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는 교회

'아버지'가 없는 교회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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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09일(수) 14:46

 
10여 년 전에, 세 목사와 함께 공동개척목회를 시작해서 4년간 팀목회를 한 적이 있다. 소위 담임목사 없는 공동목회였는데, 모양은 좋아보였지만 말처럼 그렇게 쉬운 목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동목회가 어려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공동목회자 중에서 '누가, 아버지 노릇을 하느냐'의 문제에 있었던 것 같다.
 
몇 해 전 어떤 개신교인이 "개신교가 '로마천주교회의 교황무오설'을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로마천주교회는 교황 한 사람에게만 무오설을 적용할 뿐 모든 사제들이, 모든 본당신부들이 언제나 옳다고 강변하지는 않았다는 뼈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회는 사실상 개교회마다, 개교회의 목회자들이 제각기 자신의 무오설을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개신교 목회자의 '자기무오설'적인 태도가 로마천주교회의 교황무오설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문제가 어찌 목회자만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가? 목회자 이외에도 교회공동체 안에는 당회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모임, 조직, 자리마다 자기무오적(自己無誤的)인 신앙과 태도로 공동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되, 심지어 백 배나 받는다"고 약속하셨다(막 10:29~30). 그러나 이 세상에서 되찾게 된다고 하신 것 중에서 유독 '한 가지'가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빠져 있다(막 10:30).
 
대단히 치밀하게 짜여진 마가복음 10:29~30의 대칭구조에서 둘째 부분(막 10:30)을 보면 '아버지'가 생략되어 있다. 이 생략이 우연한 실수였다고 보려는 이도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다시 말하면 대칭구조 둘째 부분에서 '아버지'를 뺀 것은 의도적인 생략이라는 말이다. 교회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공동체에서는 '아버지'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빼신 '아버지'는 당시 유대종교(Judaism) 유대사회의 전통과 가정(家庭)에서 엄청난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던 '가부장적(家父長的)인 지배'의 상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공동체, 교회공동체,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서는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모셔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점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있던 마태는, 유대종교에서 아버지 노릇하고 있던 수많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꾸짖으시는 자리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마 23:9).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랍비라 칭함도 받지 말라", "지도자라 칭함도 받지 말라"시며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3:5-12).
 
지금 한국교회는 '랍비'도 너무 많다. '지도자'도 너무 많다. '아버지'도 너무 많다. 교회공동체와 관련된 조직을 한 번 보라. 삼척동자도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는 일들을 보게 된다. 어떤 한 조직은 공동총재가 스무 명이나 되고, 상임총재도 있고, 대표총재도 있는 것을 보았다.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총재는 한 사람이면 족한 것 아닌가? 국어사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낱말 '증경'이란 말이 왜 그리 많이 쓰이고 있는가? 어른들이 그렇게 '아버지' 노릇하는 것을 좋아하니 교인들도(남선교회, 여전도회, 크고 작은 모임마다) '증경'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줄줄이 상석(上席)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속화(가나안화)된 교회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사순절이 시작됐는데, 십자가(十字架)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주님, 골고다를 향해 말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는 주님 앞에서, 언제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교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을 아버지로 모시기를 포기한 것인가? 진정 '하나님 아버지'를 잊어버린 교회(히, 샤카흐 : 잘못 놓다)가 되고 말 것인가?

박은호
목사ㆍ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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