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내려올 거 아니에요"

"아프면 내려올 거 아니에요"

[ 아름다운세상 ] '소명3, 히말라야의 슈바이처'의 주인공 강원희선교사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1년 05월 31일(화) 17:53
   
▲ 말없이 강 선교사의 옷매무새를 다듬는 부인 최화순권사.
부부의 웃음은 닮아있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안암동 소재 자택에서 만난 영화 '히말라야의 슈바이처'의 주인공 강원희선교사 내외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연세대학교 창립 1백26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부 재상봉'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강 선교사는 오랜 친구들을 만난 일주일 전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 듯 했다. "너무 좋았죠. 아무것도 매이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어요." 이날 모임에는 강 선교사의 영화 이야기가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친구들은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1961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지 올해로 50년. 64명의 졸업생 중에 57명이나 살아있더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강 선교사의 모습이 50년 전 풋풋한 의대생에게서 품겨졌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대생 시절부터 강 선교사의 관심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있었다. 야학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가르치던 청년 강원희와 78세 고령의 나이에도 선교현장을 누비고 있는 강원희선교사가 꼭 닮아있는 이유다.

"여유로운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건 진짜 불공평한거에요. 세상에는 어차피 강한 사람, 약한 사람이 있는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착취하면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살맛이 안나지…."

49세가 되던 해인 1982년 그는 故 한경직목사의 권면으로 네팔 히말라야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약자가 착취당하는 세상에서 '살맛이 안나던 차' 의료선교에 대한 부담감을 더이상 떨쳐버릴 수 없던 그는 제일 먼저 아내를 설득했다. 당시를 회고하며 부인 최화순권사는 "처음에는 만류도 해봤지만 '내 삶의 머리나 꼬리가 아닌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데 더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강 선교사는 네팔 한 나라에 머물러있지 않고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에티오피아까지 여러 나라를 다녔다. "보통 3∼40이면 선교지로 나가는데 나는 늦었잖아요. 그래서 여러 나라에 다녔어요. 사도 바울도 그랬고…. 병원이 잘 됐고 환자들도 득실득실했죠. 가만히 앉아있으면 그냥 잘 살 수 있었는데, 너무 바쁘고 일에 매여 살다보니 문득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거에요. 내가 남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구요."

   
▲ 현지 소녀를 진료하고 있는 강원희 선교사의 모습(사진/고천윤).

선교현장에서는 '이'가 없으면 '잇몸'인 법. 일반 외과 출신인 그이지만 강 선교사는 찾아오는 환자에 따라 산부인과, 소아과, 내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등 종합병원 의사가 된다. 간호사 출신 부인 최화순권사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냥 간단한 약을 나눠줄 뿐"이라고 하지만 최 권사의 온화한 미소는 환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진짜 '약'이기 때문. 

"한번도 기분 나쁘게 하거나 신경질 내거나 하는 일이 없어요. 상대방이 따다다다 얘기하면 나도 그렇게 하지, 가정의 화평에 기본이 '유순한 말'인데 늘 차분하게 와서 이야기해줘서 좋아요."

영화 속에서 아내 최화순선교사에게 주사를 맞는 장면이 떠올라 건강은 어떤지 물었더니 '혹시나'가 '역시나'다. "펄펄 날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이 아파요. 작년 12월에도 폐렴을 앓았고 음… 기관지도 약한 편이에요. 두세달씩 설사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지금은 아주 좋은 편이에요. 한국에 와서 아직 사우나에 못갔는데 한번 다녀오면 아주 개운할 것 같아요. 껄껄껄." 자녀들이 걱정하지 않냐고 묻자, 강 선교사는 무심한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요. 걱정하는건 하나님 보다 앞서가는 거니까. 안그래요?"

   
▲ 맨 오른쪽으로 속초중앙교회 원로장로 추대패도 보인다.
오는 6일 강 선교사 내외는 다시 네팔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쉰다는 생각은 해보는데, 쉬는게 뭐냐 말이에요.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것은 너무 무의미하고 뭔가 인생을 드려서 의미있는 일을 한다면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의 마음은 아직도 히말라야 산자락,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 예수를 믿으면 독살시킨다는 부족이 사는 마을에 머물러있다. "슈퍼마켓, 옷가게, 쌀가게를 차려도 안내려오겠지만 아프면 내려올 거 아니에요." 부부는 작은 병원을 세우고 자리잡는 것을 지켜보기까지 적어도 3년 동안은 히말라야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수십년은 된 것 같은 낡은 여행 가방이 그들과 동행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엘리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서서 미소로 배웅하는 부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한국,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에티오피아는 물론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정(情)의 문화가 아닐까.

강원희선교사의 삶, 영화와 책으로 만난다

  

   
강원희선교사 내외의 삶은 지난 4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 3,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신현원감독은 소명 1편을 촬영할 당시 "자신보다 더 훌륭한 선배 선교사님이 있다"는 강명관선교사의 소개로 강원희선교사를 알게 됐다고 했다. 영화를 촬영하며 강원희선교사의 삶에 크게 감명받은 감독은 때마침 귀국한 강 선교사에게 결혼 주례까지 요청했지만 결혼식 날이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재상봉'의 날이라 정중하게 거절해야 했다고.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슈바이처(규장 펴냄)'란 제목의 책도 출간됐다. 강 선교사가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자필로 써내려간 원고를 최 권사가 필체를 다듬으면서 완성된 책이다. 영화와 책이 나오면서 쏟아진 관심에 이번 한국 방문 중 부부는 편히 쉬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드러날까봐, 그게 제일 큰 걱정"이라고 말하는 강 선교사는 "영화와 책을 접하는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됐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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