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권세'아닌 거룩한 섬김의 '은사'

지도자는 '권세'아닌 거룩한 섬김의 '은사'

[ 특집 ] 3 . 섬김의 리더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2월 23일(수) 11:36

   
/일러스트 이경남 knlee@pckworld.com
목사들끼리 모이면 당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한 목사는 당회에 들어가기 전에 우황청심환을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당회에서 놀랄 일도 많고, 가슴 뛸 일도 많아서 미리 약을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들은 이야기는 당회에서 한 장로가 사사건건 너무 반대를 해서 목사가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가서 욕을 해 주었다고 한다.

어느 목사는 행정목사를 두어서 당회를 그 분이 주관하게 한단다. 자신은 성품이 급한데 그 목사는 성품이 좋아서 그러한 회의를 잘 한다는 것이다. 정말 목사들 모아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용담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다.

물론 장로들이라고 안 그렇겠는가. 장로들도 모이면 교회 걱정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목사의 문제가 단골로 찾아든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로들이 잘 지도하고 견제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될 목사들이 또 많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에 모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를 위해서 서로를 견제하고 힘을 앞세워서 정의를 세우겠다고 할 것 아닌가. 근데 그 교회는 무엇이고, 그 정의는 무엇인지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혹시 그것이 교권이 되고 권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되짚고 싶은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젊은 사람들의 눈이다. 목사와 장로를 그렇게 권위 있는 직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의 눈에서 그들이 교회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싸우고, 총회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모습은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즉 교인들과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그들이 교회를 대표하여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그러한 이전투구를 통해서 얻은 권력으로 교인들 앞에서 유세라도 떤다면 그들을 보는 교인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교회에서 자라난 교인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일어난 분쟁을 경험해 보았다. 존경하던 목사가 떠나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장로파와 목사파가 갈려서 멱살잡이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그리고 존경하는 이들이 시정잡배만도 못하게 변해가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아직 교회에 남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릴 적 상처를 부여안고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고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신앙이 순수하거나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내 자녀이고, 내 믿음의 후손인데 어찌 그러한 생각도 없이 하나님의 교회를 훼하고, 그들에게 이런 무지막지한 상처를 주고 있는가. 

바울 선생님은 직분을 은사라고 표현했다. 고전 12:28을 보면 사도, 선지자, 교사라는 당시의 직분을 나열하고서는 능력 행함, 병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 말하는 것을 나열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이 직분들도 이 뒤에 나열되고 있는 이 은사들과 다를 바 없는 은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사를 왜 주셨는가. 그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뒤에 열거된 은사들을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사도, 선지자, 교사라는 직분도 결국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은사, 즉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직분은 내가 노력하여서, 내가 돈 주고 힘써서 얻는 것이 되었다. 그 자리가 점점 높아질수록 그 액수가 높아지고, 고도의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얻은 자리이니 본전도 찾아야겠고, 노력에 대한 대가도 얻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인지상정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즉 은사라고 이야기하겠으며, 그것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제 권위가 해체되어지고 각 개인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인정받지 못한지는 이미 오래전이고, 대통령이 아이들의 우스갯거리가 된지도 오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감히 질문 하나 던져 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부당한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저항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목사는 아직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알고, 장로 역시 노인의 흉내를 내려고 하고 있다. 걸어 닫은 당회실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리그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변한 만큼 교회의 젊은이들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불합리하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의 구조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좌절하고 실망하면서 조용히 교회를 떠나고 있다.

때론 저항해 보지만 그렇게 교회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도 않다. 교회가 이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떠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면 이제 걸어 닫은 당회실만의 교회에서 그들만의 교회가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교회를 세우라고 임명한 그들을 통해서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는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올바를까.

목사, 장로와 같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고, 덕분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이들로 인해서 무너지는 교회를 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권력은 갖는 순간부터 사람을 망가뜨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혹 이분들이 이 직분을 권력으로 이해한다면 곧 그들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 즉 은사라고 그들이 생각한다면 이들로 인해서 세워지는 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조성돈소장/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ㆍ목회사회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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