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13일

3월 8~1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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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3일(수) 13:54

월-고난과 영광
본문: 고후 4:7-12
찬송가: 150장(구 135장)

고통과 역경 비난과 모함을 당할 때 대응하는 태도가 있다. 독수리형은 오히려 한 단계 더 높이 날아오른다. 황소형은 싸움을 벌인다. 풍선형은 투지도 없이 중심을 잃고 그냥 터진다.
 
고난이 무익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종종 그 이유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C.S.루이스는 그의 아내가 죽은 후에 이렇게 썼다. "당신의 눈이 눈물로 얼룩져 있는 한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고난은 구원을 이룬다. 고통에는 섭리가 있다. 신국을 쓴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통과 섭리에 대해서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로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 2시에 딴다고 한다.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영혼의 향기는 고난중에 발산된다.
 
고난은 영광을 가져다 준다. 폭풍이 없는 지역은 낙원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다는 것은 공기가 없다는 뜻이다. 바람은 배를 전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역경은 곧 바람과 같으며 파멸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도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게 주신 현실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간구할 때 넘치는 은혜로 어려운 시험과 견디기 힘든 고난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의 기도

고난의 뜻과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알게 하옵소서. 오직 말씀을 의지하며 생명과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 충 원 목사
평택성민교회 시무


화-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본문: 요 10:10
찬송가: 304장(구 404장)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에서 원시부족들은 사냥해 온 것을 공평하게 나누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느끼고 토라지는 사람이 있다.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 현대사회뿐 아니라 원시사회에도 동일하게 죄가 있음을 본다. 이런 죄인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다. 도둑에게 멸망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려고 오셨다.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배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곳에도, 엘리야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말할 만큼 지쳤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신음할 때에도 와주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기꺼이 와 주신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지만 믿는 자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얼마전 상영한 영화 아바타의 줄거리이다. 전직 해병 출신인 제이크가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비족의 일부는 제이크를 의심한다. 그래서 제이크를 죽이려 한다. 나비족이 살려면 제이크를 믿어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우리도 살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격려는 사람의 힘을 북돋워 준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고무는 북 고에 춤출 무 즉, 북을 쳐서 춤을 추게 한다는 뜻이다. 내가 북을 쳐 주면서 상대방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혼자 보다 훨씬 더 풍성한 모습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더 풍성해지도록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주셨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고 감사하자.

오늘의 기도

연약한 우릴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 생명을 도둑질하려는 죄의 유혹에서 지켜주시길 원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도 시인하오니 넘치는 생명력으로 힘차게 살도록 믿음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 현 천 목사
송우한일교회 시무


수-성령안에서의 기도
본문: 롬 8:26-28
찬송가: 185장(구 179장)

예수님의 제자중 한 사람이 "선생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오늘 본문은 기도에 대한 명쾌한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성령님은 성도들의 연약함을 도와서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해 주신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믿음과 신앙 지식 부족 등으로 기도할 줄 모르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더해 간구해 주심으로 신속한 응답을 받게 된다.
 
둘째,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뜻에는 실패, 가난, 질병, 고통, 불행이 없다.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하고 헛된 것만 구한다. 그래서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에 맞춰 우리의 행복을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신다.
 
셋째,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모든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나타나는 모든 행복과 불행을 포함시킨 말씀이다. 성령 안에서 드려진 기도는 식물이 뿌리내리고 있는 땅속의 유기물, 무기물들이 양분이 되듯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통해 축복의 열매를 맺도록 한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우리를 해피엔딩으로 우리의 드라마를 엮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 내 지식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전적으로 기도를 위임하면서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는 기도할 줄 몰라 아버지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리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나는 성령님께 의탁하고 위임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 건 국 목사
동심교회 시무


목-독생자를 주셨으니
본문: 요 3:16
찬송가: 544장(구 343장)

사순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본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은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을 사랑하심이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이 말씀은 복음 중에 복음이요 신약성경 전체의 요절이다. 악마가 인류에 죄를 짓게 하고 예수님까지 넘어뜨리려고 시험했지만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온 종교이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극치요 속죄의 표증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신 주님을 보라. 우리도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주님을 따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으면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삽니다. 우리를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 정 수 목사
미광교회 시무


금-왕성케 되려면
본문: 출 1:15-22
찬송가: 267장(구 201장)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많은 복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복을 누가 주는 줄 모르고 살아간다.
 
이 땅의 복은 찾아나서면 나설수록 힘이 들고 없어지는 특성이 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본문의 말씀은 두 가지 바로의 걱정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로 말미암아 전쟁 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대적과 손을 잡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바로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심한 노역을 부과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증가 억제 정책을 펴기 위해서 이스라엘 산파의 두령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이스라엘의 남자아이가 출산할 때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십브라와 부아는 믿음을 지켜서 결국 그와 그가정에 왕성케 되는 복을 받았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십브라와 부아처럼 왕성케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첫째,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십브라와 부아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로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을 두려워해 이스라엘 남자아이를 죽이지 아니하였다. 둘째, 믿음의 줏대를 지켜야 한다. 바로가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서 강하게 협박했을 때에도 그들은 절대로 환경에 타협하지 않고 지혜롭게 담대하게 말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왕성케 되는 복을 줄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의 줏대를 지키며 오직 하나님의 우선순간를 두고 사는 사람에게 왕성케 되는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많은 유혹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담대하게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로 말미암아 왕성케 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 태 목사
예수사랑교회 시무


토-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본문: 왕상 19:1-8
찬송가: 337장(구 363장)

시련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된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는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훼방하고 있기에 그런 세상에서 마귀의 방식을 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마귀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엘리야도 당시 사회의 풍습인 바알과 아세라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겼기 때문에 많은 이방 선지자들에게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백50명을 상대로 영적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불로써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엘리야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이방 선지자들을 모두 죽인 것을 듣고는 엘리야도 죽이겠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이 얘기를 들은 엘리야는 두려움에 광야로 도망을 갔으며, 그는 죽기를 구하며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할 만큼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음식을 먹게 한 후 힘을 얻어 호렙산까지 가게 하셨고, 거기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왕과 그의 뒤를 이를 엘리사를 준비해 두셨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천 명이 있음을 알려 주시면서 엘리야를 위로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신다.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붙들면 나아갈 길을 밝히 보이신다. 그리하여 결국에 최후 승리자가 되게 해주신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모든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은혜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오늘 겪고 있는 모든 시련도 오직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큰 믿음 더하여 주옵소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호 윤 목사
계수리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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