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의 '보편사' 참여 강조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의 '보편사' 참여 강조

[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학술기고 (21) '칼빈의 역사관'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6월 17일(수) 11:10

칼빈이 세상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더 강조하였으나, 그 역시 루터의 '두 왕국론'의 틀 속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칼빈은 루터보다는 교회의 보편사(세상)에 대한 변혁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당시 좌경화 종교개혁파들 가운데 토마스 뮌처 같은 이는 천년왕국이 당대에 곧 실현될 것을 내다보면서 농민의 정의를 위한 혁명을 시행하였고, 나머지 좌경화 개혁자들은 보편사의 모든 보편적인 가치들로부터 퇴거하는 분리주의를 주장한 나머지 교회를 외딴 섬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칼빈의 역사관은 루터의 역사관과 좌경화 종교개혁자들의 역사관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처럼 구속사든 보편사든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이 섭리하신다고 하는 어거스틴과 루터와 칼빈의 신학적인 역사관은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에 의하여 전수되었고, 보쑤에(Bossuet)까지 이어졌으나,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구속사', '하나님의 도성', '그리스도의 왕국', 그리고 초월적이고 미래 지향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은 사라지고, '보편사' 혹은 '세속사'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바야흐로 18세기 계몽주의를 모태로 하는 19세기 유럽은 자연과학에 의한 세속화로 창세기를 진화론적으로 읽었고, 인간의 기원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하였으며, 도덕에 의한 세속화로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인간 내부의 소리로 보았고, 역사학에 의한 역사의 세속화로 인하여 구속사를 일반역사로 읽었으며, 성경을 다른 문서처럼 다루었고, 칼 마르크스의 종말론의 세속화로 역사의 종말론적 비전을 상실하였다.
 
이상의 논의에서 칼빈의 역사관은 어디에 자리매김하는가?
 
그의 신학적인 역사관은 어거스틴-루터 전통 안에 있다. 다시 말하면 칼빈의 역사관은 보쑤에 이후 18-19세기 모더니즘 전통의 역사관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역사관은 칼 바르트, 쿨만, 몰트만, 그리고 내러티브 신학의 구속사관과 이들의 미래 종말론적인 비전하에서의 교회의 보편사 참여에 근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칼빈의 신학적인 역사관의 자리매김을 명심하면서, 우리는 그의 '구속사'에 대한 강조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칼빈이 회심 직후 쓴, 그의 외삼촌의 프랑스 말 성경의 머리말에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구원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칼빈은 바울-아우구스티누스의 노선을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위해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한 구속역사를 펼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패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언약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이 새 언약과 중보자는 아브라함의 약속 이래로 예언들과 의식들을 통해서 고지되었고, 그의 초림의 사건은 완전한 통일성 속에 있는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의 기적들과 다른 행동들로써 구세주의 능력을 제시하는 책인 신약성경에 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18-19세기 유럽의 기독교가 상실했던 '구속사'를 귀하게 보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칼빈에게는 구속사에 대한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중적인 통치'를 주장한다. 즉, "하나는 영적인 정부로서 양심이 경건의 교육을 받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육을 받는 영역이요, 다른 하나는 정치적 정부로서 양심이 인간들 사이에서 유지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교육받는 영역이다."(기독교강요 3권)(최종판)라고 한다.
 
여기에서 동일한 양심이 이신칭의를 받고, 높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이 동일한 양심이 보편사(국가)차원에서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이중적 통치'는 '기독교강요' 제Ⅳ권에 나오는 그의 '국가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나, 우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기독교인들의 '국가' 참여가 인류의 보편사에의 참여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루터의 경우 1520년대 이전에는 어거스틴적인 두 도성에 유사하게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왕국'의 병행과 관계를 논하다가, 그 후에는 '교회와 국가' 관계로 좁혀진 것을 감안하면서 칼빈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 관계를 읽을 때에 우리는 칼빈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의 국가에 대한 관계를 기독교인들의 보편사와 사회에 대한 관계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칼빈의 국가론은 적극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기관이다. 어거스틴과 루터에게 있어서는 국가란 사단마귀로 인한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교회와 보편사를 지키는 정도인데 반하여, 칼빈의 경우는 하나님의 뜻을 일구는 하나님 나라의 도구에 해당한다.
 
즉, 이신칭의를 받아, 예언자들의 목소리와 산상수훈과 사도들의 훈령들을 따라 살아야 하는(율법의 제3 사용) 기독교인들의 거듭난 양심은 국가의 실정법 차원 정도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항상 그 이상을 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보편사 속에 구현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하고 '구속사'의 흐름 속에 있는 기독교인들이야 말로 보편사 속에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복음에 적합한 문화와 삶의 스타일을 형성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리차드 니버는 우리 개혁교회를 '역사변혁적인 기독교'라 불렀다.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 처음 창조론 다음에 나오는 섭리론 역시 이상과 같은 기독교인들의 보편사에 대한 참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오른손으로 구속사와 교회를 통해서, 그리고 왼손으로는 보편사와 세상을 통하여 일하신다. 하나님의 왼손은 백성들의 죄 악을 벌하기 위하여 고약한 왕들도 세우시고, 고약한 왕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선한 왕들도 세우신다.
 
진정한 역사관은 종말론과의 관계에서 정립되어야 한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교회와 세상(보편사)을 이해한다.
 
그가 이신칭의 다음에 '미래의 삶에 대한 명상'을 언급하고, 이어서 '회개'와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언급할 때, 그는 분명 미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 속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보편사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일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신망애'의 기독교적인 삶이다.

이 형 기
 ▲ 장신대 명예교수
 ▲ 장신대대학원(신학석사)
 ▲ 미국 하버드대(Th.M)
 ▲ 미국 드류대(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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