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초대'

'하나된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초대'

[ 특집 ] 2.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시각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11월 12일(목) 09:58

2013년 WCC 제10차 총회가 부산에서 개최됨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다양한 시각이 감지되고 있다. 이에 WCC와 총회 유치 배경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총회 유치의 의미,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시각, 총회를 준비하는 한국교회를 주제로 한 기고를 11월 한달간 게재한다.

장윤재 / 이화여대 교수

현재 한국교회가 부정적으로 WCC를 보는 입장은 지난 11월 6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모 교단 총회장의 담화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내용에는 "WCC와 함께 할 수 없고 일치될 수 없는" 이유 19가지가 나열되어 있는데, 비슷한 것끼리 묶으면 WCC 회원에 공산권 교회들이 대거 가입되어 있다는 점, WCC가 제3세계의 혁명이나 폭력 활동을 지원한다는 점, 가톨릭을 포함한 타종교에 관용적이고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한다는 점, 성경무오설과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등의 교리를 믿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복음의 토착화에 관용적이고 동성애자 교회 등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이 지구상에는 더 이상 '공산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WCC의 회원 교회 가운데 동방 정교회가 가장 큰 회원 교회이긴 하지만 이 교회는 더 이상 공산권에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다. 현재 WCC의 회원 가운데는 장로교(28%), 루터교(16%), 감리교(11%)를 포함해 개신교회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에 언더우드 선교사를 보내 이 땅에 장로교회가 있게 한 미장로교회(PCUSA)도 현재 WCC의 정식 회원 교회이다. 우리는 설사 UN에 공산국가가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소극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WCC에는 공산권 교회들이 '대거' 가입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교회가 아직도 과거 동서냉전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미래와 선교를 위해서도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WCC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지만 그 핵심은 '대화(dialogue)'이다. WCC는 서로 다른 배경과 역사와 교리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만나 그동안의 다툼과 분열과 상쟁의 역사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가려는 '대화의 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눅 19:42)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오늘 세상보다 더욱 깊이 분열된 교회를 보시고 또한 '평화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만의 주가 아니라 세상의 주가 되신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엡 4:6) 계신다. 따라서 WCC의 대화는 교회 안에 국한되지 않고 타종교로, 인류 공동체 전체로, 그리고 모든 창조의 세계로 확장되어 나갔다. WCC는 분명 빈곤과 인권과 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참여'의 신학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정치적 해방으로 축소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은 결코 개인의 사후 영혼 구원으로만 축소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고 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은 이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이 '세상(cosmos)', 즉 온 우주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 사랑이고 그의 사랑은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교회만의 머리가 아니라 온 세상의 주권자가 되시기에, 그가 다스리는 이 세상이 불의와 폭력과 생명파괴로 얼룩질 수 있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다. WCC가 해 온 교회의 '공적 증언(public witness)'은 이와 같은 신앙의 표현이었다. 같은 교회가 이것을 세상 권세자의 눈으로 불온시하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수세기 동안 각 종교 전통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었다. 여러 종교가 한 지역에 공존하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서로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화의 시대는 각 종교 공동체들이 상호 고립을 깨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을 촉구해 왔고, 그 결과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종교 간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종교 혼합주의에 대한 우려와 종교간 대화가 선교의 절박함을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WCC가 종교간 대화를 꾸준하게 이끌어온 이유는 오늘날 이 세상에 기독교적 대답만 요구하는 기독교적 문제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전쟁과 테러리즘,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에 대한 대규모 파괴 등,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 모든 종교 공동체가, 나아가 전 인류 공동체가 '초당적'으로 함께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태도이다. 오늘날 많은 타종교인들과 일반인들이 한국 교회의 선교를 '공격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선교는 세상의 권세에 대한 위협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마저 교회의 선교를 '위협'으로 느낀다면 우리는 그것의 목적과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아야 한다. 위협이 아니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 조직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교회일치 혹은 교회연합 운동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논한다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는 과제이다. 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보다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이 강한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적 풍토에서 대화와 관용의 문화가 자리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서로 잘 대화하다가도 '너 몇 살이냐'는 질문 하나면 모든 대화가 끝나는 게 한국적 풍토이다.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에는 어쩌면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 고단하고 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호 소통 능력이 빈약한 '가부장 문화'와 '군사주의 문화'에 기독교의 배타적인 '근본주의 신학'이 결합하면서 한국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꽃피우기 어려운 척박한 토양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보다 에큐메니칼 정신과 문화와 또 운동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에큐메니칼(ecumenical)'은 '에반젤리칼(evangelical)'과 상반된다는 잘못된 도식부터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에큐메니칼의 반대는 에반젤리칼이 아니라 '섹테리안(sectarian)', 즉 '분파주의' 혹은 '당파주의'이기 때문이다.

분파주의 혹은 당파주의란 자신의 특정한 신앙체험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마치 유일하고 보편적이며 최고의 것인 양 주장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에큐메니칼적인 시각을 결여한 교회는 복음을 협소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끊임없이 분열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분파주의는 특정 교파의 교리를 절대화하고 복음을 '사유화(privatization)' 한다. 이에 반해 에큐메니칼 정신은 교파적 신앙고백의 부분성을 겸허히 수용하고 세계적인 지평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연합을 이루어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고전 12:25) 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기 초월, 자기 비움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에큐메니칼 운동은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운동이 아니다. 분열된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하나 되지 않은 교회는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할 수 없다(요 17:21).

교회의 하나됨은 교회의 교회됨을 위한 관건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경쟁적이고 개교회적인 양적 팽창의 시대를 끝내고 질적인 성숙과 내실화를 도모할 때다. 바로 이 질적인 성숙과 내실화의 관건이 에큐메니칼 정신이고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21세기 한국교회를 살리고 재도약하게 만드는 발판이 된다고 믿는다. 2013년 WCC 총회의 한국 유치는 바로 그런 패러다임 전환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초대이다. 이제 분파주의로부터 에큐메니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한국교회의 새 화두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런 복된 초대 앞에 과거의 오해와 상처와 아집과 편견을 다 털어버리고 인간의 지혜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아직 한국교회가 가보지 못한 새 길을 믿음으로 달려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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