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에 대하여

보수와 진보에 대하여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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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23일(수) 10:19

우리 사회는 지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보수ㆍ중도ㆍ진보라는 도식의 구도가 뚜렷하게 형성되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인 대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이 세상에서만이 아닌 교회 안에도 내재되어 있다. 교인간에 보수ㆍ진보라는 이념적인 입장차이로 인해 큰 소리가 오가고 심지어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상호간의 관계가 깨어지기도 하고, 설령 관계는 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이념적인 대화는 회피함으로 마음의 벽을 쌓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원고 청탁을 받은 6월 10일 모 일간신문에 보니 보수ㆍ진보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한나라당 초선의원 54명 워크숍에서 진보를 포용하는 개방적 보수로 거듭나야', '검사 스폰서 파문에 대한 진상위원회의 발표에 대해 보수진보 시민단체들 한 목소리로 솜방망이 처벌이라 논평'. 심지어 이런 기사도 있었다. '이념(진보ㆍ보수)으로 나뉜 낙동강 -대구경북은 4대강 찬성성명, 경남은 저지구성 착수- 같은 강인데 시도지사 성향에 따라 갈려, 상하류 두동강 위기.'

어느 목사의 이야기이다. 예배 후 한 청년이 달려와 이렇게 묻는다. "목사님은 우파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목사님들은 대개 우파던데요, 그리고 보수구요." "도대체 우파, 좌파가 뭔가?" "우파는 경제적으로는 자유경제체제를 선호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우파라고 하지요. 좌파는 경제적으로 분배에 기본을 두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하고, 그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죠." 목사들은 때때로 보수, 진보에 한 마디 더 듣기도 한다. "회색입니까?"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는 무엇일까?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그의 책 '좌파 우파'에서 '좌우라는 메타포(은유)는 인류의 지성이 발명해 낸 지구의 특산물인데, 이 좌우는 프랑스 혁명 중에 탄생해서 지난 두세기 이상 인류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세계로신문의 김제완은 '좌파와 우파는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이 보이고, 보수와 진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좌우란 고정적인 개념인데 반하여 보수ㆍ진보는 상대적이다'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하여, 그렇다면 교회는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생각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념을 사전에서는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라 했다. 생각이나 견해는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렸다고 해서는 안된다. 갈등은 다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틀렸다고 하는 정죄에서 오기 때문이다. 보수는 진보의 장점을, 진보는 보수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극단적인 생각은 지양(止揚)해야 한다. 극보수, 극진보는 어느 쪽이든 문제가 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동하고 있는 이유는 이런 극단적인 이념을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금년 초 사회통합위원회가 "당신의 정치 이념적 성향은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보수 29.7%, 중도40.3%, 진보30.0%로 나타났다. 건강한 사회란 양극단이 줄어들고 중도가 더 많아지는 사회일 것이다.

셋째, 신앙이 이념보다 앞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갈등을 겪는 이유는 이념과 신앙을 동일시하거나, 이념을 신앙보다 앞세우기 때문이다.
이념 안에서는 상대방을 용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것들이 무엇이며, 사랑하지 못할 것들이 무엇인가?

이제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신앙의 원리로 돌아갈 때 우리 교회는 이념갈등의 풍랑을 만난 이 세상에 진정한 구원선이 될 것이다.

정우 / 목사ㆍ미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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