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ㆍ비리 묵인해선 안돼… 어려워도 진실 밝혀야"

"부정ㆍ비리 묵인해선 안돼… 어려워도 진실 밝혀야"

[ 교계 ] 창간 65주년 기념 특별 대담 // 원로 언론학자 서정우교수에게서 듣는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1월 11일(화) 16:16

일시 : 2011년 1월 6일
장소 : 한국언론인연합회 회장실
대담 : 편집국장 안홍철 목사
사진ㆍ정리 : 임성국 기자


   

안홍철국장 : 한국 언론학계의 큰 스승이신 교수님을 모시게 돼 큰 영광이다. 먼저 창간 65주년을 맞은 기독공보 독자들과 기독공보 실무진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씀 부탁드린다.

서정우교수 : 창간 6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동안 기독공보는 민족과 교회와 함께 많은 일을 했다. 민주화운동과 남북평화통일운동, 세계교회와의 협력을 위한 수많은 일을 감당했다.

신문은 독자가 상당히 중요하다. 독자의 성원 없이는 신문이 살아날 수가 없다. 독자를 신문의 주체로 받아들여, 적극적인 지원과 성원이 필요하다. 기독공보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한다. 아울러 기자는 신문의 중심이다. 좋은 기자가 좋은 기사를 만들고, 좋은 기사가 좋은 신문을 만든다. 기자의 수준이 신문의 수준이다. 그동안 헌신적인 노력에 기독공보 실무진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안 국장 : 언론(신문)은 비판적 기능과 계도적 기능의 균형을 맞추며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본래의 역할이다. 기독교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서 교수 : 기독교언론도 언론의 큰 테두리 안에 들어간다. 기독교언론은 특수 언론이다. 특수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일반적 기능은 교계의 정보를 전달하고, 교회 환경을 긍정적으로 감시하며 교회가 형성하는 문화를 전승하고, 기독교의 사회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 언론의 기능이다. 이것은 단지 필요조건이다.

충분조건으로 "기독교언론은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국민의 70%정도가 "우리 사회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지수는 전세계 1백3위다. 경제적으로 부요해졌지만 국민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불안감은 더해졌다.

기독교언론은 이런 사회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언론의 좌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주는 곳이 별로 없다. 기독교언론은 국민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언론이 되면 좋겠다.

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어둠을 밝히고, 부패한 곳은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일반 언론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드러내고 밝히지만 치유하지는 못한다. 기독교언론이 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물질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물량주의,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 일반 언론은 확대 재생산만 한다. 격차를 늘리고, 갈등을 부각한다. 그래서 일반 언론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언론은 물질과 물량중심에 젖어든 사회 속에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신문화를 복원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힘을 쏟아야 한다.

예언자적 역할, 교회발전을 위한 촉매제 역할, 선교를 위한 역할과 생명 사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기독공보의 사시에도 생명을 살리자는 문구가 있다. 생명의 근원을 확산하고, 저출산시대 출산을 장려하는 일, 자살률 1위 국가의 오명을 벗도록 자살 예방하는 일 등 넓게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낳는 생명사상에 관심가져야 한다.

안 : 지난해 타블로 사건이나 천안함 사태에서 보듯 인터넷에선 사실 확인 안된 기사들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 세상엔 '좋은 뉴스'와 '옳은 뉴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뉴스와 함께 옳은 뉴스를 보도해야 하는 책임감을 늘 가지고 살아가지만 최근 한국교회의 여러가지 사건들을 접하면서 일각에선 "한국교회의 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다", 한편에선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들 하는데.

서 : 기독교의 역동성은 진실에 충성할 때에 가능해진다. 단기적으로는 혼란스럽고 교회의 이미지가 추락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과정을 밟지 않고서는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정의가 있으면 반드시 부패가 있다. 정의와 부패의 갈등이 있어야 합(合)이 도출된다.

