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코코

길 위의 코코

[ 제12회 기독신춘문예 ] 제12회 기독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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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1일(화) 17:18

길 위의 코코

글 : 박 현 숙 / 그림 : 지 민 규

애완견 코코에게 고리가 채워졌다. 코코와 단 둘이 사는 샘할아버지는 산책 할 때마다 고리를 채워 데리고 나갔다. 그럴 때마다 코코는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마음대로 쉬고 싶었다. 그날도 샘할아버지는 "자 가야지. 좀 쉬었다 가야지". 코코는 왼쪽으로 난 숲길로 가고 싶으나, 샘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다니는 오른쪽 큰 길로 줄을 잡아당겼다. 그때 코코 곁으로 몸집이 큰 멍텅구리가 지나갔다. 고리도 없이 자유롭게 걸어가는 멍텅구리를 코코는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향긋한 샴푸냄새가 아닌 비릿한 개천 냄새가 싫지 않았다. '나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다.' 코코는 멍텅구리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어서 가자. 저 개는 멍텅구리야. 주인의 고마움도 모르고 도망쳐 나왔거든."
샘할아버지는 줄을 잡아당겼다. 집으로 돌아온 샘할아버지는 코코를 안아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먼지 묻은 털을 샴푸로 닦아주었다. 젖은 털의 물기가 마르자, 나비모양 핀으로 머리를 장식해 줬다. 그리곤 샘할아버지는 샤워하러 들어갔다. 이때다 싶었다. 코코는 과자가 들어있는 배낭을 물고 창을 넘어 멍텅구리가 사라진 곳으로 달렸다.

다행히 길에는 멍텅구리가 지나간 비릿한 개천냄새가 배여 있었다. 길 위로 긴 그림자가 생기자, 코코는 갑자기 무서웠다. 이따금 가로등이 불을 밝혀도 이른 봄의 밤공기란 오소소 떨리게 했다. 공원 놀이터가 나왔다. 배낭에 들어있는 과자를 꺼내 먹으려 할 때였다. 가로등 아래로 줄지어 가는 시커먼 물체가 있었다. 올망졸망한 들쥐들이 좀 더 큰 들쥐를 따라 밤길을 나서고 있었다. 들쥐들은 코코를 보자 섬뜩 놀래 돌돌 뭉치고 있었다.

"어딜 급히 가니?"
코코는 큰 들쥐에게 말을 걸었다.
"쌀 주우러 간다."
큰 들쥐가 말했다.
"쌀 주우러 어디로 가는데?"
자꾸 말을 걸어 무서움을 잊고 싶었다.
"방앗간으로 간다. 왜 묻는 거야?"
귀찮은 듯 쏘아 붙였다.
"무섭지 않아?"
이번에는 대꾸도 안한 채 들쥐들은 시장으로 쪼르르 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찍찍찍 소리가 났다. 소리는 코코의 몸집만한 구멍에서 났다. 구멍을 들여다보던 코코는 그만 구멍 속으로 확 미끄러지고 말았다. 구멍은 깊어질수록 넓어졌다.
"아기 들쥐야! 놀라지 마. 구멍을 들여다 보다 미끄러졌어."
코코는 배낭에서 과자 하나를 얼른 꺼내 주었다. 아기 들쥐들은 과자를 여러 조각으로 나눴다. 그러더니 각자 자기 몫만 먹고 있었다. 늘 혼자라 모든 것을 독차지했던 코코는 나누는 것을 신기하듯 바라봤다. 들쥐가 사는 집은 코코가 살던 샘 할아버지네 집에 비해 아주 보잘 것 없었으나 온화했다. 코코는 그만 아기 들쥐 옆에서 풋잠이 들었다.

"누구야!"
방앗간에서 쌀을 구해온 큰 들쥐가 돌아와 코코를 보자 놀랬다. 코코도 놀래 깼다. 큰 들쥐는 가로등 아래서 만났던 코코인 걸 알자, 하룻밤 쉬어가라고 했다. 코코는 들쥐들과 금방 친해졌다.
"이건 뭐야?"
"아기 들쥐가 배낭을 만지작거렸다.
"배낭이라고 해."
"뭘 하는데 쓰는 건데?"
"집 나갈 때 먹을 걸 넣지. 때론 말이야. 배설물을 넣을 때도 있어."
"뭐! 뭐라고! 크읔. 냄새나는 배설물을……."

아기 들쥐들은 서로 코를 부비며 찍찍댔다. 들쥐들은 새까맣고 작은 똥들을 흙 속에 묻어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 배설물이 더럽다고 침을 뱉어. 그래서 샘할아버지가 휴지에 싸 넣어 주지. 그러면 이걸 이렇게 메고 다니다가 쓰레기통에 버려."

