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9월5일

8월31일~9월5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8월 31일(월) 15:52

월-후반전
본문: 행 9:1-9
찬송가: 333장(구 381장)

오직 인간에게만 시계와 달력이 있다. 현 시대의 지성인 24명이 '시간 박물관(the story of time)'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편집인으로서 저자를 대표하는 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시간의 발견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다"라고 했다.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했다. 그것이 바로 시계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달력이다. 시계를 보면서 자신의 날을 계수할 줄 알아야 한다. 달력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점검해야 한다.
 
9월을 맞아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전반전이라 생각하고 남은 후반전을 역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는 전반전을 완전히 망친 사람이다. 그러나 후반전에 역전을 한 사람이다.
 
바울 사도의 전반전은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삶이었다(1절). 그리고 진리(예수님)에 대하여 눈먼 인생이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가슴에 수없는 못을 박았던 실패자의 인생이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후반전은 사명을 위하여 산 삶이었다(6절). 그리고 예수님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종이었다. 한 마디로  후반전의 사나이가 바울 사도이다. 우리도 남은 세월 역전골을 넣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월은 벌써 9월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2009년 전반전 어떤 골을 넣었습니까? 하나님은 웃으셨습니까? 교회는 웃었습니까?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옵소서. 그러나 이제 남은 몇 개월 역전의 골을 넣게 하옵소서. 하나님에게 웃음의 골을, 교회에 부흥의 골을, 가정에 행복의 골을,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을 골을 넣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정 원 목사
인창교회 시무


화-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본문: 엡 6:5-9
찬송가: 463장(구 518장)

바울은 종들에게 "주인을 단순히 주인으로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께 하듯 하세요"라고 권면하고 상전에게는 "단순히 종으로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시각으로 대하세요"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당시 정황에서 매우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노예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고 그들의 인격은 보호받지 못했고 가축이나 물건처럼 취급받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는 것,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무엇이든지 그것이 성직이다. 설거지건 청소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 1600년대 프랑스 파리 갈멜 수도원에서 생활했던 로렌스이다. 로렌스는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후라이판에서 작은 계란을 하나 뒤집을 때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 주님과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자세를 가지고 일할 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수없이 경험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선배 수도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무엇을 잘못 알고 로렌스를 수도원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로렌스가 한 말이다. "저는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그분 뜻하신 바를 이루실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 그분을 섬기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에서 그분을 섬길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다.
 
일이 하나님의 일인지 아닌지는 일의 내용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일의 동기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일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주님의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영 수 목사
구포교회 시무


수-산 소망이 넘치게!
본문: 벧전 1:3-7
찬송가: 95장(구 82장)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년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극한 상황에서도 생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생각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말한다. 성자와 같은 행동, 악마와 같은 행동, 그리고 자살과 배신의 행동 등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 소망이 주어졌음을 말씀한다. 이 산 소망은 영원한 생명이요 주님이 나타나실 때 얻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이다. 주님은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 시련과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절망과 포기가 아니라 성도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산 소망을 새롭게 하고 그 소망을 끝까지 붙잡는 것 이라고 말씀한다.
 
오늘도 산 소망을 새롭게 하지 못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본다. 성도들이 믿음의 선진들을 닮고 싶음은 온갖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그 산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것을 포기할 줄 알았던 그들의 용기와 결단을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다시 한 번 구별되어지고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산 소망을 회복 하고 그 소망을 기쁨으로 누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때다.
 
성도에겐 하늘에 간직된 기업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한다. 썩지 아니하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 하셨다. 현재의 시련과 고난이 성도로 하여금 잠시 근심하게 하나 산 소망을 통해 이긴 자로 주님 앞에 서야한다.

오늘의 기도

산 소망을 주신 주님! 믿음 안에서 산 소망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가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 기 업 목사
한결교회 시무


목-영광스런 소망의 언약
본문: 학 2:1-9
찬송가: 484장(구 533장)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언약을 주셨다. 그 영광스런 소망의 언약이 무엇인가?
 
먼저는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라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보배'란 흠모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구약시대 백성들이 가장 흠모하는 대상은 메시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소망의 언약 속에 살았다면, 이미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야말로 영광스러운 소망 언약 가운데 살고 있음을 감사하자. 그리고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소망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
 
다음으로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리라 말씀하신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을 재건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지만 성전은 너무 초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해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성전을 짓고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이전 영광보다 지금 성전의 영광이 더 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도록 하셨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의 약속인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곳에서 평강을 주리라 말씀하신다. 주변 열강들에 의해서 계속 도전을 받아 불안해하며 염려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평강을 주리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평강주시기를 원하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 금 호 목사
광천교회 시무


금-사랑은 교만치 않으며
본문: 고전 13:1-7
찬송가: 212장(구 347장)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뿌리"라고 말했다. 교만은 사랑의 삶과 영적인 삶을 망치는 극약이다.
 
본문은 사랑은 '교만하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곧 사랑은 겸손한 것이라는 말이다. 자랑은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을 향하는 것이라면, 교만은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교만은 결국 하나님을 향해 건강한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 교만은 자기 숭배의 다른 모습이다.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했는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때문이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사람들은 이처럼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우리는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겸손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은 결국 하나이다. 사랑이 많으면 많을수록 겸손해진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내려와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기까지 하셨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겸손이란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무디는 모세의 삶을 3단계로 나누면, 첫 40년 애굽 생활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단계였고, 두 번째 미디안 광야 생활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단계이고, 마지막 40년 출애굽 생활은 '아무 것도 아닌 나를 하나님이 쓰셨다'는 단계이다. 결국 겸손할 때 주님은 쓰신다.
 
오늘도 겸손의 옷을 입자

오늘의 기도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교만으로 가득한 우리를 새롭게 빚으셔서 겸손의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 사용하옵소서’ 고백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이 병 우 목사
예은교회 시무


토-이슬 같은 은혜
본문: 출 16:13-21
찬송가:246장(구 221장)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식량문제로 불평하고 원망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침이 되면 이슬같은 만나를 내려 주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였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었다고 말씀한다. 이슬은 공기 중의 수증기가 밤의 차가운 공기에 식어서 아래로 내려 앉아 물체의 겉면에 물방울이 되어 엉겨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이슬처럼 내려 주신 하나님의 만나는 곧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대표적인 은혜이다.
 
만나는 그 다음날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됐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위한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큰 은혜를 한꺼번에 받으면 사람이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매 순간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만나를 주신 이유는 지속적으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은혜를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를 내려 주심으로 그들의 필요를 늘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늘 공급해 주실 것을 믿고,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들도 매일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와 사랑과 일용할 양식과 필요를 공급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더욱 나누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 문 수 목사
양정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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