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악기로 다시 태어나다

하나님의 악기로 다시 태어나다

[ 아름다운세상 ] 지적장애인 오케스트라, 온누리사랑챔버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03월 30일(화) 20:05
   
▲ 온누리사랑챔버의 연주에는 훌륭함 너머의 특별함이 있다.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온누리사랑챔버의 연주를 듣기 위해 은평구 소재의 한 교회를 찾았다. 아직 내비게이션에도 잡히지 않는 뉴타운 지역. 기자를 태운 택시는 한참을 헤매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뛰어 올라가는데 불쑥 누군가 말을 건다. "설날 복- 많-이 받-으-세요." '아, 사랑챔버 단원이구나' 싶은 마음에 무작정 따라갔다. 이름은 김어령. 두번의 뇌수술로 지적장애인이 된 11년 경력의 베테랑 첼리스트였다.

다행히 무대에 나서기 전, 한 사람 한 사람 악기를 조율해주고 있는 손인경집사(온누리교회)와 단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곧바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데 이번에는 어령이가 핸드폰을 들고 사진찍는 기자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 인사할때 가르쳐줬던 이름을 정확히 저장하고는 "필카 김혜미 필카 김혜미"라고 반복하는 어령이. "첼로 좋아요? 얼만큼?" "이마∼안큼."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사진찍는 기자를 찍고 있는 어령이.
산만한 분위기의 대기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질서 안에 무언가 분명한 질서가 있다. 많은 말이 오고 가지 않았지만 눈빛 속에 저들만의 언어가 있는 듯 했다. 무대에 오르기 앞서 손을 꼬-옥 잡고 아이의 연주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드디어 시작된 사랑챔버의 연주는 훌륭한 것, 그 이상이었다. 화려한 기교나 멋드러진 무대 매너는 없었지만 맑고 투명한 영혼을 닮아 있는 연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끔 했다.

무대 위에는 '따로 따로 내 맘대로' 단원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완벽한 튜닝을 마친 오케스트라만이 남아 있을뿐. 느슨해진 줄이 각 음에 맞게 조여진 악기처럼 '솔, 레, 라, 시' 각각의 음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냈다. 그 중심에는 지휘자 손인경이 있었다. 악보를 볼줄 모르는 단원들이 더 많아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졌다는 지휘법이 독특하기만 했다. 오른손은 활방향을 왼손은 멜로디를 집어내는 사인이라는데 휘저음(?)에 가까운 팔동작으로 빚어내는 연주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여전히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어머니 부대가 항상 그림자처럼 뒤를 따른다. 하지만 음악과 하나가 된 순간, 새로운 단원들의 모습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무색케했다. "내 하나님은 크고 힘있고 능있어 못할 일 전혀 없네." 중간 중간 발을 구르며 회중과 소통할 수 있어서 단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이어서 시각장애와 자폐증을 가진 민수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 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리"하고 목청껏 찬양을 부른다. CD를 한 번만 들어도 금방 알만큼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친구란다.

   
▲ 온누리사랑챔버의 공연에는 언제나 어머니부대가 함께 한다. 자녀들이 혹 무대에서 실수하지는 않을까 눈을 떼지 않고 기도로 응원하는 모습이다. 어머니부대의 몸찬양.


이번에는 어머니들이 몸으로 연주할 차례.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의 성령 내 안에 계시네 오 놀라운 주의 사랑∼" 몸짓 하나 하나에 눈물과 아픔, 감사와 소망이 담겨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신양의 어머니 김명희권사는 "아이들이 이땅에 무슨 목적으로 태어났을까 싶은 생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위축돼 있던 어머니들에게도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며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됐고 아이들이 선교의 도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되서 말할 수 없이 기쁘다. 하나님의 꿈을 갖고 이 일을 시작하신 지휘자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엄마, 발달장애가 뭐야?" 한 아이가 무심코 던진 질문을 훔쳐 듣고는 괜시리 머쓱해졌다. 아이의 눈높이에선 당연한 호기심일터. 연주를 마치고 내려오는 플루티스트 승규에게 혹시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냐고 물었다. "다시 살아나는 거에요." 아무렴 어떠랴. 이들의 연주는 살아있고 그 생명력이 무대를 통해 흘러 듣는 사람의 마음을 다시 살아나게끔 하는 것을. 높이 솟은 장애의 벽도 조금씩 낮아져 언젠가는 허물어지겠지. 다시 살아난 천국에서는 장애를 잊고 훨훨 날아가겠지.

#예배하는 음악인 손인경

   
▲ 지휘자 손인경집사.
공연이 끝난 후 손인경집사의 귀가길에 동행했다. 바쁜 일정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 "엄마, 나도 장애를 가질 수 있어요?" 사랑챔버에 들어가고 싶은 둘째의 질문이란다. 손 집사는 스탠포드 대학교를 우등 졸업하고 1995년 예일 음대 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처음엔 그저 '자투리'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솔직한 고백. 뜻밖에도 '잘못된 광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자폐아도 좋습니다. 정신지체아도 좋습니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추가된' 광고의 내용을 받아들였는데 신청한 5명이 모두 '지적장애아'였단다. 이제 그녀는 눈물로 고백한다. "그때 잘못된 광고였다고 정정했다면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거에요.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 중에 저를 선택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챔버 단원들 이야기를 할때마다 그녀의 얼굴엔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연주자들은 무대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기 쉬운데 아이들과 함께 할때는 그렇지 않아요. 찬양의 은사를 만끽할 수 있답니다." 소통의 필요성도 방법도 모르던 단원들의 사회성도 그간 많이 발달됐다. 한국의 이작 펄만(Itzhak Perlman, 소아마비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숨겨진 재능을 찾아주고자 시작했던 일이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계획이요? 없어요. 지금까지 계획하고 온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야죠. 늘 기도하면서."

#온누리사랑챔버는…
1995년 5월 '온누리 장애우 음악교실'로 시작해,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신입생을 포함한 80여 명과 30명의 자원봉사 선생님이 있다. 10주년을 기념, 지난해 지휘자 손인경씨가 직접 10년간의 기적을 써내려간 '하나님의 꿈을 연주하는 사랑챔버'와 이들의 이야기를 소재로한 동화 '든든이와 푸름이'가 출간되기도 했다. 당시 뮤지컬 배우 이석준씨가 동화 영상 DVD에서 목소리 연기를, 10명의 단원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화제가 됐다.

그동안 복지관, 병원, 대학교, 교회는 물론 미국 및 홍콩 초청 연주, 영산아트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초청 공연을 비롯 여러 자선음악회에 참여했다. 출간 이후엔 사랑챔버를 찾는 곳이 부쩍 더 많아졌다. 지난 1월에는 청와대로부터 초청을 받고 1백60명의 행정관을 대상으로 연주했는데 청와대를 몰라서 '청와대학교'에 연주하러 간다고 생각했던 단원도 있었다고. 어느덧 11년, 단원들의 연령도 유치원생에서부터 만 33세의 청년까지로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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