배낭을 메는 시늉을 하며 코코가 말하자,
"샘할아버지가 누군데?"
"나를 보살폈던 주인이야."
"좋겠어. 그런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큰 들쥐는 부러워했다.
"글쎄 말이야. 글쎄 말이야."
아기 들쥐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나는 샘할아버지 없이 하고픈 것이 너무 많았어."
"몰라서 그래, 모든 것이 위험한 일이야."
"위험한 일이라니?"
큰 들쥐가 말하는 위험한 일이 무엇인지 코코는 궁금했다.

"방앗간으로 쌀 주우러 가는 것 봤지? 혼쭐났어. 흘린 것 주워올 뿐인데 말이야."
큰 들쥐는 방앗간 주인이 잠든 줄 알고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들켜 잡힐 뻔 했다며 코코에게 말했다. 코코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희미한 한 줄기 햇살이 들어와 푸른 배낭을 더 푸르게 비추고 있었다. 아기 들쥐들은 배낭에 들어가 늦잠이 들었다. 코코는 배낭을 두고 쥐구멍을 나와 다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실개천이 나왔다. 잔물결로 흐르는 실개천에는 부들 사이로 흰뺨오리가 숨바꼭질 하고 있었다. 애완견을 안고 실개천 둑을 다정히 걸어가고 노부부도 있었다. 노부부의 뒤를 따라 가던 코코는 노부부가 나누는 말을 들었다.

"혹시 슈슈 아세요?"
"슈슈라니, 많이 듣던 이름인데."
"화가가 애지중지 하던 애완견 말예요."
"기억나네. 참 착했지. 보지 못한지 오래 됐어."
"도망갔데요."
"왜 도망 간 거요?"
"마음대로 살고 싶어 집을 나간 거죠. 그런데 아무리 봐도 베오게다리 건너 짠숙이네 나타나는 멍텅구리가 어쩜 슈슈를 닮았어요."
"고등어구이집에 나타나는 멍텅구리가 슈슈라고! 그럴 리가 있나."
"정말 너무나 닮았어요."

노부부는 새벽다리로 가고 있었다. 멍텅구리의 옛 이름은 슈슈였다. 화가아줌마가 아끼던 슈슈는 그림모델이 되기도 하고, 화가아줌마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았었다. 이곳 실개천을 거니는 사람들은 지저분한 슈슈를 '멍텅구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코코는 멍텅구리가 자주 나타난다는 짠숙이네가 있는 먹자골목을 찾아 나섰다. 베오게다리 건너 짠숙이네서 풍겨오는 고등어 굽는 냄새가 실개천 바람결에 퍼졌다. 과연 멍텅구리를 만날 수 있을까? 코코가 베오게다리 중간에 왔을 때다. 멍텅구리가 베오게다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코코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니?"
멍텅구리는 놀라고 있었다.
"너처럼 자유롭고 싶어서 집을 나왔어."
"어서 돌아가. 후회하게 될 거야."
"나는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어."
벌써부터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나랑 지내는 건 위험 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이란 어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들 수 있어."
"내 맘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주인이 하라는 대로만 살아왔거든."
코코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코코는 멍텅구리를 따라 베오게다리를 건너 먹자골목으로 따라갔다. 어디를 보나 구경거리가 참 많았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그랬어."
멍텅구리가 말했다.
"주인은 날 무척 사랑했어. 그래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답답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나도 그 맘 이해할 수 있지만 잘 몰라서 그래. 그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난 화가아줌마를 떠난 후에 알게 됐어."
"뭘 알게 됐는데?"
"화가아줌마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래서 이곳으로 다시 왔어. 이곳을 떠나지 못 하고 있지."
멍텅구리의 눈동자는 물기로 젖어들었다.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니?"
"골목 지나 산기슭 아래에 공터가 있어. 그곳에서 혼자 사는 친구들끼리 모여 살아."
"나도 거기서 살고 싶어."
코코는 멍텅구리가 있어 두려움도 사라지고 새로운 친구들 만날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짠숙이네 집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공터가 나왔다. 공터에는 코코와 샘할아버지와 살던 집 앞 우뚝 솟은 은행나무와 닮은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코코를 보자, 공터 친구들이 은행나무 아래로 모였다. 우락부락한 투견, 꼬리가 말려있는 해피는 아주 귀여웠다. 발가락이 구부러져 걸음이 불편한 절룩이도 있었다. 절룩이는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걸 왕방울 아저씨가 데리고 온 친구였다. 투견은 코코를 힐끔 쳐다보더니 청소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청소차는 눈이 큰 왕방울 아저씨 것이었다. 왕방울 아저씨는 짠숙이네서 챙겨주는 고등어구이랑 밥을 가져왔다. 귀여운 해피는 코코의 머리에 있는 나비모양 핀을 만지작거렸다.

