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적의 관리 소홀, 왜?

기독교 사적의 관리 소홀, 왜?

[ 특집 ] 5월특집, 기독교 사적 어떻게 보전해야 하나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0년 05월 11일(화) 19:49

몇 년전 취재 중에 경험했던 황당한 일이 있다. 충남지역에 위치한 교회로 기억되는데 교회 창립 90주년을 맞이한 교회로 지역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교회가 90년이 됐다는 증거는 어떤 근거 자료도 없었다. 오직 근거 자료로 내어 놓는 것이 '7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이 있는 앞에서 교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 한장 뿐이었다. 농촌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교회는 이농 현상으로 상당수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 도시로 이주했을 뿐만 아니라 목사의 잦은 교체로 인해 교회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교인도 없는 형편이었다. 당시 만났던 담임목사도 부임한지 3년 정도 였으며, 직전 담임목사 역시 1년 정도 시무하고 떠났다는 것. 교회 건물 또한 역사적인 자료가 될 만한 근거 자료를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선교역사는 1백30년을 앞두고 있다. 세계교회사와 비교할 때 짧은 역사 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급성장'이라는 훈장(?)을 달았지만 내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 지적해야 할 문제가 뿌리, 즉 한국교회의 역사를 바른게 간직하고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특히 신앙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서는 구전과 같은 무형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유형 사적을 간직한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렇다할 사적들을 남겨 놓지 못했다. 선교 역사 1백20여 년을 지나면서 많은 교회들이 1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고 있으나 상당수의 교회들이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내 놓기 보다는 전해 내려 오는 구전에 의지하거나, 좀 나은 경우에는 당시 기록된 문서에 근거하는 정도이다. 당시 기록만 보존하고 있는 것도 양호하다. 교회가 창립된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나서야 구전에 의지에서 기록한 자료를 근거로 역사를 추정하는 일도 다반사다. 당연히 사료적 가치가 있는 당시의 사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 교회의 경우 역사적 근거를 그 교회에 출석하던 장로의 묘지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글자 몇 자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 왜 한국교회는 사적을 남겨 놓지 못했을까?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임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개화와 함께 들어온 기독교 뿐만 아니라 당시 혼란기에 역사적인 자료를 간직하거나 이를 보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독교계 또한 개화기의 혼란기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한국전쟁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사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재 1백년을 역사를 기념할 만한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국기독교 역사 초기에는 예배당의 형태가 특별했다. '남녀유별'이라는 유교 전통에 따라 남녀가 구분해서 예배를 드리던 'ㄱ'자 예배당이나 가운데 칸막이를 해서 사용했던 예배당의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건물이 오래돼서 보존을 못하는 것도 있지만 사료적 가치를 생각하기 이전에 교회가 성장하면서 개인에게 매각하거나 헐어버리고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소멸된 경우가 많다.

경북 김천에 있는 1백년이 넘은 교회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 교회가 사용하던 'ㄱ'자 교회가 몇 년전 방문했을 때 개인 소유로 되어 있었다. 담임목사의 안내를 받았으나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다.

이같은 결과는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수직성장을 하면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교회 건축에 매진해 왔다. 이 건축으로 인해 희생(?)된 것이 결국 기독교 사적들이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 조차도 이미 예전의 건물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회의 터에 '00교회가 최초로 새워진 자리'라고 세겨진 비석을 설치해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그남아 사료관을 갖고 있는 교회들의 경우는 옛날 건물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보존하는 정도이다.

심지어는 국가적 차원에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해 관리하는 '사적'으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새예배당을 건축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적으로 지정된 것을 취소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겨우까지 있었다. 사적으로 지정이 되면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교회를 확장하고 재건축하면서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흔적을 없애버리는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역사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이같은 사례는 최근 재개발 되는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기독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적이 하나 둘 씩 사라지는 데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한 몫한다. 한국교회는 '사람이 바뀌면 변해야 한다'는 강박관렴을 가지고 있다.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가 수직성장의 시기인 1970, 80년대에 주인공이었던 교회 지도자들이 은퇴를 하면서 새로운 지도력으로 교체되고 있다. 그러면서 교회들은 변화와 발전을 꿈꾸면서 과거의 것에 대한 소중함 보다는 미래에 대한 비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새로운 발전계획에 걸맞는 새포대를 준비한다는 명분을 앞세운다. 기독교 역사적 사적 보존이라는 입장에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도시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유형의 사적이 보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지방의 교회들도 교회 구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소도시나 군이하의 지방에 위치한 교회들은 담임교역자의 교체가 잦다. 2, 30년된 교회의 경우 담임목사가 10번 정도 교체된 경우는 양호한 수준이다. 당연히 역사가 오래된 교회는 수시로 담임 교역자가 교체되었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를 보존하고 살핀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근거가 될만한 자료는 하나도 없어 구전으로 내려오는 내용에 의지해 교회의 역사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들어 기독교 사적을 보존하는데에 있어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이 되면서 지방마다 내세울 수 있는 특색이 있는 역사적 자료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에 일부 지적에서는 근대화를 이끌었던 기독교 유적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 혹은 중앙 정부의 예산을 지원 받아 사적지 보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역사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역의 유지로 자리잡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사실과는 다르게 역사를 왜곡하는 사례가 실질적으로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는 사적을 보존하지 않은 것 보도다 못하다고 지적하는 역사 관계자들은 사적을 보존하는 것 이상으로 정확한 역사를 찾아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일부에서 일어 나고 있는 기독교 사적을 사유화하려는 움직임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대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여한 것이 한국교회의 올바른 역사를 간직하는 것이며, 이 우수성을 증명해 보여줄 수 있는 사적을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독교 사적지가 무분별하게 소별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