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

믿음의 눈

[ 목양칼럼 ]

조건회목사
2011년 09월 20일(화) 11:04
1986년 11월24일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로이 웨스틴'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다. 그는 수석(壽石) 전람회에 참석했다가, 마음에 드는 진기한 돌을 발견했다. 그런데 푸르고 회색 빛깔을 띤 이 돌에는 15불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주인에게 값을 깎자고 흥정을 하여, 결국 10불을 주고 그 돌을 사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 돌을 자세히 보는데, 이상한 예감이 들어 그 돌을 정밀 감정시켰다. 그런데 그 감정결과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 돌은 보통 돌이 아니라, 자그마치 1천9백 캐럿 '사파이어' 원석으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파이어였던 것이다. 웨스틴이란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파이어를 단돈 10불에 샀던 것이다. 그러나 돌의 원래 주인은 이 귀한 보물을 헐값에 팔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그 돌이 보물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그렇게 엄청난 보물인줄 알았더라면, 분명히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고 어리석게도 보통 돌인 줄로 생각하고 단돈 10불이 팔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과 속에 있는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에 있는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사과 속의 씨앗'은 현재를 말하며, '씨앗 속에 있는 사과'는 미래를 말할 것이다. 똑같이 한 개의 사과를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한 개 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사과 속의 씨를 보면서 미래에 열릴 수 천, 수 만 개의 사과를 본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별 볼일 없게 보인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사람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자. 현재만 보지 말고, 영광스럽게 펼쳐질 미래를 보자. 단면으로 끊어서 모든 것을 생각하지 말자.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자.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실패했다고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좀 성공했다고 거들먹거리며 교만에 빠지지 않는다.

미래학과 종말론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위 미래학이란 과거에 있던 일들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해서 앞으로도 또 이런 일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학의 결론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말론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저 앞에 있는 종말론적인 약속을 믿고 그것으로부터 현재를 생각한다. 그런고로 종말론적 역사관은 항상 소망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현상만 보지 말고 보다 깊게 보다 멀리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볼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디 칸은 "사람은 두 종류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계산적사고(calculating thinking)' 즉 이해타산적인 사고다. 또 하나는 '영감적인 사고(inspirational thinking)'로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사고이다. 즉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오늘의 현실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신앙이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조건회 / 목사 ㆍ 예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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