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여성像 바라봤던 중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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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19)칼빈의 여성이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6월 02일(화) 18:38

칼빈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칼빈이 인문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은 학자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가 전통적인 신학적 견해를 잘 알았지만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다는 점은 칼빈이 루터와 같은 1세대 개혁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를 수 있었던 근거를 제공한다. 칼빈에게서 인문주의의 영향은 여성에 관하여 칼빈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데 필수적으로 고려하여할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의 여성 이해를 살펴보는 이 글은 먼저 인문주의를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 칼빈의 글과 목회에 나타난 칼빈의 여성에 대한 이해와 태도를 알아보고자 한다.

인문주의, 여성을 바꾸다

칼빈이 살았던 16세기는 14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휴머니즘)의 깊은 영향으로 이루어진 세기이다. 르네상스를 주로 예술분야에 인문주의는 학문의 영역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하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르네상스나 인문주의가 단지 몇 몇 대가들의 붓끝이나 펜 끝에 머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몇몇 대가들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사조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거대한 운동이 되어 서양의 세계관을 바꾸고 역사의 축을 옮겨 서양이 중세를 넘어 현대로 들어오게 하는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여성에 관한 견해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세시대를 풍미하였던 여성에 대한 이해는 소위 '여성혐오증'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남성이 되지 못한 잘못된 존재'로 규정하였는데 그러한 이해는 중세신학과 성서이해 곳곳에 영향을 미치며 여성혐오증의 기본을 이룬다. 성경과 관련하여 여성혐오증은 창세기 1-3장을 해석하면서 여성은 창조서열이 낮아 남성보다 열등하며 비이성적인 존재이며 남성을 유혹하여 타락하게 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여성혐오증은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자아의식을 심고, 남성들에게는 남성중심의 우월감으로 여성을 억압하게 만들었다.

15세기 초 이태리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여성 소설가,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san)은 당시 유행하던 '장미이야기'(Roman de la Rose)라는 전형적인 여성혐오증 소설에 강력한 어조로 대응하면서 여성사에 큰 획을 긋는 '여성본성논쟁'에 뛰어들었다.

여성본성논쟁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논쟁인데, 여성이 일반화된 여성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 본성이냐 양육의 결과냐는 것이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매우 낯설겠지만 중세에는 남성만이 하나님의 이미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신학적인 음모에 두려워하지 않고 피장은 과감하게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매우 현대적 주장을 하였으며 성경에 나타난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요구하였고 여성들이 비이성적이며 연약한 것은 본성이 아니라 제한된 교육의 기회와 열악한 환경의 탓이라는 주장을 정교화하였다. 이러한 여성본성논쟁의 영향은 16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남부지역의 나바르 공국의 여왕, 마그리트나 마리 동티에르, 아굴라 폰 그룸바흐에게서 잘 나타나고 있다.

칼빈, 여성에 대해 고민하다

인문주의 교육에 익숙하였던 칼빈이 여성본성논쟁에 대해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그 이유로 칼빈은 여성의 종속성이나 공적영역에서의 배제 등에서 전통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여성본성논쟁이후 변화한 여성이해에 대하여 충분히 고민하고 반영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칼빈의 저작을 중심으로 칼빈의 여성이해를 분석한 제인 더글라스(Jane D. Douglass)박사의 책, Women, Freedom, and Calvin (Westminster/John Knox 출판, 심창섭 역 '칼빈의 여성관')은 이런 점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갖는다. 더글라스박사는 이 책에서 '기독교강요'와 주석서 연구를 통하여 칼빈의 여성이해는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더 발전적으로 정교해졌으며 칼빈의 여성관은 현대에 상당히 가까워져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1559년판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을 육체적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남상에게 국한하는 오시안더(Osiander)를 비판하면서 논란의 핵심에 있는 고전 11:7에 대해 언급하면서 바울이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여성에게는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맥상 여성을 정치적 질서에서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여성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더글라스교수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종속성과 여성안수 부정의 근거가 되는 구절로 인용되었던 이 구절이 예배의 정황에서 언급된 것임을 강조하는 칼빈을 인용하면서 여성이 베일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사람의 법, 즉 변할 수 있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칼빈은 이해하고 있다고 증명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세계개혁주의연맹(W-ARC)의 회장을 지내며 세계개혁교회들에게 여성안수를 인정할 것을 권면하였던 더글라스 교수는 현대교회가 이 구절에 의지하여 여성안수를 부정하는 것은 칼빈의 주석이전으로 역사를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칼빈은 분명히 여성들의 공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식하였다. 그가 앞서 소개한 마그리트여왕이나 마리 돈티에르와 같이 공적인 활동을 하던 여성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직분을 여성들과 연결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전통에 더 깊숙이 발을 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약성경에서 제한되어진 여성들이 위치는 시대적이며 상황적이라고 해석하였으며 성경에서 여성들에게 요구한 것을 구원의 문제가 아닌 질서와 시대의 문제, 즉 비본질적인 것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에서 현대로 발을 내딛은 16세기인이었다.

그는 제네바교회를 목회하면서 교육의 기회에서 제외되었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개신교신앙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컨시스토리 사역을 통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여성들을 교육하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자녀들을 매주 12시에 있었던 교리수업에 데려오도록 하였으며, 여학생을 위한 공립학교도 마련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노력은 여성이 무지한 것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하여 교정될 수 있는 것이며 여성도 구원의 삶으로 인도받는데 문제가 없다는 그의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칼빈, 오늘에 말하다

장로교회와 장로교정치가 유난히 성공한(?) 한국교회에서 칼빈을 이해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 듯 하다. 칼빈을 이해할 때 단순히 신학과 목회의 내용을 바꾸어가는 개혁자로서만 아니라 전통에서 현대로 옮겨가는 과도기에서 다양한 주제들로 고민해야 했던 한 16세기 지성인의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칼빈은 뒤늦게 결혼하여 짧은 시간밖에 함께 하지 못한 부인이 죽자 부인을 자신의 동반자라고 칭송하면서 심히 슬퍼하였다고 한다. 결혼에 관하여 현대적인 개념인 동반자관계를 보여주는 칼빈이 오늘 우리에게 친히 말할 기회가 있다면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현대교회와 기독교문화를 향하여 어떻게 여성들을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적극적인 동반자로 받을 것인지를 더 고민하라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정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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