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으로 감사하며 살기

믿음의 눈으로 감사하며 살기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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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3일(목) 15:37

 
사람에게는 안목이란 게 있다. 안목이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능력이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한다. 즉 믿음이란 보는 안목이라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안목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이다. '왜 인간이 사는가? 왜 이 세상은 존재하는가?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에 과학적인 대답은 있을 수 없고 신앙적인 답변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안목을 가져야 이 세상을 보다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슬픈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과 행복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과 믿음 없이 바라보는 십자가의 의미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창세기 21장에서 하갈은 사라의 미움을 사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광야에서 목말라하며 통곡하고 울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죽 부대에 물을 담아 아이에게 마시우게 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없던 샘이 갑자기 생기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본래 있었던 샘이 하갈의 상한 마음을 하나님이 치유하시며 눈을 여심으로 보게 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당하거나 마음이 상하면 볼 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들을 것을 바로 듣지 못하게 됨으로 본의 아닌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일로 평생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바른 생각, 바른 안목, 바른 행동은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어떤 경우에라도 길은 있는 법이다.
 
성품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고 인간의 운명은 지식이나 기술이나 돈이 아니라 성품과 자질이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매우 상대적인 두 제자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있다. 베드로는 다혈질이고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자주 실수를 했고 경솔했으며 심한 책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고 어떤 충고든 잘 받아들였으며 잘못을 깨달으면 즉시 회심하고 개선할 줄 아는 진솔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천국열쇠를 소유했고 교회의 반석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야심, 조직적인 두뇌, 사교성 등 세상에서 성공하기에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배신하고 스스로 나무에 목매달아 죽어야 했던 비운의 사나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 같은 상황, 같은 스승 밑에서 신앙과 인간교육을 받았음에도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이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성품의 차이요, 삶의 자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더 크게는 신앙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이성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가 필요 이상으로 만연되어 있고 상호이해와 화합은 없이 상호비난과 독선주의만 있을 뿐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상호이해와 사랑과 관용과 용서와 참는 여유와 양보의 미덕이 필요하다. 세상과 사람은 바른 것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바른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믿음과 사랑이다.
 
새해에 하나님께 받은 개인적인 화두는 감사(엡5:19-20)이다. 동시에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화두는 동행이다. 성령님과 동행하자는 것이다. 동행하려면 마음과 뜻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한다. 서로 사랑으로 용납하지 않고서는 동행은 어렵다. 세상과 사람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불안해하는 이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밖에 없다. 십자가로 주님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회복하자. 작은 것이라도 죽을 결심을 하며 새롭게 결단하자. "주여! 이 종을 십자가 아래 죽여 주소서."

김유수
목사ㆍ월광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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