"갖고 싶어?"
해피에게 주고 싶었다.
"정말 줄래"
"그럼, 예쁜 네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
해피는 보슬거리는 털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뒹굴었다. 코코는 멍텅구리 곁으로 갔다.
"좀 지내다보면 곧 익숙해질 거야. 이 친구들도 알고 보면 다 착해. 갈 곳이 없어 떠돌다 이리 모였으니깐."

"네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
멍텅구리의 온기가 코코를 따뜻하게 했다. 코코와 멍텅구리는 꽃다지와 냉이꽃으로 뒤덮은 공터를 거닐며 따스한 봄날을 지냈다. 매미들이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목청껏 울어대는 한여름이었다. 왕방울 아저씨가 산기슭에서 통나무를 베어왔다. 그리곤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지붕에 뗏장을 올려 통나무 집 지붕은 풀초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리로 모여 봐. 실은 할 말이 있단다. 다른 지역으로 일터를 옮기게 됐어. 그러니 내가 없어도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된다. 겨울 오기 전 돌아오도록 할게."

갑자기 왕방울 아저씨가 떠난 후, 아저씨를 의지하며 살아온 멍텅구리와 코코 그리고 공터 친구들은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날이 흐려 스산한 저녁 무렵이었다. 산기슭에서 괴상한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공터 전체로 울려 퍼졌다. 멧돼지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통나무집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앗! 저건 멧돼지 소리야. 어서 여길 피해야 돼."
코코와 멍텅구리 그리고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멧돼지들은 폭풍처럼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위험한 순간 경찰들이 마취 총을 쏘며 나타나 겨우 위험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먹을거리를 구해야했다.

"코코야! 이번에는 네가 먹을 음식을 구해 와야겠어."
투견이 말했다.
"아직 서툴러서 안 돼, 아직 세상을 잘 몰라. 내가 코코 대신 한다."
"뭐야. 너 코코를 감싸는 이유가 뭔데?"
투견의 늘어진 턱주름이 출렁거렸다.
"알았어. 나도 할 수 있어."
코코는 공터를 떠나 주택가로 향했다.
"그리 가면 위험한 곳이라 안 돼!"

뒤를 따라온 멍텅구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느 집에선가 기름진 냄새가 풍겼다. 갈비 굽는 냄새가 붉은 벽돌집에서 났다. 벽돌집 외동딸 지미의 생일이었다. 둥근 조명등이 켜지고 식탁으로 푸짐한 음식이 올라오고 있었다. 캉캉치마를 입은 지미가 식탁의자에 사뿐히 앉았다. 곧 도착 할 지미아빠를 위해 철창문이 열려 있었다.

"넌 여기서 망보고 있어. 내가 가져 올게."
코코는 멍텅구리와 친구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코코는 이미 철창문으로 들어갔다. 코코는 지미가 한눈 판 사이 접시에 수북이 놓인 갈비를 물고 뛰쳐나왔다. 지미아빠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디서 굴러 온 거야."
지미아빠가 던진 구두가 코코의 정강이를 때렸다. 간신히 물고 나온 갈비는 마당에 떨어졌다. 놀란 코코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빠 살려 줘요."
지미가 아빠의 팔에 매달리며 부탁했다.
"혼 좀 나야 돼. 네 생일을 망쳤어."

지미아빠는 지미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담 밖에서 망보던 멍텅구리는 안절부절못했다. 투견과 친구들이 달려왔다. 들쥐들이 지나가다 코코가 갇힌 것을 보았다.

"어떻게 하지. 큰일 났네."
발을 동동 구르며 큰 들쥐가 말했다.
"우리에게 갈비 먹이려다 코코가 죽게 되었잖아."
"내 잘못이야. 내가 음식을 가져오라 했기 때문이야. 어서 서둘러야 돼."
멍텅구리와 투견은 어찌할 줄 몰랐다.
"이리들 와 봐. 착한 코코를 구해 주자."
큰 들쥐 곁으로 모두 모였다.
"좋은 수가 있어. 문 아래로 구멍을 파는 거야."
들쥐들은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조금씩 파낸 구멍을 멍텅구리와 친구들이 크게 만들었다. 흙을 파고 나르기를 반복하자, 코코가 갇힌 마당으로 구멍이 크게 뚫렸다.

