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ㆍ이웃사랑에서 출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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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⑬ 칼빈의 경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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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9일(목) 10:34

   

▲ 한상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교(Ph.D)

종교개혁의 완성자 존 칼빈 그는 그의 신학을 통해 하나님 주권사상을 일관성 있게 가르칠 뿐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증거한 위대한 신학자이다. 그의 전 사상과 생애를 관철했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신본주의 또는 하나님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경제관도 역시 신본주의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칼빈의 경제학은 세속주의적 경제학과는 근본적으로 그 출발점과 목적을 달리하고 있다. 후자가 단순히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a profit-oriented science) 과학이라면, 전자는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과학으로서(a service-oriented science), 그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숭고한 계명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경제관은 그의 신본주의 신학의 배경 속에서 이해될 때 바르게 이해되어질 수 있으며,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커다란 개혁신학적 틀 속에서 그 참된 의미를 지닌다.

그의 경제 사상의 신학적 기초는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 경제 행위는 창세기 1장 28절에 있는 문화명령의 수행이라는 것과 둘째, 이는 구원의 기초 위에서만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셋째로, 교회는 인류가 본래 형제애로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불완전하게나마 반영하는 공동체이고 이러한 사회의 공동체적 연합의 맥락에서 물질에 대한 나눔과 분배는 사랑과 정의라는 원리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본주의적 신학의 기초 위에 근거한 칼빈의 경제 사상의 기본 골자를 중요한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물질의 소유권과 소비에 관하여, 칼빈은 기본적으로 초연한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가 가진 물질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에 물질의 번영을 위한 노력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우리의 마땅한 의무라고 했다. 물질에 대하여 그는 세 가지 조건을 가르쳤는데, 첫째는 부를 전심으로 추구하지 말며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이미 획득한 부귀도 모두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하며, 둘째는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정직하게 노동하고 모든 악을 버려야 하며 셋째로 적게 가진 자들은 그들의 적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의 양식을 만족함으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재세례파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했으나 그것이 사회의 공공의 선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소비에 대해서도 현세 생활에서의 좋은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여 즐겨 사용하라고 하면서 모든 소비의 목적은 만물의 사용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를 인정하기 위함이라는 신본주의 태도를 견지했다.(기독교강요 3권 10장) 둘째로 노동과 직업에 관하여서도 칼빈은 중세기적 기능적 사회관, 즉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소명이 있어서 자신의 위치에서 지정하신 생활방식대로 살아야 하며 그것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배격하고 기본적으로 직업의 평등사상을 가르쳤다.

중세 로마교회의 성속 분리주의는 노동을 신앙생활과는 무관한 세속적 의무로 가르쳐왔는데, 그에 반대하여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으로 노동과 직업에 대한 존엄성과 가치를 부여하였다. 그는 노동은 다른 모든 좋은 것들과 함께 하나님의 선물로 보고, 거지나 무위도식자들을 정죄했고 당시의 수도원의 횡포를 신랄히 비판했다. 칼빈은 이처럼 일에 대하여 신성시 여겼기 때문에 그 당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핍박받고 제네바로 피해온 피난민들을 위해 방직산업을 발전시켜 많은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서 피난민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마태복음 25장 24절의 주석에서 "인간사회에 유익을 끼치며 사는 삶의 방식보다 더 하나님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은 없다"고 말하며 사회에 대한 봉사를 곧 하나님의 봉사로 이해함으로써 로마교회의 성속 분리의 이분법적 윤리관을 타파하는 혁신적인 가르침을 폈다. 모든 직업은 사회를 위한 하나님의 소명으로서 단순히 급료를 받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게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가르쳤다. 임금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칼빈은 자연법사상에 의하여 공평하게 책정되어야 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무상적인 은혜의 차원으로 접근하였다. 즉 임금을 노동에 대한 대가라는 개념보다는 그리스도의 무상적인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황금률과 사랑의 계명에 따라 후하게 정하여 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무시하고 부정당하게 처우하는 경우가 많고, 인간의 악한 경향성은 언제나 약한 자들에게 불공평과 부정의를 초래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칼빈은 임금책정에 있어서 미리 합의에 의한 계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칼빈은 그 당시 제네바의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사분규의 중재역할을 감당하여 파업을 피하게 하는 공헌도 했었다.

