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상이 '할렐루야' 외치는 그날까지

온세상이 '할렐루야' 외치는 그날까지

[ 아름다운세상 ] 창단 30주년 맞은 할렐루야축구단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0년 08월 25일(수) 09:39
   
▲ 다문화 가정 돕기 자선축구대회를 마친 후 국가대표 주축팀과 함께 한 할렐루야축구단.

지난 8월 20일 안산와스타디움 내 안산할렐루야축구단 숙소. 단장 겸 감독 이영무목사의 안내로 내부로 들어서자 선수 10여 명이 모여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정숙전도사(태릉선수촌교회)의 인도로 성경공부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30도가 넘는 땡볕에서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피곤함도 잊고 이 전도사의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사뭇 진지한 자세로 성경공부에 임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중요한 스케줄 중 하나이지요." 이영무단장은 "축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개인이 굳건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 선수가 아닌 할렐루야축구단 선수잖아요"라며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수단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니 오전 7시 30분 성경묵상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아침식사 후 9시 30분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가진 후 오전 연습이 시작된다. 선수들의 신앙 증진을 위해 매주 성경공부도 진행된다. 스케줄이 이러하다보니 믿지 않는 선수가 입단하더라도 6개월이 지나면 세례를 받고 그 이후 제자훈련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 덕분에할렐루야 축구단 출신 중에는 후에 목사가 된 선수도 10명이 넘고, 선교사가 된 선수도 20명이 넘는다.
 
또한, 매년 해외 선교사역 시에는 그 나라의 유명팀과 친선시합을 갖고 신앙집회를 열어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2002년과 2004년에는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등 중앙아프리카 선교사역을 진행했으며, 매년 겨울에는 태국에서 전지훈련 및 선교활동을 펼친다.
 

   
▲ 훈련 후 이정숙전도사의 인도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선수들.

이들은 종교와 인종, 이념을 초월한 축구라는 강력한 무기를 통해 화합과 사랑, 구원의 복음을 전해왔다. 2004년 선교여행에서는 당시 르완다에서 내전 중인 투치족과 후투족이 할렐루야축구단과의 경기를 통해 서로 용서하고 하나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고, 2009년 태국에서 열린 퀸스컵 대회 우승 시에는 축구단이 지나갈 때면 승려들까지도 "할렐루야"하고 인사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태국 매스컴에서도 축구 중계를 하며 온통 "할렐루야"를 외치던 모습에서 이영무목사를 비롯한 모든 선수단들이 감동을 받았고, 태국 국민들에게도 큰 전도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올해에는 창단 30주년을 맞아 남아공월드컵을 마친 국가대표 선수들을 주축으로 다문화가정 돕기 축구 친선경기를 가져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시합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축구선수인 박지성선수가 일일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믿음의 구단 '할렐루야축구단'은 이영무목사와 당시 축구협회 이형자권사의 기도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시절부터 축구를 통해 세계 방방곡곡에 복음을 전하고 희망을 주는 구단을 설립하고자 기도해 온 이 목사는 1979년 당시 축구협회 최순영회장과 아내 이형자권사의 기도와 도움으로 1980년 12월 20일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축구팀으로 할렐루야축구단 창단식을 가졌다.
 
최초의 프로팀이 창단되자 최고 수준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결국 할렐루야축구단은은 1983년 슈퍼리그(K)리그에서 원년 챔피언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이후에도 국내외 각종 축구대회에서 12회 우승과 20회 준우승을 거두고 황재만, 이영무, 신현호, 박상인, 박창선, 박민재, 박성화, 최종덕, 조병득, 오석재 등 국가대표 출신 30여 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도 잠시 할렐루야축구단은 1986년 재정악화로 아마추어(실업)로 전향하게 됐다. 1998년 IMF 재정위기 때에는 극도의 재정악화로 결국 해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믿음의 축구팀 재건에 나선 것은 이영무목사였다. 1982년 5월 할렐루야축구단 창단 1년 5개월만에 축구단의 선교를 강조하다가 단장과의 마찰로 팀을 나와 임마누엘축구단을 창단해 이끌던 이 목사는 1999년 두 팀의 멤버들을 모아 할렐루야축구단을 재창단했다. 비록 믿음으로 재창단을 하기는 했지만 그 길은 광야와 같은 고생의 길이었다. 그러나 고난의 길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헤쳐나갈 길을 만들어주셨다. 이사장 박종순목사(충신교회)와 부이사장 김삼환목사(명성교회) 김명혁목사(강변교회 원로)를 중심으로 한국교회가 할렐루야축구단을 위한 후원에 나선 것. 숙식을 할 곳이 없는 선수들을 위해 명성교회(김삼환목사 시무)에서는 10년간 합숙소를 제공했고, 이랜드에서는 축구단 해체 후에도 매달 1천만원의 후원을 전해줬으며, 온누리교회(하용조목사 시무)에서는 선수단 버스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2천여 명의 회원들이 한달에 천원 혹은 몇 천원씩 후원해주고 있다. 또한, 2006년에는 안산시와 연고를 맺고 할렐루야 유소년 FC를 창단, 1백여 명의 꿈나무들을 육성하고 있다.

현재 일반 내셔널리그팀들은 20~25억으로 운영하는데 할렐루야축구단은  10억 정도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어 선수들도 일반 팀 월급의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실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렐루야축구단은 큰 꿈을 꾸고 있다.
 
2010년 안에 K리그 복귀와 정상 차지, 그리고 2020년에는 아시아 클럽대회 정상 등 세계적인 명문구단이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들은 온세계인들이 다 알잖아요. 할렐루야축구단도 세계 최정상의 팀이 되면 온 세계가 "할렐루야"를 연호하게 되겠지요. 비록 지금은 미약해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을 믿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함께 기도해주시면 그 꿈은 더욱 앞당겨지겠지요."
 
할렐루야축구단의 목표를 말하는 이영무목사의 눈빛은 인터뷰 그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 할렐루야축구단 단장 이영무목사는?

1977년 4월 월드컵 예선.

   
▲ 단장 겸 감독 이영무목사.

 
홍콩과의 첫 경기에서 당시 축구 국가대표 이영무선수는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한두달 정도의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꾸준한 치료를 받던 중 이영무선수는 토머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읽게 됐다. 큰 감동을 받으며 읽어 내려가는 중 마음 속에 한 질문이 떠올랐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날 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국가대표'라는 명예만은 절대로 버릴 수 없을만큼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음성에 며칠을 고민하던 이영무선수는 "주신 이도 여호와시고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십니다"라는 욥의 고백을 하며 대표팀을 떠났다.
 
후에 축구협회 회장의 강력한 권유로 다시 대표팀으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 일화는 이영무감독의 철저한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m65㎝, 53㎏의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영리하고 악착같은 플레이로 국가대표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던 그는 1970년대 한국축구의 주역이었다. 당시 이영무감독과 함께 뛰던 선수로는 1년 선배인 차범근, 동기인 신연호 박창선, 1년 후배인 허정무, 조광래 등이 있다.
 
그는 할렐루야축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독일 분데스리가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하고 국가대표에서도 일찍 은퇴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세상의 우승이 아닌 복음을 위해 쓰임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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