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기독교 사적 보존의 당위성

② 기독교 사적 보존의 당위성

[ 특집 ] 5월특집/ 기독교 사적, 어떻게 보전해야 하는가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5월 06일(목) 14:05

'주님과 만난 이들의 흔적 있는 그 곳'

   

▲ 정성한 
영남신대 교수

세계 곳곳에는 소위 '성지(聖地)'라고 일컬어지는 기독교 사적지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도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집트, 시리아, 터키 등의 나라에는 예수 그리스도 및 초대교회와 관련된 사적지가 많아서 연중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끊임없이 방문한다. 기독교인들이 그곳들을 방문하는 이유는 여타의 문화관광과는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그곳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지금은 비록 몸으로 계시지 않지만,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을 만나고 돌아온다.

사실 우리는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을 여기에서도 성경을 통해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을 만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기회가 되면 꼭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곳에 가면,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이 '사셨던 흔적'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삶의 흔적들을 내눈으로 직접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곳에 내가 서 있으면서 그분과 나 사이의 시간의 차이를 뛰어 넘어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중요한 본능들 가운데 하나인 종교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의 안내자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방문자들이 그 삶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알고 보면,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이 살던 곳'은 이제는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심지어는 지형마저 변해 버렸지만, 그곳에 서 있는 신앙인의 마음은 그런 것에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이 그곳'이지 않는가!

여타의 종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사적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우리가 사적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이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땅(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이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그 이유가 그곳에서 살았던 그분들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디든, 예루살렘이든 서울이든 시골이든, 그곳에서 사셨던 그분들의 삶 이야기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이야기가 한 신앙으로 연결되어 하나님 나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이다. 앞선 신앙인과 지금 신앙인의 삶이 만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우리 주님이 가르치신 신앙과 삶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곳은 멀지않은 장래에 기독교 사적지가 된다. '왜 기독교 사적지를 보존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이렇게 해서 충분히 답변이 된다. 다시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우리는 평상시 늘 성경을 통해 주님과 사도들을 만난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시간을 내어 믿음의 조상들의 삶이 배어있는 사적지를 방문하여 그분들의 삶을 통해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기도 한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직 '성지'와 '기독교 사적지'라는 말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아직은 명확한 구분 없이 그냥 뒤섞어 쓰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성지는 주님이나 사도들과 직접 관련된 곳들에 자연스레 붙여 사용하는 듯하고, 기독교 사적지는 그냥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곳들에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해 부르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사실상 성지든 기독교 사적지든 엄밀하게 보면 같은 말이다. 그 이유는 둘 다 앞서 가신 분들의 신앙과 삶에 관련된 곳들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다 성지라 부를 수 있고, 모두다 기독교 사적지라 부를 수도 있다.

역사가 오래되었고, 중요한 인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규모가 크고, 잘 정비 되어 있어 방문자가 많으면 성지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기독교 사적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 명칭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에다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의 문제이다.

사실 가톨릭에서는 성지라는 말을 즐겨하고, 우리 개신교는 주님과 사도들과 관련된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는 성지라는 말 보다는 기독교 사적지라는 말을 더 잘 사용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사람에 의한 것을 주님이나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우리 개혁교회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사적지 그 자체보다는, 사적지에서 만나게 되는 조상들의 신앙과 삶을 통해 나의 신앙과 삶을 되돌아 보아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려는데 마음을 모은다. 따라서 우리에겐 사적지의 역사(연대)가 긴지 짧은지를 따지기에 앞서, 이곳에서 살았던 신앙인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우선 음미해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역사적 의미(역사성)를 부여해 준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사적지의 발굴 및 보존은 그 역사뿐만 아니라 그 주인공에 있어서도 다양할수록 더욱 좋다. 역사가 오래된 사적지와 짧은 사적지, 선교사나 목회자와 관련된 사적지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평신도 사적지, 순교자 사적지나 의미있는 삶에 관련된 사적지 등. 웅장한 한 개의 사적지보다는 소박하지만 마음 편하게 언제든 가까이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사적지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눈으로만 보게 되는 사적지보다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사적지가 더 좋다. 영웅적인 행동을 한 어느 특정인과 관련된 사적지도 있어야겠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어울려 살았던 많은 이웃들의 이야기가 있는 사적지가 많으면 더욱 좋다. 기독교 사적지의 안내판에는 과거에 얽힌 일에 대한 간단 명료한 사실을 기록해 놓아야 하지만, 그 사적지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이면서도 인류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어느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내용도 적혀 있으면 더욱 좋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을 닮은 선배들의 삶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한국교회 안에도 교회역사에 의미있는 사적지들을 발굴하여 보존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아 교회사학도의 한 사람으로 참 감사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늘 유념해야 할 점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독교 사적지 발굴 및 보존 운동이 다른 종교의 동일한 운동과 경쟁하는 마음이나, 지방자치 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사업에 지나치게 의존되어서는 안된다는 두 가지 점이다.

다른 종교의 사적지처럼 기독교의 사적지도 규모나 내용이 번듯해야 한다는 유혹이나, 지역 문화재들을 발굴한 후 재건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의 한 방편으로 삼으려는 정책에 유혹당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는 자본과 관련이 있어서 바로 앞에서 말한 바람직한 기독교 사적지 보존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역사가 왜곡되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가장 바람직한 일은, 지역 교회와 지역 신학교가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독교 사적지를 발굴해 내어, 언제든 찾아가 활용 가능한 공간으로 만든 후, 교회와 지역사회가 삶을 나눌 수 있는 터전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사적지라고 부를 만한 곳은 본디 그 시작이 그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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