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의 '빈방'과 함께 울고 웃어온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덕구의 '빈방'과 함께 울고 웃어온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 문화 ] 극단 '증언'의 창단 30주년 '빈방'30년 연속공연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1년 01월 13일(목) 11:40
   

30여년 전 겨울. 신문 한 구석에 실린 '윌리의 성탄절'이라는 짤막한 칼럼을 본 두 청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이거야!"라며 소리쳤다. 청년 박재련은 "이 기사를 작품으로 써보자"고 제안했고, 또 다른 청년 최종률이 1980년 즈음 이 기사를 극화했다. 그리고 1981년 12월 마침내 이화여대 입구에 있는 자그마한 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해마다 12월이면 가슴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감동의 눈물과 웃음을 전하는 극단 증언(대표:박재련)의 '빈 방 있습니까'가 극단 창립 30주년과 함께 30주년 연속 공연이라는 기록으로 화제가 됐다.

이 작품의 극본을 쓴 작가이면서 연출가인 최종률장로(동숭교회ㆍ한동대 겸임교수)는 "첫 공연을 시작할 때만해도 '빈 방 30년'의 긴 역사를 써내려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였고 구체적인 인도하심이었다"고 감격을 전했다.

30년 전 28살 '청년 덕구'가 이제는 '백발 덕구'가 될 때까지 '덕구'로 살아온 극단 대표 박재련장로(동숭교회ㆍ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도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없다"며 "30년 동안 덕구로 살아서 행복했다"고 전했다. "30년 동안 건강을 주셔서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그는 수차례 진통제 투혼을 발휘하면서도 아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가는 순간에도 무대에 섰다.

매해 11월부터 덕구로 살아가는 그는 덕구 대사만 생각해도 눈물이 날만큼 덕구에 몰입해 있다. "너무 오랫동안 덕구를 놓지 못해 배우들이 덕구 캐릭터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는 박 장로는 "이제는 덕구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으면서도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관객이 돌을 집어 던질 때까지 덕구로 살고 싶다"는 욕심도 감추지 않은 박 장로는 "덕구가 나고 내가 덕구다"면서 덕구에 대한 무한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덧붙여 "선교극단으로 극단 증언이 30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묵묵히 따라주는 단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면서 단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무대만 고집해 온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매회 매진이 되고 관객들의 호응이 높아지면 대형 극장에 오르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이지만 그것은 내 욕심일 뿐 하나님의 영광과는 다른 생각이라고 여겨 자제했다"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극단 증언은 철저한 '자비량 선교'의 원칙을 지켜갔다. 양말 두켤레가 개런티였을 정도다. 그리고 극단은 "관객은 어디든 있다"는 생각으로 직접 관객을 찾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최종률장로는 "기독교 연극이 선교적 목적을 수행하려면 순회공연 형태로 직접 관객을 찾아가는 방법과 극장 공연을 통해 관객이 찾아오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빈방은 이런 양방향의 공연 형태를 취해왔다"고 했다. 실제로 극단은 교회 학교 교도소 군부대 빈민수용시설 병원 등 전국 각지와 해외까지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렇다고 선교 연극을 통해 세상과 복음으로 소통하기 위한 시도를 멈춘 것은 아니다. 매해 12월 '빈 방'은 꾸준히 극장 공연을 통해 비기독교인을 만나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다. 이를 위해 현재 가난한 연극인과 성극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는 문화공간 엘림홀 개관을 위해 극단 증언의 이름으로 5천만 원을 헌금하기도 했다.

'기독교 연극'이라는 한계에도 '빈방'은 타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관람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설교하거나 메시지를 강요하기 보다는 연극의 기본 덕목인 재미와 감동으로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에 동화되도록 했다. 문화선교적 도구로서 빈방 30년 역사가 남긴 업적은 바로 그것이다.

영적 경건성이라는 이유로 시종일관 관객을 짓누르는 기독교 문화의 자아도취를 극복한 것이다. 최 교수는 빈방이 30년 동안 장수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한가지로 이 점을 꼽았다. 뿐만아니라 '빈방'은 기독교 연극 '판'에서 스타 배우를 양성하는 데도 한 몫했다. "빈방을 공연하면 확실히 뜬다"는 징크스를 남기며 강신일 유오성 정선일 조승희 서태화 등 유명 배우들과 드라마 작가를 양성한 것.

지난 7일 두번째 미주 순회공연을 떠난 극단 증언의 '빈방'은 LA, 포틀랜드,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에서 20여 일 동안 20회 이상의 무대를 올린다. 그 곳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용기를 누군가는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빈방 덕분에 가정이 회복됐다는 주부, 연극을 천직으로 삼기를 잘 했다고 확인했다는 교수, 창작의 동기부여를 받았다던 극장가, 쓰러져 가던 공연의지를 되살릴 수 있었다는 해외 교민 연극인들…그들이 있어 행복했다"는 최 교수의 30년 추억처럼 또 다른 30년 추억이 쌓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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