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4~9일

1월4~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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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30일(수) 09:52

월-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바쳐라
본문: 민 4:1-3
찬송가: 217장(구 362장)

병원심방이나 임종전심방을 할 때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어렸을 때나 학생시절에는 교회를 잘 다니다가 도중에 세상유혹과 신앙실족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서 수 십년을 방황했던 분들이 많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하나님께 떠나 있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가운데 토막, 가장 중요한 때를 무의미하게 허송하다가 병들어 상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마지막 쓸모없는 생의 꼬리 부분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 말씀인 민수기를 살펴보면 고핫, 게르손, 므라리 자손 중에서 30세 이상 50세까지의 레위인만 계수하여 그들이 회막일을 돌보게 하였다. 30세 이하는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아론의 두아들 나답과 아비후처럼 영적으로 미숙하고, 50세 이상은 시력저하와 신체노화로 정확하고 엄위한 성막봉사에 적당치 않았다. 30세이상 50세까지의 생애에서 가장 일 잘할 수 있는 중년의 레위인들만 성막봉사에 참가시켰다. 하나님 앞에 쓰다 남은 인생의 마지막 부분, 꼬리부분을 바치면 안된다.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가장 비쌀 때, 최고 능률이 있을 때, 젊고 힘있을 때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싸구려처럼, 병들어, 타다 남은 재와 쓰레기더미를 바치지 말아야 한다.
 
생의 젊음을, 중심을, 가운데를, 가슴살을,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바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와 같은 죄인을 부르시어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나의의 생을 바칩니다. 나의 가장 중요한 때를, 내 생의 가슴살을, 가운데를, 중심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열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방황하며 예수님께 오지 않는 많은 생명들이 하루 속히 주님 앞에 나와 함께 주님을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 창 영 목사
개봉교회 시무


화-웃으며 삽시다
본문: 창 21:1-7
찬송가: 550장(구 248장)

웃음은 우리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웃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웃음은 우리의 심령과 육체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라는 말씀이 위의 사실을 잘 설명해준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라도 웃으며 사는것이 필요하다.
 
오늘의 본문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1백세와 90세 되던 해에 아들을 얻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며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을 일"이라고 하면서 기쁨으로 웃는 내용이다. 성경에서 웃음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쓰여지게 된 곳이 바로 이 부분인데 이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웃음이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은혜 가운데 웃으며 살기를 원하신다. 아브라함 부부는 이삭을 볼 때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로 웃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본래 이 세상에는 웃음이 가득했었다. 에덴동산에 무슨 근심 걱정이 있고 슬픔과 탄식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죄로 인해 웃음 대신 슬픔과 탄식이 오고 근심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안에서 다시 웃음을 회복해야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4:4, 살전5:16)"고 하신다. 옛말에도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우리가 주안에서 기쁘게 살면서 웃음을 갖게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삶에 넘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항상 밝게 웃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도록 힘쓰자.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희망찬 새해를 주신 주님! 새해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기쁨으로 웃으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 인 채 목사
동해교회 시무


수-가치있는 시간 사용
본문: 시 84:8-12
찬송가: 330장(구 370장)

베드로 사도는 인생을 가리켜 나그네요, 행인, 거류민이라고 했다. 다 지나가는 일시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도의 생이 가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시적 인간이 영원성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 이것이 복음이지 않은가?
 
어떻게 제한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도 바울은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며 시간 사용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시편 84편은 예루살렘을 향해 길 떠나는 순례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즉,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한 날을 위해 다른 곳에서의 천 날을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세상에서의 가치보다 천 배의 효용을 지니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으로의 순례길이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순례자는 낮의 뜨거운 해와, 밤 짐승들의 습격,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강도와 도적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음에도 그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고 확고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인생의 효용성도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경쟁력도 다 포함된다. 영원성을 향하는 성도에게 이 세상의 일시성이 어찌 감히 경쟁할 수 있겠는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 인생을 사신 예수님을 보라! 위대한 신앙의 거성들을 보라! 한결같이 주님과의 교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던 이들이었다. 이제 우리가 그 계보를 이을 차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올 한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생에 영원하지 않은 것은 제하여 주시고, 영원한 것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철 민 목사
대전제일교회 시무


목-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본문: 눅 9:10-17
찬송가: 87장(구 87장)

