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무대 오르는 '빌라도'

마지막 무대 오르는 '빌라도'

[ 문화 ] '빌라도의 고백' 제작 및 연출, 23년간 열연한 이영식 문화선교사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1년 02월 28일(월) 11:31
   
▲ 빌라도로 열연 중인 이영식선교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오프닝을 알리는 음향이 흘러나오자 "그만!"을 외치며 빌라도가 뛰쳐나온다. 2011년 사순절ㆍ고난주간 순회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 '빌라도의 고백'의 첫 장면이다.

1988년 초연 이후 국내외 1천4백여 교회와 극장에서 공연된 '빌라도의 고백'은 대표적인 한국기독교 연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공연이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됐지만 이 연극때문에 가장 극적으로 삶이 변한 사람은 이 작품을 직접 제작, 연출하고 23년간 빌라도 역을 맡아 열연한 이영식 문화선교사다.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민들레영토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영식선교사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작품이 막을 내린다.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의 머릿 속에는 '빌라도의 고백' 대본이 통째로 들어있다. 그냥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 대사를 친다. 빌라도에 빠져 지하철에서 대사를 되뇌이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애정이 가득 담긴 작품을 내려놓는 이유에 대해 "원래 빌라도는 고작해야 40대 초반의 인물인데 이제 60이 다 됐다"고 밝힌 그는 "앞으로 더 좋은 배우들이 이 작품을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25년 전 돈이 될 거라는 선배의 말에 작품료를 주고 대본을 구입할 때만 해도 그는 '빌라도의 고백'이 자신의 삶을 이렇게까지 바꾸어놓을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속았다'는 기분에 2년 동안 대본을 먼지 속에 팽개쳐놓았다. 다시 이 작품을 꺼내 들게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그는 지난 1987년 '전국연극제'에서 직접 쓰고 연기한 '노인, 새되어 날다'로 대상을 수상한 실력파 연기자다.

하지만 그해 '서울연극제'의 첫 무대에 축하공연을 하게 된 그는 무대에 등장함과 동시에 세트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제서야 이영식선교사는 '빌라도의 고백'을 다시 손에 들었고 제목을 읽는 순간 '아! 나에게 이걸 시키시려고…'란 생각에 온 몸에 경련이 나는 듯한 경험을 했다. 곧바로 새벽기도를 시작하고 담배와 술을 끊은 그는 성경을 바탕으로 대본을 새로 쓰기 시작했다.

"소주아니면 마시질 않았는데 (제 힘으론) 도저히 술을 끊을 수가 없어요. 어렸을때 아버지가 주의 일을 하려면 새벽기도부터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새벽기도를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를 전도하려고 기도하던 아내도 믿지 않았어요.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는 저였으니…." 골고다 장면을 연습하며 그는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모태신앙인데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그의 나이 37세의 일이었다.

빌라도와 이별하고 그는 이제 사도바울의 옷을 입으려 한다. "제 머리가 지금 딱 적당히 까졌거든요. 염색해서 그렇지 이제 머리도 희끗희끗하구요. 특별히 분장하지 않아도 바울의 모습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 '사도바울' 구상에 한창인 그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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