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 두고 선교지 떠나지 않겠다"

"교인들 두고 선교지 떠나지 않겠다"

[ 특집 ] <일본 대지진 현장을 가다 -1> 본교단 총회, 일본교회에 위로 메시지 전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03월 23일(수) 09:57
   
▲ 쓰나미가 휩쓸고 간 센다이 인근 지역의 모습. <사진제공:조화행집사>

【도쿄=표현모기자】 지난 16일 오전 9시 45분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공항 내부에서부터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일본대지진 특집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TV 앞에는 사람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지난 11일 동북 관동지역 대지진의 여파로 2만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재앙을 겪은 일본 국민들은 시시각각 악화일로를 걷는 방사능 유출 공포 속에서 며칠 전의 슬픔조차 마음껏 애도할 수 없었다.
 
지진 피해를 파악하고 긴급구호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본교단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 이승열목사와 재해구호담당 간사 안홍철목사, 기자는 본교단 일본선교사회 회장 정연원목사, 총무 김병호목사를 만나 곧바로 도쿄 시내로 향했다.
 
하네다공항에서 도쿄 도심지까지는 상습 정체구간인데도 불구하고 지진 여파로 인해 차량통행은 많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주유소는 하나같이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김병호선교사는 "차 1대에 연료를 20ℓ씩만 채울 수 있어 몇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그나마 오전이면 그날 판매량이 모두 동이 난다"고 설명했다. 하루 유동인구가 1백50만명에서 2백만 명에 달하는 신주쿠 거리조차 지나는 행인이 별로 없을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지나는 행인들 중 절반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교단 본부에서 핵방사능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쿄에 왔다는 소식에 본교단 조중래 강장식 이혜숙선교사는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현재 일본 전반 및 각 교회의 상황을 알렸다.
 

   
▲ 방사능 공포로 고글까지 착용한 일본인.

이중 정유공장이 폭파된 호바나시 인근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조중래선교사는 "정유공장 폭발로 교우들의 집에도 불이 옮겨붙어 어려움을 겪은 가정이 있다"며 "앞으로 교회 보수 및 교인 위로를 위해 한국교회가 해야할 역할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수암을 앓다가 최근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그는 적은 양의 방사능에도 몸에 치명적일 수 있지만 "교인들을 두고 먼저 피신할 수 없다"며 "교인들이 남아있는 한 선교지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총회 긴급조사팀의 체류 기간 동안 김병호선교사와 함께 안내를 맡은 강장식선교사는 차단된 도로까지 통과할 수 있는 '위기지정차량'을 준비해 쓰나미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센다이 지역으로 갈 수 있는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함께 한 선교사들은 현재 교인들의 상당수가 핵방사능 유출에 대한 위기감으로 한국이나 오사카 등 남쪽 지역으로 피신한 상태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 몇 안 남은 한국인 교인들도 곧 안전지대로 피신할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사는 감리교 총회에서 방사능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선교사는 모두 철수를 권고했으며 모든 항공비용을 총회본부에서 부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선교사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도 여진이 계속됐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벽에 걸려 있던 옷걸이들이 좌우로 힘없이 흔들렸다. 당황한 일본인들은 두려운 눈빛을 주고 받으며 하던 일을 멈췄다. 엄청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은 진도 3의 지진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후, 총회 긴급조사팀은 일본선교사회 임원들과 함께 일본기독교단, 재일대한기독교회, NCCJ 등을 방문해 총회 차원의 위로 인사를 전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 현지 교회 관계자들은 교회의 피해상황에 대한 정보를 나눴으며, 향후 본교단이 도울 수 있는 구호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일본기독교단 등은 지난 13~17일 긴급피해조사팀을 구성해 센다이 현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핵방사능 유출과 도로 유실, 통신망 마비 등으로 아직까지도 피해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본교단 선교사 및 재일대한기독교회, 일본기독교단 등의 목회자 피해는 없는 것으로 잠정 확인됐으나 교회 직원 및 교인들 중에는 사망 및 실종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날 저녁 일본선교사회 임원들과 총회 긴급조사팀은 센다이 지역으로 보낼 구호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그러나 휴대용 가스버너와 쓸만한 코펠 등은 이미 모두 팔려 구할 수 없었으며, 일부 식품도 품절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난을 당하면서도 극도의 자제심을 보이던 일본인들도 계속되는 방사능 위기 속에 결국 생필품 사재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그날 저녁 원자력발전소의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연료봉 냉각시도는 거듭 실패했고, 결국 미국에서는 자국민에게 원자력발전소 80km밖으로 피신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나라 방송 및 일간지 기자들도 대부분 안전지역으로 대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총회 긴급조사팀은 도쿄마저 안전을 위협받는 시점에서 원자력발전소 50km 부근의 도로를 지나야 하는 센다이 행은 현재로서는 너무 위험한 행동이라는 판단을 하고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사이에도 여진은 계속됐고, 짐을 싼 채 잠이 들었던 일본인들과 교포들은 밤잠을 설쳤다.

 

# 불안한 마음...기도할 수밖에 없어

핵방사능 유출 공포 속 시나가와교회 수요기도회 모습

     
▲ 불안감 속에서 기도하고 있는 시나가와교회 교인들.

"불안한 마음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네요. 외출할 때는 꼭 지갑과 여권을 챙겨가지고 나와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핵방사능 유출이 더 심각해지면 바로 도쿄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요."
 
지난 16일 강장식선교사가 시무하는 시나가와교회 수요기도회에 참석한 한국인 교인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녀 두명과 함께 기도회에 참석한 전순현ㆍ권혜영집사 부부도 그들 중 하나. 대기업 일본 주재 직원으로 있는 전순현집사는 회사가 일본정부의 방침에 따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도쿄에 머무르며 가족들에게 먼저 한국으로 떠날 것을 권했지만 부인과 자녀들이 함께 남을 것을 원해 아직 도쿄에 남아있다고 했다. 전 집사는 "현재 한국기업의 경우 도쿄 직원들을 대부분 철수시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계속 뉴스를 주시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방사능 위험에 대해 축소 은폐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내 권혜영집사는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 10명 중 8~9명은 한국으로 떠난 상태"라며 "도쿄에도 여진이 계속되어 위험할 경우 우리 가족도 바로 피신할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한국으로 피난을 간 교인들을 위해 △회사 일로 일본에 남아있는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일본을 위로하시고 핵방사능 위험이 커지지 않도록 몇 남지 않은 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이날 기도회를 마치자 강장식목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국내 방송기자들과 함께 센다이에서 취재하던 교회 집사의 전화였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센다이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이 결국은 모두 핵방사능을 우려해 아오모리를 지나 홋가이도 삿포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철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교인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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