이 기적은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한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온 열두 제자들과 뒷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위로하고자 한적한 곳으로 향했지만 사람들은 그 곳까지 찾아왔다. 예수님은 한 시도 쉴 틈이 없으셨다. 그래도 예수님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다 하시며 맞이하셨다.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이들은 고난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반면 부정적인 사람들은 적대감을 가지고 증오와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까?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난산으로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 짓는데,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으로 짓는다. 같은 사건을 두고 라헬과 야곱이 보는 눈이 전혀 다르다. 그토록 염원했던 아들을 낳았지만 라헬은 아들 때문에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했다. 그렇다. 야곱에게도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내를 잃는 슬픔이 있다.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 동안이나 삼촌 라반에게 봉사할 만큼 라헬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러나 야곱은 아들의 이름을 '오른손의 아들'이라 불렀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이루실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날 그의 인생을 이끄신 하나님을 통해서 얻은 통찰력이다. 
 
모든 사람과 사건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정에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주님을 발견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내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이기게 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은혜를 날마다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 홍 택 목사
고기교회 시무


금-복된 삶의 비결
본문: 눅 6:37-38
찬송가: 455장(구 507장)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호수는 갈릴리 호수와 사해이다. 두 호수는 너무 커서 바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둘에는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갈릴리 호수는 물이 잘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물이 맑고 물고기가 많아 사람들이 터전을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해는 물이 유입이 되지만,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물고기도 살지 못하고, 생명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물은 흘려보내야만 더 깨끗해지고 많은 생명이 살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된 삶의 비결은 받는 데 있지 않고 나누는 데 있다. 우리는 대부분 받은 것만큼 갚으려 하고 남이 먼저 대접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먼저 베풀고 나눠 주라고 말씀하셨다.
 
축복은 평소 작은 일에서 친절하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때 받는 것이다. 바로 베푸는 삶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의 삶이다.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나눔은 물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더 중요하다. 마음이 있으면 나눌 것이 생기고, 적더라도 나누면 풍성해진다.
 
특히 새로운 한해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복음을 나누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비록 큰 물질로 나누지 못하더라도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격려하고, 기도해 주고, 위로하고, 웃어줄 수 있다. 또한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 영생의 복음을 나누어 줄 수 있다. 2010년, 우리 가정이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베풀고 나눔으로 풍성한 복을 누리자.

오늘의 기도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새로운 한해는 나의 사랑과 시간과 열정을 이웃에게 나누게 하옵소서.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베풀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참된 기쁨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 현 대 목사
주내교회 시무


토-하란을 떠날 때에
본문: 창 12:1-4
찬송가: 358장(구 400장)

아브라함의 신앙은 탁월했고 삶은 위대했다. 그가 남긴 생애의 열매만 본다면 우리는 작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에게도 방황과 패배와 수모가 있었고 허송한 세월도 있었다. 그런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우리에게 용기와 위안을 준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첫 번째 소명을 받았다. 아버지 데라는 아들의 간청과 고집을 꺾지 못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힘들게 고향 우르를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데라는 중간 기착지인 하란까지 와서는 주저앉고 만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은 거기서 오래 멈춰섰다가, 데라가 죽어 묻힌 후에야 다시 소명을 받고 하란을 떠나게 된다.
 
우리의 신앙 행로에도 하란이 있고 머뭇거리고 주저앉아 허송하는 세월들이 있다. 세상 곳곳에는 하란을 가리키는 표지판들이 있고, 거기서 금쪽같은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란을 떠나야 한다. 신자는 그곳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아브라함의 후예다. 온실의 묘목을 뽑아 거친 산야에 옮겨 심어야 광야의 비바람을 이기고 거목으로 크듯이, 신자는 혈연과 관습과 문화의 밀식된 토양에서 뽑혀 이식(移植)된 나무들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야 주님의 제자로 바르게 큰다.
 
신앙의 길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아브라함의 여로다. 신자는 우르를 떠나고 다시 하란을 떠나야 한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떠날 용기를 가진 이들만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자의 미래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주신 약속을 믿고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가자. 하란을 떠나 믿고 전진하는 사람은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 희망의 새 땅에 이를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희망찬 새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관습과 죄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확신과 순종의 탑을 쌓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석 연 목사
서원경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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