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겔의 한국화, 대중화 꿈꿔요"

"오르겔의 한국화, 대중화 꿈꿔요"

[ 인터뷰 ] 귀국후 10번째 오르겔 만드는 마이스터 홍성훈대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09년 09월 02일(수) 16:17

   
한국인 최초의 오르겔 마이스터 홍성훈대표.
한국인 최초의 오르겔 마이스터 홍성훈(홍성훈오르겔바우 대표). 그가 '세계에서 오르겔 제작 기술력이 가장 좋다'는 1백20년 전통의 독일 Klais사에서 앞날이 보장된 삶을 마다하고 '파이프 오르겔의 한국화'라는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10년 후. 그는 "유럽 전통 악기인 파이프 오르겔을 통해 새로운 한국 문화를 창조해 내겠다"는 '말도 안되는'(?) 그 일을 이뤄냈다. 귀국한지 10년 만에 고국의 땅에 10번 째 '한국적' 오르겔을 심어내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

'성공회주교좌성당 성요한성당' '봉천제일교회' '아름다운 동산교회' '예수로교회' '천주교 논현2동 성당' '천주교 임동주교좌성당' '구로아트밸리 콘서트홀' '선한사마리아교회' '트루에오르겔' '새사람교회'까지. 그의 손과 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한국적' 오르겔. 분명 서양의 '그것'과는 다른 냄새가 난다.

"10년 전만 해도 오르겔은 고가로 인식되고 있었고 교회에서도 예배 악기로서의 간절함이 없었어요. 더구나 IMF 때문에 모든 문화가 초토화되는 상황이었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눈앞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10번 째 오르겔을 만들게 됐네요."

그는 지난 시간을 '고독한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25년 동안 누구도 쉽게 가지 못하는 이 길을 홀로 묵묵히 걸어왔다.그에게 풍겨나오는 '아우라'에 압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지난 10년 동안 그가 흘린 피와 땀이 고스란히 오르겔에 묻어 나기 때문은 아닐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 안에 그분이 직접 나를 들어 이 안으로 집어넣은 것 같아요. 제작가로서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는 '소명'에 순종하며 앞으로 10년, 이 땅에서 "민족의 혼이 담긴 신명나는 에너지를 창출하는 온전하게 한국화 된 오르겔"을 대중화하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오르겔은 전형적인 유럽의 문화지만 "우리는 피리를 좋아하는 민족이고 파이프 오르겔의 구조는 피리다. 이 구조를 한국적 색깔로 만들면 우리 악기가 되는 것이다"는 홍 마이스터는 "외국에서 외국인의 문화로 만들어진 오르겔은 그들의 악기일뿐 우리 것은 아니다"고 '한국적'인 오르겔이 한국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문익점선생이 목화씨를 한반도에 퍼뜨려 오늘날 우리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냈듯 단 한알의 씨앗이라도 뿌려놓으면 누군가 계속 씨앗을 키워 우리의 소리를 담은 우리의 문화로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 설치된 1백60여 대의 파이프 오르겔은 외국산이다. "모짜르트 음악을 잘 연주할 필요는 있지만 완벽한 모짜르트가 될 수는 없듯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소리가 되려면 그 소리는 '한국'의 소리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그는 앞으로 10년 안에 완벽하게 한국화된 오르겔을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만드는 오르겔의 부품 가운데 45%는 자체제작으로 만들어진 것. "지금의 기술로도 보다 많은 부분 자체제작할 수 있지만 소량 부품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홍 마이스터는 앞으로 10년 안에 완벽하게 자체제작된 오르겔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구나 국내 제작이 가능해지면 부품단가는 물론 인건비, 물류 수송비 등이 절약돼 '귀족적'인 오르겔의 이미지도 대중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대형교회는 물론 중소규모의 교회도 얼마든지 심금을 울리는 장엄한 음색의 파이프 오르겔을 통해 예배의 경건함을 더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해내야지요."

뿐만아니라 그는 한국적인 소리를 위해, 대금 퉁소 피리 생황 해금 아쟁 등 국악기의 소리를 오르겔에 담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파이프 오르겔을 망치지 말라"며 손가락질 하기도 하지만 그는 "새로운 소리를 창조해 내는 것일 뿐 '돌연변이'처럼 다른 악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제작자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또 하나. 한 대의 오르겔을 설계하고 설치하기까지 3~4년. 그렇다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놀라운 의지와 인내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목수였던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직업"이라고 소개하는 홍 마이스터는 "파이프 오르겔이 예배 음악에 사용되는 만큼 이 모든 작업의 시작과 끝이 예배이고 기도가 된다. 이만큼 귀한 직업도 귀한 선교도 없다"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갈 제자들을 양성할 비전을 밝혔다.

홍성훈 마이스터는 지난 1987년 독일 플라이터(Fr.Fleiter Orgelbau)사의 도제입문과 1991년 클라이스(Johannes Klais Orgelbau)사의 마스터과정을 거쳐 1997년 오르겔 바우로 독일 국가시업에 합격 한 후 현재 경기도 양평 국수리에 '홍성훈 오르겔 바우'를 설립, 오르겔의 한국화와 토착화를 위해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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