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이제는 듣겠다"고 말했을까

그들은 왜 "이제는 듣겠다"고 말했을까

[ 선교 ] 필리핀 선교 30주년 대회-(1)정말 미안합니다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1년 06월 22일(수) 13:46
   
▲ 대회 둘째날인 7일 그린힐크리스찬페로우십 강당에서 열린 '현지인 목회자와 중직 초청 행사'에서 초회 파송 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3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교회가 세워지고 학교가 문을 열었다. 많은 현지인 목회자가 배출됐으며, 다양한 전문인 사역이 이뤄졌다. 지난 30년 동안 본교단은 70여 가정의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했다. 그리고 오늘날 필리핀에는 30년 전의 20배에 달하는 7만 여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총회 세계선교부(부장:고만호, 총무:신방현)와 필리핀 현지선교회는 지난 6~7일 수도 마닐라에서 선교 3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보통 '몇 주년 기념대회'라고 하면 그 동안의 결실과 향후 비전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이번 대회는 달랐다.
 
첫날 저녁 열린 현지 교회 지도자 초청 만찬. 본교단과 협력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연합교회(UCCP)와 필리핀장로교회(PCP)를 비롯해 필리핀복음주의교회총연합회(PCEC), 필리핀선교협의회(PMA), 필리핀교회협의회(NCCP) 등 현지 에큐메니칼 및 복음주의 교단과 단체 지도자 8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를 맡은 차훈선교사가 그동안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제대로 협력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이제 당신들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겠다"고 말했다.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NCCP 총무이자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의장인 레이예스(Reyes)목사는 "어려움에 처한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응답이며 복음을 깨닫게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현지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PCEC를 대표해 참석한 맥바누아(Magbanua)주교는 한국 선교사들의 독단적 사업 추진을 '빨리 빨리 문화의 산물'로 비유했다. 그는 "필리핀 교회들은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협력을 원하고 있다"며 "한국교회의 시스템을 강요하면서 함께 일하자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전했다.
 
PMA의 바르티도(Bartido) 씨는 "한국교회가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선교의 본래 정신인 '씨 뿌리는 일'에 힘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긍정적 비전 제시도 있었다.
 
아태장신대(APCCS) 부총장인 타노(Tano)박사는 "단일문화와 다문화 국가인 두 나라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우면 서로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상호 이해'를 강조했다.
 
PCP 사무총장 크루즈(Cruz)목사는 "양국 교회가 협력한다면 이슬람권 복음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현지인이 생각하는 에큐메니칼 선교는 '현지 교회와 동등한 파트너로서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며, 우리 방식을 강요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매우 불편한 축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필리핀개혁장로교회(RPCP)의 김유식목사는 한국교회에 "왜 도와주지는 않고 새로운 일만 벌이는가"라고 물었다. 왜 현지인들을 구원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헌신한 선교사들은 새로운 사업에만 몰두하게 됐을까. 기자는 다음날 그린힐크리스찬펠로우십 강당에서 열린 '현지인 목회자와 중직 초청 행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날 말씀을 전한 대회장 고만호목사(여수은파교회)는 "교회의 힘은 곧 성령이며, 성령의 힘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은혜는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힘은 무엇이었을까? 선지자의 능력이 아니다. 금과 은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필리핀 교회를 일으킨 힘도 마찬가지다.
 
'선교사와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씨앗을 뿌리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30주년을 맞은 필리핀 선교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나의 능력과 이름을 나타내겠다'는 마음을 버릴 때에만 가능해 보인다.
 
이틀 간의 모임은 모두 한국인과 필리핀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화해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미안함'을 표시하는 행사는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역자들마다 이미 능력을 넘어선 계획과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어 타인의 상처까지 돌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무엇을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감사이고 미안함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필리핀에는 52가정 96명의 총회파송 선교사들이 있다. 필리핀 선교 30주년을 맞아 후원교회들도 '정말 미안하다'는 말로 선교사들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번 대회의 표어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필리핀교회와 한국교회의 동행(Phil-Kor Journeying Together in Carrying ou God's Mission)'이었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교만과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다. 다음호에서는 본교단 선교사들이 동행하는 선교를 위해 전개해 온 그 동안의 노력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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