결국 기독교언론은 1차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데 충성해야 한다.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아프고,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이 사실을 딛고 이겨내야 한다. 절대로 부정이나 비리를 감춰서는 안 된다.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릴 수 없다. 믿음은 말의 진실성에서 오는 것이다. 언론의 고유한 사명은 신뢰이다. 그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교회의 성숙과 사회와의 소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안 :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경제와 문화가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해 연말 정부의 종편 채널 선정 발표도 그런 맥락 속에서 볼 때 향후 한국 신문 방송을 통틀어 언론계 지형의 변화가 예측된다. 최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인쇄 매체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 시대를 종이 신문의 위기라고 한다. 더욱이 기독교 전문신문으로서 기독공보는 경제논리로 볼 때 많은 어려움이 예측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기독공보도 물량주의의 많은 유혹을 받고 있다. 여기에 기독공보는 현존하는 주간신문 중 최고(最古)의 지령을 지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기관지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러한 때 기독공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서 : 디지털 혁명에 따라 신문의 위기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CNN 사주 테드 터너는 "10년 이내로 신문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신문의 비관론이 팽배하다. 하지만 비관할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환경적인 변화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다. 신문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혁명이 와서 인쇄매체가 어렵지만, 디지털 요소들을 인쇄매체로 활용하는 방안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예컨데 신문매체의 비주얼화가 필요하다. 사진을 확대하고, 글자를 키우는 방법 등의 편집기법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영상시대, 감성시대를 접목한 신문편집의 개성을 살리는 등,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또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신문의 전통은 '속도저널리즘'이다. 하지만 인터넷, 라디오, TV를 이길 수 없다. 결국 '속도저널리즘'의 패러다임에서 '심층저널리즘'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빠르게 전달하는 것보다 조금 늦지만 심층적으로 분석, 해설, 평가, 주장하는 언론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면 차별화를 통한 새로운 전략을 세워나갈 수 있다.

'속도에서 심층', '보도에서 해설'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야 한다. 신문은 정보 전달만으로도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라 정보를 체계화해야 한다. '정보'에서 '지식'저널리즘으로 향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저널리즘과 문학이 만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학은 상상의 세계이고, 저널리즘은 사실의 세계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논픽션(non-fiction)은 1백개의 저널리즘보다 감동적일 수 있다. 저널리즘의 논픽션화가 필요하다. 영상, 감성, 디지털 시대 변화의 물결에도 이 영역만큼은 빼앗기면 안된다. 이것만 잘해도 독자들을 포용할 수 있다.

또한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도 만나야 한다. 이것은 사회과학과 저널리즘의 결합으로, '정밀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이 문학과 아카데미즘을 만나면 타 매체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다. 이제는 디지털 혁명시대인 만큼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장을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쓰는 기법이 필요하다.

안 : 현재 이 시대의 화두는 '소통'이다. 한쪽에선 소통을 이야기하고 주도해 나가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소통 부재라며 계속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언론은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되어야 하며 더욱이 기독교언론은 교회와 교회, 교회와 사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서 : 소통이란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이다. 소통 없이는 인간 존재가 불가능하다. 숀 맥브라이드는 "소통은 인간을 본능에서 영감으로 인도하는 것"이라 했다. 소통은 공유면적을 확장하고 공통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의미를 넘어 느낌과 감정, 사랑, 믿음, 이해, 희망 등을 공유한다. 소통이란 만남과 대화, 그리고 나눔의 과정이다. 결국 소통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

소통의 3가지 기본원리가 있다. 첫째는 겸손이다. 겸손(Humility)은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휴무스(Humus)에서 비롯됐다. 흙은  오폐물을 받아서 거름을 만들어 식물을 자라게 하는 영양소를 공급한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겸손을  의미한다. 이해한다는 의미의 영어 '언더스탠드(understand)'는 밑에 선다는 뜻이다. 자신을 낮추면 소통이 안될 수 없다.

둘째는 역지사지, 상대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화육(Incarnation)하셔서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며 소통하셨다. 그 다음에 선입관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이것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 이상을 명심하면 기독공보는 소통을 좀더 구체화할 수 있는 미디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은 자신과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 영적인 소통이 있다. 일반 신문은 타인과의 소통 밖에 하지 않는다. 일반 신문에게 사회적인 소통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기독공보는 사회적인 소통만 가지고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사회적인 소통보다는 영적인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언론은 수평적 소통도 중요하지만 수직적 소통도 중요하다. 수평과 수직의 만남이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한 소통을 이룬다. 기독공보는 교회와 사회, 하나님과 인간과의 소통의 조화를 잘 이뤄내기 바란다.

안 : 평생, 학자이면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교회를 바라볼 때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서 : 항상 기도하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40여 년 교회를 다녔지만 영성이 약하다. 아직까지 신앙생활이 미약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웃음) 간디가 '나라가 망하는 4가지 조건'을 말했다. '정치가 원칙을 잃고, 법이 정의를 잃고, 경제가 윤리를 잃고, 종교가 자기 희생을 잃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간디의 말을 빌어, 바람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면 좋겠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서 불을 밝힌다. 그동안 엄청나게 성장한 만큼, 기독교가 세상을 밝히기 위해 광야의 외치는 소리보다는 자기 몸을 태워서,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노력을 더 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모든 문제를 수렴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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