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에게 줄 방독면은 없다?

선교사들에게 줄 방독면은 없다?

[ 선교 ] 재해지역 선교사 위기관리 허점, 세부적 지침 마련 절실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1년 03월 22일(화) 19:13

   
▲ 출국자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는 도쿄 하네다 공항의 모습. /사진 표현모기자

공기중에 유독 물질이 퍼지면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
 
여러개의 방독면을 가지고 있는 어른은 보통 아이들을 먼저 착용시키고 자신이 쓰려하는 데 이것은 잘못이다.
 
군 규범에서는 일단 보호자가 먼저 방독면을 써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후 피보호자에게 착용시킬 것을 강조한다. 그래야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보호자가 안전해야 전체를 돌보며 이후 닥쳐올 또 다른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피보호자를 사랑하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이런 결정이 쉽지 않다. 최근 선교지에선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전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와 일본의 대지진. 이례적으로 총회 파송 선교사들이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노출됐으며, 특히 일본의 경우는 방사능 유출에 따른 위기감까지 극도로 고조됐다.
 
각국 선교사들이 '교회에 남느냐' '일단 위기를 피하느냐'로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몇몇 교단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본 한인교회들을 관리하고 있는 기감 남부연회는 지난주 사역자들에게 철수 공문을 보냈다. 안전한 곳으로의 대피 또는 귀국을 지시한 이 공문은 요청시 필요한 이동 비용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교 본부는 현지 상황을 계속 청취하고 있으며, 필요시 교단 결정으로 선교사의 철수를 명령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에 비교적 많은 67가정을 파송하고 있는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는 보다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본부 위기관리팀과 협력하는 현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현지 비대위는 선교사들의 상황 정보를 수집해 위기시 선교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철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본부는 비피해 지역 선교사들의 자원을 받아 귀국이 어려운 선교사들의 임시 처소도 연결해주고 있다. 이와함께 GMS는 모금, 현지인 및 파송 선교사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는 선교사 관리와 국제 구호 업무를 모두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교단의 경우 선교사 관리는 세계선교부, 구호 업무는 사회봉사부로 나뉘어 있다. 각 부서의 전문성이 인정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부서간 협력 정도에 따라 선교 또는 구호에 사각지대가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두 차례의 지진에서는 이례적으로 선교사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재해를 입은 선교사를 위한 지원 및 행동 지침'의 부재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본교단 일본 선교사들의 철수 여부는 개인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선교사가 피해를 입을 경우 사회봉사부가 모금한 기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현지인을 위한 방독면은 있지만 선교사를 위한 방독면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동안 사회봉사부는 재해 구호에 동참하는 선교사들의 일부 활동비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선교사 지원은 사회봉사부의 업무 범주를 벗어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세계선교부가 선교사들을 지원해야 하는데 본교단 세계선교부는 모금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지난 크라이스트처치시 지진에서 예배처소를 잃은 본교단 교회들에게 총회는 구호기금 1만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현지 교회들은 이 기금을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상처 치유에 사용하기로 했다. 빠른 치유가 없으면 심리적 불안이 고착될 수 있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돕고 있는 현지 선교사들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임대해 사용하던 예배처소를 잃었고, 대부분의 한인들이 교회를 떠났다. 일본의 한인교회 역시 이번 지진으로 많게는 80%에 가까운 교인들이 귀국했다고 한다. 또한 두 곳 모두 여진에 대한 불안감과 사람들의 이탈에 따른 고립감이 선교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더욱이 남성에 비해 연약한 여성 선교사와 자녀들이 받는 고통은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도움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GMS는 현재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들로 이뤄진 일본위원회를 통해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따로 모금하고 있다. 세계선교부 역시 후원교회들을 중심으로 선교사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의 여러 선교사들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위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상담가나 트라우마(trauma) 치유 전문가, 각종 문화 공연팀의 방문도 대환영이라고 한다.
 
후원교회는 선교사의 삶이 훌륭한 영적 모델이 되도록 지원할 책임이 있다. 본교단 선교사들이 재해지역에서 섬김의 모델이 되려면 한국교회의 넉넉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또한 교인들보다 먼저 방독면을 쓸 수 없는 선교사들에게 방독면을 씌우는 본부의 판단력과 지도력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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