셋째로, 상업과 이자에 대한 태도에서 칼빈의 경제 사상의 독창성은 더욱더 빛난다.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칼빈은 상업을 존중하고 합법적인 이자놀이를 허용하였다. 중세 신학자들은 상공업을 천시하고 대부에 대해 악을 수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금하였다. 이에 반해 칼빈은 상업은 본래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며 인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인들의 이윤을 그들의 노력의 보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그에 의하면 상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성과 신용성으로 이는 오늘날 현대 경제학에도 강조되는 덕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자놀이에 관하여서는 전통적으로 죄로 여기고 무조건 금령을 가하고 있었으나 이미 종교개혁 이전부터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던 일이다.

칼빈은 성경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현실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뿐 아니라 성경이 고리대금업과 같은 남용은 금하고 있으나 산업 대부와 같은 합당한 형태의 이자 대부는 금하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해석할 때 말보다도 내용과 본뜻에 충실하여 해석하는 적절한 접근을 취했는데, 이자 금지의 구절들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이자 금지 구절들에 대한 칼빈의 주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가난한 자들을 상대로 한 이자놀이를 포함한 사랑과 정의의 원리에 어긋난 모든 이자놀이는 철저히 금지 되었지만 합법적인 이자놀이까지 금지된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 6장 35절은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것을 금하고 있고, 시편 15장 5절에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이자놀이에 대해 금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절들에 의거해 이자놀이 그 자체를 금하면, 우리의 양심에 하나님보다도 더 엄격한 굴레를 씌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신명기 25장 19절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은 그때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나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구분이 사라지고 사랑과 평등의 원리가 지배하는 지금, 그러한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에스겔 18장 5~9절에서는 보다 용례에 주목하고 있는데, '네쉐크(neshek, 이윤)'나 '테르비트(ther-bith, 이자)' 모두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이윤을 보는 죄악된 이자놀이를 가르친다고 하며, 빌려준 돈으로 이윤을 보는 부자에게서 이자를 받는 것은 허용된다고 밝히고 있다.마지막으로 출애굽기 22장 5절, 레위기 25장 1~38절에도 모두 다른 데와 똑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자없이 돈을 빌려주어 구제해줄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칼빈은 이와 같이 명료하게 산업대부와 소비 대부를 구분하고 있고, 산업 대부는 유통자본의 창조로 보고, 돈이 다른 생산수단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임을 깨닫고 있다. 이와 같은 칼빈의 성서의 적용과 현실 생활에 대한 분석은 현대 경제학의 효시가 되었다. 신학자로서 아무도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에 대해 옹호하는 자가 없었던 그때, 성서에 대한 조직적 연구와 그 당시의 이자놀이 도덕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중세적 견해를 전복시킨 공헌은 그 의의가 매우 깊다. 칼빈의 이자대부의 원리는 경제적으로 전환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신학사에서 하나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신본주의적이며 구원론적인 칼빈의 경제 사상은 또한 합리적이고 혁명적인 면모를 갖추어서 소비와 생산 및 분배에 이르는 모든 경제 활동의 과정에 대하여 조화롭고 발전적인 윤리관을 제시하였다. 칼빈의 경제 윤리가 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칼빈의 경제관 자체가 자본주의적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의 상업과 이자에 대한 가르침은 자본주의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나 그의 또 다른 측면, 사회복지와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한 강조는 오히려 기독교 사회주의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경제관 자체를 자본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면이 분명히 있으며, 오늘날의 시점에서 본다면 칼빈의 경제사상 속에는 그 두 가지 면모가 다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개인과 사회를 모두 균형 있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황을 맞이하여 모두가 함께 타개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때에, 그리스도인은 경제에 대한 성경 본래의 뜻을 찾아서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공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며, 칼빈의 경제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는 것은 이를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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