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산업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항공산업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 인터뷰 ] 한국최초 경비행기 설계제작한 이원복장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09년 02월 18일(수) 10:50

"첫 시험 비행에서 모든 기능과 성능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참여자 모두의 긍지와 자긍심이 살아나는 순간이었죠!"

한국 최초의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를 자체 설계ㆍ제작한 이원복장로(여의도제일교회 원로ㆍ예비역 공군 대령ㆍ전 대한항공 전무 겸 정비본부장)는 지난 1953년 10월 경남 사천의 하늘을 날았던 '부활호'를 추억했다.

   
한국최초 경비행기 제작한 이원복장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와 절망과 슬픔에 빠진 국민들이 부흥 회복되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활(復活)'이 라고 명명했던 '부활호'는 이날 2시간 동안 고도 1천3백m를 날으며 전쟁 후 암울했던 시절 새로운 희망을 전했다.

85마력 4기통으로 최대시속 1백80㎞, 기장 6.6m 기폭 12.7m 높이 3.05m 중량 3백80kg 크기로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던 국산 1호 항공기 '부활호'는 삼면이 바다인 국내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바퀴를 떼면 수상기로도 사용될 수 있고 남과 북이 대치한 시대적인 상황에 맞춰 바닥에서 '삐라'를 뿌릴 수 있도록 제작하는 등 국내 상황에 맞는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장로는 "설계부터 비행까지 4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정부와 군 수뇌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모든 산업의 선도적 핵심기술집약산업인 항공우주산업을 위한 장기발전 계획을 세웠다면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산업이 선진국 수준이되고도 남았을텐데…"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제2호 제3호 제4호…의 '부활호'를 기대하면서 꼼꼼하게 정리한 노트를 안타깝게 쓰다듬었다.

사실 부활호는 50년 동안 행방불명됐다가 지난 2004년 1월 대구 경상공고 지하실에서 기체 골조만 초라하게 남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미국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미 사라졌다"는 이 장로는 "공군 정찰ㆍ훈련기로 사용되다가 민간에 매각됐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면서 "정부의 무관심으로 국산 비행기의 맥은 끊어지고, 한국의 항공산업발전도 늦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탄했다.

이 장로는 "하나님이 '부활'시키셨다"고 감격해하며 항공우주지원센터와 협조해 '부활호'의 복원과정에 참여했다. 지난해 항공기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재 제4백11호로 정식 등록되기도 한 '부활호'에 대해 지난 1월 22일 '2008년 공군을 빛낸 인물'로 선정된 이 장로는 "이 같은 관심이 반짝하고 그칠 게 아니라 우리나라 항공산업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라며 당부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