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한국교회와 6.25 한국전쟁 

②한국교회와 6.25 한국전쟁 

[ 특집 ] 6월 특집 한국역사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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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0일(목) 09:35
이데올로기에 찢긴 십자가

최상도목사 / 英 에딘버러대 박사과정

2차 세계대전 종식으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한반도는 외적으로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각각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내적으로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갈등이 존재하는 정치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김구(金九, 1876-1949)로 대표되는 우익 민족주의와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을 중심으로 한 중도 민족주의의 좌우 합작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군정과 기독교계의 지지를 얻은 이승만(李承晩, 1875-1965),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을 필두로 한 민족주의 좌익, 그리고 박헌영(朴憲永, 1900-1955) 등, 갈등을 통합으로 풀기보다는 외세와 결탁하여 특정 지역에서라도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던 이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외세에 의한 분단을 고착시켰다. 이후 1948년 5월 남한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 9월 북한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이후, 한반도의 3.8선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냉전의 제1경계선이 되었다.

6.25 한국전쟁은 '냉전'이라는 당시 세계체제의 갈등의 결과이며, 동시에 이 외세의 지원을 힘입어 정치 주도권을 장악했던 한반도 내의 분열과 갈등의 결과이다. 결국 6.25 한국전쟁은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대립 상황'에서 진행된 전쟁이다. 이 이데올로기의 극한적 대립과 갈등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방 후 분단상황에서의 남북한 교회 모두 6.25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동시에 동조자이다.

해방직후부터 남북한의 교회지도자들의 정치참여는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스도 국가(Christendom)' 건설을 꿈꾼 교회 지도자들은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반공'을 모토로 정치 세력화하고 정부를 형성한 이승만을 전폭지지하며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이루었다.

북쪽에서는 1946년 11월 3일 5도연합노회의 주일 선거거부 사건으로 친정부적 교회 조직체의 필요성을 느낀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 같은 해 11월 28일 '북조선기독교도련맹'이 조직되어 "미국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건국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기독교인에게 '애국주의 교양'을 실시하는 등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적극 지원했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 해방 후 남북교회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따라 소극적 동조 내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였고,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남북 교회 모두 각각의 위치에서 전쟁을 적극 지원하게 되었다.

남한교회 지도자들은 기독교 청년들로 구성된 의용대 조직과 이들의 전선 배치까지 시도했으며, 평양 탈환을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고, 부산 피난 시절 한경직과 류형기를 미국에 파견하여 한국 정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는 등 전쟁 승리를 위한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전쟁의 승리를 통한 통일'이라는 남한교회의 태도는 1951년 여름, 휴전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자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휴전 반대 입장을 고수한 남한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여 정전(停戰) 반대, 휴전 반대 집회가 전국각처에서 열렸고, 세계교회에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은 '설복될 수 없는 마귀'인 '공산주의를 굴복시킴으로써'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휴전 즈음에 남한 교회는 '최고의 구국적 행위'로 휴전 반대, 정전 반대 운동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을 중심으로 한 북한교회는 인민군의 서울탈환 환영예배를 드렸고, 평양 및 북한 전 지역에서 개최된 궐기대회를 통해 전국의 교인들에게 '정의의 성전'에서의 인민군의 승리를 위한 예배와 기도를 호소하며 북의 전승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나아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기 대금 헌납운동도 전개했다. 이와 같이 남북한 교회의 '전쟁 승리를 통한 조국의 통일'의 입장과 그에 따른 전쟁 동조 행위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한편 전쟁은 남북한 교회의 엄청난 물적, 인적 손실을 초래했다. 전쟁 전 1천 개 이상이던 북한 지역의 교회당은 초토화 전술의 대대적인 미군 폭격에 의해 소수만 남게 되었고, 3, 4만 명의 신자들이 양측의 교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1950년 11월 8일 주일예배를 드리던 신의주 제1, 2교회 교인 2백50여 명이 미군의 포격으로 몰사하였다는 보고는 유명한 사례이다.

1952년 6월 20일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보고된 내용에 따르면, 9백73개의 남한 지역 교회가 소실 및 파괴되었고, 9백97명의 교역자들이 공산군에게 체포되었다. 또한 약 8백89명의 신자들이 교전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전체 남한개신교회 순교자 중 80% 이상이 이 시기에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어떠한 원인에 의해 발생되었던지 간에 전쟁의 본질은 파괴에 있다. 전시하에서 나의 생명은 적의 죽음으로 보장되고, 내가 속한 사회의 존속은 적군이 속한 사회의 패망으로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전쟁의 파괴성은 개인의 육체와 정신뿐 아니라 사회적 기반을 송두리째 폭파하고 그곳에 포흔(砲痕) 같은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박태균의 말대로 전쟁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인간을 집단적인 환각상태로 몰아가서 가장 이성적이라는 인간을 가장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집단적 환각 상태의 비이성적 행동으로 인한 파괴적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전쟁의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모두 겪게 된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내적으로 볼 때,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모한 희생과 파괴의 상처만 남긴 전쟁이었다. 이 파괴적 전쟁, 참혹한 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지 동조했다는 사실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 죽음(고후 5:18~20, 엡 2:13~16)을 통한 복음에로의 초대라는 사명을 저버리고 한 국가, 정부에 예속되어 그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시녀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대동아전쟁을 지원한 일본기독교단의 전쟁협력과 강약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남북한교회의 한국전쟁 동조, 지지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국가에 예속된 교회, 복음보다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른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일본기독교단이 1967년 3월 26일 부활절에 총회의장 스즈키 마사히사의 이름으로 '제2차 세계대전하에서의 일본기독교단의 전쟁 책임에 관한 고백'을 발표했지만,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하는 이날까지 남북한교회는 한국전쟁 책임에 관한 어떠한 고백도 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냉전 체제 속에서 상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심지어 전쟁 중에 교회를 지키기 위해, 피난 가지 않은 남은 교인을 끝까지 목회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본 받아 세상적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기보다 평화적 죽음을 선택한 순교자들의 죽음을 남한교회의 '반공주의 재생산 기제'로, 그리고 한국 전쟁의 산물인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유포'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전히 교회는 지배 정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동조자 내지 지지자로 자처하므로 세속적 권력을 얻으려 하고 있다.

냉전 종식의 세계체제 속에서 남과 북은 여전히 냉전을 유지하면서 분단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므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비이성적 환각 상태의 무지막지한 전쟁의 파괴를 경험해야만 했으며, 전쟁 후 마련된 정전 체제 속에서 여전히 전쟁 위협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전쟁 미경험자인 젊은 세대에게 전쟁은 과거 역사의 한 장면일지 모르나, 전쟁 경험자들에게는 전쟁의 살상과 파괴를 다시 기억하고 재연한다는 것 자체로 고통이고 악몽이다. 따라서 전쟁의 상흔과 후유증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세속적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인한 전쟁의 폭력에 같은 폭력적 대항 혹은 그에 대한 동조와 지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여준 자기 희생적 사랑과 그로 인한 '화해'의 성취라는 하늘의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가 극도의 긴장상태에 있는 이 때, 남과 북의 교회는 국가 권력의 시녀로 폭력과 파괴의 전쟁 지지, 동조의 과오를 회개하고, 세상의 폭력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에 화해를 이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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