"찍찍 찍."
"누구야!"
부스럭 소리에 놀라 깨어난 코코는 불안해졌다.
"놀래지 마. 우리야. 놀이터 들쥐야."
"쉿! 우리도 왔어."
멍텅구리와 투견이 속삭였다. 들쥐와 멍텅구리와 투견은 코코를 밖으로 간신히 끌고 나왔다. 담 아래 웅크리고 밤을 새워야 했다.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이 반짝였다. 멍텅구리와 투견은 다친 코코를 부축이며 배오게다리를 건넜다. 코코가 처음으로 배오개다리를 건너던 날 보았던 안경 낀 노부부가 아침산책을 하고 있었다. 슈슈라 불렀던 멍텅구리이야기를 하던 그 노부부였다. 노부부는 뭔지 모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떠도는 소문 들었어요?"
"무슨 소문 말이요."
"샘이란 할아버지네 애완견도 집을 나간지가 꽤 된다지 뭐예요."
"왜 집을 나갔대요?"
"그러니까 그 동안 베푼 은혜도 모르는 거죠."
"집 나가봐야 고생을 텐데요. 어디서 헤매는지……."
"꼭 돌아 올 거라고 믿고 있다나 봐요."
"그럴만하지. 어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소."
"만날 대문도 활짝 열어놓고 있대요."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집나간 둘째 아들 기다리는 아버지 이야기가 성경에 있지 않소."
"맞아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 일 것 같아요."
노부부는 지난번처럼 옷가게 쪽으로 가는 새벽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샘할아버지 소식은 꼬리를 달고 실개천 주위로 퍼져갔다. 코코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곪아가고 있었다. 아플수록 샘할아버지와 지내던 행복했던 날들이 코코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은행나무 이파리가 고슬고슬 피어나는 이른 봄날 집을 떠나 한여름도 지나고, 어느덧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었다. 다듬지 못한 더부룩한 털은 뒤엉킨 실타래 같았다. 몸에서는 향긋한 샴푸 냄새가 아닌 쾌쾌한 시궁창냄새가 났다. 멧돼지 공격으로 내려앉은 통나무집 지붕 위로 낮달이 걸렸다. 코코와 멍텅구리는 빛바랜 낮달을 보며 옛집을 그리워했다.

"코코야. 이곳은 위험하니 돌아가. 언제 다시 멧돼지가 내려올지 몰라."
멍텅구리는 코코를 보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집 떠날 때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어. 알아보지 못 하실 거야. 알아본다 해도 예전처럼 날 사랑해 주지 않으실 거야."
코코는 샘할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너도 소문 들었지. 너의 주인은 만날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신댔어."
"정말, 탕자와 같은 날 용서 하실까?"
"당연하지. 샘할아버지는 너에겐 하나님 같은 분이셔.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가면 다 용서 하실 거야."
그렇지만 코코는 멍텅구리를 두고 혼자 갈 순 없었다.
"우리 같이 가자."
"걱정 마. 왕방울 아저씨가 곧 올 거야. 그럼 나도 화가아줌마를 찾아가 용서를 빌게."
"정말이야! 잘 생각 했어. 너도 꼭 주인에게 돌아가야 돼."
코코는 다리가 자꾸 욱신거리자 뒤척였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서 치료하며 걱정하던 샘할아버지의 손길이 더욱 그리워졌다. 그때 어디선가 엔진 소리가 났다. 왕방울 아저씨가 청소차를 몰고 공터로 돌아왔다. 아저씨는 멍텅구리와 코코를 청소차에 태웠다. 실개천 베오게다리를 건너 놀이터까지 왔을 때, 들쥐들도 쥐구멍에서 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왕방울 아저씨가 코코를 내려 줄 때 멍텅구리는 코코에게 말했다.
"우리 헤어질 시간이야. 헤어진다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래.
상처가 난 다리를 이끌며 코코는 샘할아버지가 있는 집을 향해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양탄자처럼 깔려있었다.

"어서 오렴, 코코야!"
어디선가 샘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인자한 모습이 떠올랐다.  코코는 용기를 내어 활짝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웬일일까? 샘할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이제야 오느냐?"
샘할아버지는 코코를 덥석 안고 더럽고 냄새나는 코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코코는 목구멍으로 무엇인가 뭉클 올라오는 걸 느꼈다.
"할아버지 사랑을 뿌리치고 떠났던 것 잘못했어요."
코코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눈물만 한없이 흘러내렸다. 코코는 눈물범벅이 되어 샘할아버지 품에 꼭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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