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을 통해서 본 교회 리더십

안철수 현상을 통해서 본 교회 리더십

[ 기고 ]

박상기목사
2011년 09월 27일(화) 16:20
근자에 서울 시장에 출마를 결심하는 것만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소위 안철수 신드롬 현상은 비단 정치계를 초월하여 사회 전반에 커다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가 갈망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분출되었다는 면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분은 이미 알려진 대로 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기업을 창업하여 성공적으로 경영했던 CEO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한 창 주가를 올리던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주식까지도 직원들에게 분배한 후 물러나서 세상에 좀 더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도미하여 공부를 계속한 것도 보통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상식을 초월한 기이한 모습이다.

그런데 왜 그의 등장에 사람들이 일순간 과도할 만큼의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화려하고 비범한 이력이나 성공에 대한 대리만족 때문일까? 논리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언변이나 준수해 보이는 외모 때문일까? 아니면 앞을 내다보는 남다른 혜안을 가진 미래지향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아마도 그에게 쏠리는 관심의 진짜 이유는 자신의 생각, 철학, 소신에 따라 단순하게 행동하는 진실과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겸손한 태도와 깨끗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이 같은 현상을 대하면서 한편 새로운 리더십의 흐름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와 함께 이 시대의 아픔이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현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약삭빠르게 이해득실을 따져보느라 혈안이 되어있고 가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위 찻잔 속에 폭풍일 뿐이라며 폄하하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리더십에 대한 갈망과 기존 리더십에 대한 경고가 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같은 관점에서 교회의 리더십을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교회 리더십은 좁게는 교회라는 제한된 공동체에서 넓게는 사회 전반에 그늘지고 왜곡된 것들을 바로 잡는 일에 앞서서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 물론 세상 리더십과 교회 리더십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선은 정권을 잡고 정당의 이상을 실현 시키는 것이 세상 리더십이라면 교회의 리더십은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물리적인데서 영적으로 변화시켜서 참된 인간다움을 실현하는데 있다. 또한 세상 리더십이 수직적인 것인 반면 교회는 수평적인 리더십이라는 것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더십의 정신이나 위치 면에서도 세상 리더십과 교회 리더십에는 비교할 수 없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즉 교회 리더십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세상 리더십에 영향을 주어야 할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꼬집으신 것처럼 교회의 리더십은 세상 리더십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교회 리더십은 세상 리더십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 같은 현상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교회에 대한 이질감과 불신 속에 짙게 배어있다. 지나친 비관일지는 몰라도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아무리 심각한 구호를 외쳐도 세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상은 결코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오늘 교회는 안철수교수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갖는 의미와 동력이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내적인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안 교수와 교회 리더십을 대표하는 목회자와 진실게임을 한다면 세상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감이 오지 않는가? 일개인의 성향이나 낮은 자존감의 문제일 뿐이라고 덮어버릴 수 있을까?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자가진단과 처방이 시급하리라 생각된다. 더 이상 세상은 기능적인 리더십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즉 믿는 대로 행하고 옳다고 여기는 것에는 결코 타협하거나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겸손한 태도가 계층을 초월해서 바라는 리더십의 이상이며 그 같은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이 같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 같은 이미지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새삼 그리스도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되짚어본다. 바로 사랑이며 겸손이며 진실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초월한 덕목들이다. 그 같은 정신을 세상에 실현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며 예수님은 그 같은 삶을 소금과 빛으로 명명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야만 하는 사명을 지녔다. 그 같은 삶의 가치를 목숨처럼 지키고 '작은 예수'로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과 교회가 이렇게도 많은데 세상의 눈과 마음이 그저 보통사람인 대학 교수 한 사람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이 이 시대의 아이러니요 교회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구약신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 국제 랭함 파트너십 대표는 교회의 교회 리더십이 빠지기 쉬운 우상으로 권력과 성공, 탐욕을 지목하고 있다. 그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그의 백성들을 권력과 성공, 탐욕의 우상에서 돌이키라고 요청하신다"고 말하며 그 같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HIS' 즉 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으로 살아가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는데 오늘 교회의 리더십이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적절한 지적이라고 확신한다.

바야흐로 총회와 노회 등 각 교단의 중요한 회의 시즌에 접어들었다.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현안들과 비전 제시들이 물결을 이루게 될 것이다. 걱정인 것은 비본질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들로 목소리를 높이고 핏대를 세우는 추태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에서도 지탄 받는 소위 줄 세우기와 분별력을 잃어버린 줄서기가 반복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교회를 대표하는 리더십이 모인 김에 세상이 요구하는 만큼이라도 채워지도록 진실과 정의 그리고 겸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구원해야 할 세상이 더 이상 실망하여 등을 돌리지 않도록.

박상기 / 목사ㆍ고잔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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