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정치, 어떤 관계여야 할까?

한국교회와 정치, 어떤 관계여야 할까?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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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11일(금) 12:22

정종훈/연세대 교목ㆍ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유신 독재 시절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 진영의 인사들을 향해서 어느 기독교인 정치인은 로마서 13장 1절의 말씀을 가지고 꾸짖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정치인은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성경은 전후문맥을 충분히 살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 권력자에게 절대충성을 맹세했던 그는 누군가가 최고 권력자에 대해 반대하거나 최고 권력자의 권력 행사가 저지되는 것을 참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4절의 전반부마저 올바로 읽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의 의도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국가와 시민의 공익을 도모하는 권력자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력자이니, 그 권력자에게 복종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권력을 독점하고 정의와 평화를 훼손하는 권력자까지 복종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태복음 22장 21절 후반부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들은 이 말씀에서 무책임한 정교분리의 근거를 찾으며, 정치 영역은 정치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져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당시 예수님을 시험하던 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말하지 않아도 세금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것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유보하던 사람들이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 동등한 비중을 두신 것이 아니다. 가이사의 것을 운운하신 것은 시험을 피하기 위한 예수님의 지혜이였을 뿐, 핵심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후반부에 있는 것이다. 설사 우리가 가이사의 것을 액면대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가이사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이었고, 가이사의 권력도 하나님의 것이었으며, 가이사의 궁전도 하나님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왜곡하는 정치와 그 권력자에 대해서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장로 대통령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것에 모든 역량을 모으는 듯싶다. 그러나 대통령이 교회의 장로이기 때문에 그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에 상응한 것이라서 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만일 정부의 정책이 약자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대립된 것이라면, 교회는 대통령이 장로라고 할지라도 그 정책을 거부해야 한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한국교회의 대다수는 정치문제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었다.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인권이 침해를 당해도 외면하거나 침묵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오히려 장로 대통령을 위한 전위대인 양 처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으로 장로 대통령을 도전하기보다는 장로 대통령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조건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는 장로 대통령이 시민 다수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는데, 만일 장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교회는 일반 시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내팽개쳐질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정치가 하나님의 선을 이룰 때는 그저 보고만 있어도 되지만, 하나님의 선을 이루지 못하거나 악마의 도구로 전락했을 때는 인권과 정의와 평화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사명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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