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시대, 기독교교육의 미래

기술시대, 기독교교육의 미래

[ 인공지능시대를위한미래담론 ] (9) 트랜스휴먼·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교육

홍성수 교수
2024년 10월 09일(수) 07:00
오늘날 우리는 기술 발전의 급류 속에서 전례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영향력은 더욱 넓게 확산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디지털화, 로봇공학 등의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이러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어쩌면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단한다. 비록 하라리가 '트랜스 휴머니즘'(Transhumanism)이나 '포스트 휴머니즘'(Posthumanism)과 같은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논의는 최근의 이러한 담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교육은 어떤 방향을 모색해야 할까?



#트랜스 휴먼·포스트 휴먼: 기술을 통한 인간의 가능성 확장

트랜스 휴머니즘·포스트 휴머니즘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담론이다. 이 두 담론은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먼저, 트랜스 휴머니즘은 기술 발전을 통해 인간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기술은 인간 개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간주된다. 생명공학이나 로봇공학에 기반한 '인간 강화 기술(Human Enhancement Technologies)'은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마치 소프트웨어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듯이, 기술 발전을 통해 인간을 '인간 1.0'을 넘어 2.0 또는 그 이상의 존재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특정 질병의 발병 위험을 낮추고, 생체공학 의수를 통해 상실된 신체 능력을 복구할 수 기술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었으며, 더 이상 SF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또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간주할 수 없다. 요약하자면 트랜스 휴머니즘이란 '인간 이상의 인간'을 꿈꾼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인간을 기술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객체로 파악한다 점,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 축소하여 인간을 본질을 이루는 정신적·사회적·윤리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반면 포스트 휴머니즘은 인간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전통적인 인간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방식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은 인간의 뇌파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뇌 신호만으로 기계를 조작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융합 기술은 신체의 기능을 잃은 환자들이 외부장치를 이용해 세상과 다시 소통하거나, 로봇 팔을 사용해 독립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예로는 디지털 아바타를 들 수 있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사람들은 물리적 신체에서 벗어나 디지털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사회적·경제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이 더 이상 물리적 몸에 국한되지 않고,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과 같이 뇌의 정보 디지털로 옮기는 아이디어 역시 논의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포스트 휴머니즘이란 인간과 기술이 융합된 새로운 존재 방식을 모색하는 철학적·기술적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포스트 휴머니즘 역시 특별히 몸을 대체 가능한 것 보기에 신체성을 도외시하며, 인간 정신을 인지적인 능력으로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비록 트랜스 휴머니즘과 포스트 휴머니즘은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지만, 두 담론 모두 기술이 인간 존재와 사회에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이 기술을 통한 인간의 한계 극복과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면, 포스트 휴머니즘은 기술과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인간 존재 방식을 탐구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담론 모두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면서,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인간 본질과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다.



#트랜스 휴먼·포스트 휴먼 시대의 기독교교육: 인간이해와 교육의 새로운 지평

트랜스 휴먼·포스트 휴먼 시대 속 급속한 기술발전과 변화를 맞아 기독교교육은 어떤 역할은 담당해야 할까? 무엇보다 기독교교육은 기술 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동조나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도구적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 또한 기술 발전을 그저 타락의 징후로만 보는 염세적 비관론에 치우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접근은 쉽게 답을 내려주는 '넓은 길'과 같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은 기독교교육의 본연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닐까? 이 변화에 대해 신학적·교육학적 입장에서 비판적인 동시에 건설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생체공학 의수와 같은 기술이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상실된 신체 기능을 회복시켜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런 점에서 이를 신학적으로 치유와 회복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또 다른 예로, 디지털 뇌와 같은 기술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정체성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확장되면, 인간의 사고와 데이터 처리 능력이 극적으로 향상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기술은 윤리적 문제와 인간성 변화에 대한 고민을 가져온다. 인간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절대적 독립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인간을 제한적 독립성과 종속성 사이에서 숙고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어준다.

트랜스 휴먼·포스트 휴먼 시대가 가져올 변화를 신학적·기독교교육학적으로 제대로 평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종말론적 고찰 역시 필요하다. 전통적인 기독교 종말론 관점에서 주로 문명의 발전을 타락의 역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와 결부되어 많은 크리스찬들은 기술 발전의 변화와 도전을 주로 위험한 것, 신앙을 허무는 것, 인간의 교만의 결과로 언젠가는 심판 받을 대상으로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풍성한 삶에 대한 비전, 희망과 책임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강조하는 본회퍼와 몰트만의 종말론과 이에 바탕을 둔 책임윤리는 이와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 미래를 향한 기독교 교육

트랜스 휴먼·포스트 휴먼 시대는 기독교 교육에 중요한 도전이자 기회로 여길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신학적·윤리적·교육학적 성찰을 통해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 존재와 기술의 상호성에 대한 깊은 고찰은 결국 기독교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인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더 나아가 창조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홍성수 교수/독일 예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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