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세월 소녀들의 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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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부산진일신여학교, 역사기념 전시관으로 재탄생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0년 04월 21일(수) 10:08
   
▲ 예전 그대로 재현된 교실에 앉은 부산진일신여학교 마지막 졸업생들.

"똑같네. 똑같아. 우리 배울 때도 바로 이 책상에 앉았었지."

지난 5일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내에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된 교실을 찾은 백발의 할머니들은 꿈많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이곳을 찾은 네 명의 노(老) 권사들은 부산진일신여학교 마지막 졸업생들로 자신들이 공부했던 교사(校舍)가 기념전시관으로 새롭게 꾸며져 개관 감사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예식이 진행되는 부산진교회를 찾아온 것.
 
어린 시절 이곳에 앉아 꿈을 키우던 정태숙(동상교회) 정보애(부산진교회) 전원순(영락교회) 이명자(충현교회) 4명의 소녀들은 이제 평균 연령 86세의 은퇴권사가 되어 바로 어제 일 같던 먼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80세가 훌쩍 넘은 이들의 마음 속에 아직도 아름다운 어제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부산진일신여학교. 이 학교가 부산노회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노력으로 부산시의 협력을 이끌어내 기념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은 비단 이곳을 찾은 네 명의 졸업생들에게만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선교의 희생과 숭고한 민족정신이 어려 있는 부산진일신여학교가 기념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기독교인, 더나아가 종교를 초월한 모든 국민들에게 의미가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사, 민족사, 건축사적 의의
 
부산진일신여학교는 1895년 10월 15일 여선교사 멘지스에 의해 부산 동구 좌천동에 개설된 3년 과정의 여학교로 서울 이남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이었다. 신앙교육과 경건훈련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대거 배출했으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배출해 부산지역 복음화에 큰 기여를 했다.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신앙적 인재를 배출하는 일은 우리나라 선교 초기 호주 선교사들의 중요한 사역이었다.

   
▲ 기념식에서 테이프 커팅하고 있는 관계자들.

 
한국교회사적 의의와 함께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민족정신의 발원지였다는 점 때문이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일제 치하에서 부산ㆍ경남 지역 최초로 3ㆍ1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당시 16세 전후의 어린 소녀들과 교사들이 독립운동을 펼쳤던 민족정신의 전당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16세 전후의 어린 여성들로 구성된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군과 경찰에 의해 여학생 전원과 여교사 2명이 연행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0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학교가 폐교되기도 했다.
 
또한, 이번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개관은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ㆍ경남 지역 최초의 교육기관이자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로 전국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에 부산시는 지난 2003년 학교 건물을 부산시 기념물 제 55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  부산지역 최초의 기독교 관련 역사관
 
이번 개관한 기념관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자 중심의 전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동 기념관은 부산지역 초창기 기독교 교육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 관람객들이 역사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으며,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건축사, 한국교회사, 민족사적인 가치를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된 부산진일신여학교기념관으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설립 배경', '건축사적 의의',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실 체험관',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근대여성교육',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삼일운동' 등의 주제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 1백여 점을 영구 기증한 안대영장로는 "호주선교 1백21주년을 맞는 의미있는 해에 부산진일신여학교 역사관을 개관하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고 평가하고 "역사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초창기 부산여성교육에 대한 평가가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기념관 자료의 역사 고증 및 기념관 건축의 실무를 맡았던 탁지일교수는 "이 기념관을 통해, 복음화율이 가장 저조하다고 하는 이곳 부산경남지역에서 살아가는 꿈나무들이,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작지만 소중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개관예배에 참석한 이상규교수(고신대) 또한 "부산지역 최초의 기독교 관련 역사관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라며 "건물의 존립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산노회가 소유권을 지키면서 오늘의 기념관으로 개관하게 한 것은 부산노회의 어르신들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1백15년 전 믿음으로 뿌려져 지금까지 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왔던 선교의 씨앗이 이번 기념관 개관으로 탐스럽고 풍요로운 열매를 더욱 많이 맺기를 기대해본다.

 

# 신앙 역사 유물 부산시민 품으로

-부산노회, 부산시 협력으로 개관

이번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개관은 부산노회 소속 노회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노력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 5일 개관예배에서는 가장 큰 공이 있는 5인에게 공로패를 증정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상화장로(부산진교회 원로), 탁지일교수(부산장신대), 김경석장로(부산진교회 원로), 안대영장로(기독교선교박물관장), 김운성목사(부산노회 역사위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들.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는 건립독립운동 역사 이외에 선교 역사가 전시되는 문제를 두고 부산노회와 시 당국 사이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원래 지원하기로 한 금액이 다시 시의회를 거쳐 시로 환원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때 이상화장로가 나서 시와 구청에 선교역사를 함께 전시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중재해 결국 지난해 시비 6억원을 들여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치고 올해 추가로 1억5천만원을 확보해 기념전시관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탁지일교수는 기념관 자료를 역사적으로 고증하는 한편, 기념관 건축시에도 계속해서 건축업자들에게 수차례 연락하고 공정을 확인하는 등 기념관 건립에 있어 궂은 일을 도맡았다.
 
김경석장로와 안대영장로는 귀중한 기념관의 유물을 기증, 일반인들도 신앙 역사 유물을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안대영장로는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 1백여 점을 영구 기증했으며, 기념예배 시 1백여 년 전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사용됐던 풍금을 연주해 큰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한, 김운성목사는 노회 역사위원장으로 이번 기념관 건립에 노회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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