고, 1984년 10월 일본 도잔소에서 '동북아의 평화와 정의'를 주제로 열린 '도잔소회의'를 WCC가 주최하면서 평화와 통일이 교회의 선교적 과제라는 대명제를 역사에 남기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분단 후 처음으로 남과 북의 교회 대표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던 일도 WCC를 통해 성사됐다.
 
물론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서 토종 에큐메니칼 운동은 1924년 9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전신인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창립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창립 이후 교회협은 1959년에 에큐메니칼선언을 발표했으며, 3선 개헌 반대하는 교회의 성명(1969년 9월), 산업선교 신학선언문 제정(1978년 9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선언(1988년 2월) 등 모든 것이 통제되던 시절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내린 양심의 소리를 쉼없이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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