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참사 1년…"마음의 '검은띠'는 언제쯤…"

태안 참사 1년…"마음의 '검은띠'는 언제쯤…"

[ 교계 ] 죽은 바다는 살아나고 있지만, 주민들 표정 아직 어두워

정보미 기자 jbm@pckworld.com
2008년 12월 02일(화) 18:16

   
▲ 표면적인 부분만 깨끗해졌을 뿐 바닷속에는 타르덩어리가,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엔 여전히 기름이 남아 있지만 꽃게 불가사리 등 바다 생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모래밭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사진 정보미기자
【태안 천리포=정보미기자】 "이제 꽃게도 기어다니고 조개도 나와요."

기어다니는 생명체를 보았냐고 묻자 바닷가에서 모래집을 짓고 있던 한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이름이 지서리(모항초 5)라 했다.

"저기 닥섬에 가면 더 많이 있어요." 대답하는 아이의 손끝에는 조그마한 섬이 바다 가운데 떠 있었다. 지금은 물이 들어와 있어서 그렇지 빠지면 5분이면 간단다.

태안 참사 1년(12월 7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11월 30일, 천리포를 찾았다. 태안에는 한국교회봉사단에서 진행한 '한국교회 자원봉사자의 날'과 5월 31일 '태안 주민 위로의 날' 이후 처음이었다. 올초와 달리 바다에서는 검은 기운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백사장에는 이름 그대로 하얀 모래가 햇볕을 쪼이며 반짝거렸다. 바닷가에는 알알이 쌓아 올린 동그란 모래알과 게 구멍이 뽕뽕 뚫려 있었다. 지난 겨울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면위로는 겨울철새 청둥오리가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었다.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후 어느 순간 없어졌던 갈매기가 지난 6월 말경부터 한 두마리 씩 날아들기 시작했어요. 내수면 쪽은 9월부터 어업이 재개됐죠." 의항리 1구에서 17년간 이장을 지낸 신대욱안수집사(천리포교회)가 태안의 근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소원면 일대중 일부는 양식업을 다시 시작했고 의항 1ㆍ2ㆍ3구와 모항, 파도리 지역에는 아직 수산물 채취가 금지돼 있다. 먼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들은 띄운다. 해삼, 전복, 굴 등의 '맨손업'은 못하고 있다. 잡아보면 내용물이 토실토실해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개중에 기름 냄새가 배어 있는 것들이 있어 판매는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신 집사를 따라 삽을 들고 천리포해수욕장으로 나가봤다. 모래를 파도 기름이 나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강완집사(천리포교회)가 직접 나서서 확인시켜 주었다. 몇 차례 모래를 떠냈더니 구덩이 안으로 맑은 바닷물이 흘러들었다. 짭쪼름한 바닷내도 풍겨왔다. 죽은 바다 태안이 살아나고 있었다.

   
▲ 몇 차례 삽으로 모래를 퍼냈더니 구덩이 안으로 맑은 바닷물이 흘러들었다. /사진 정보미기자
"저 멀리 부산 강원에서 새벽부터 와서 작업하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시 와주셨던 분들에게서 가끔 전화도 받아요.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안부를 물어오기도 합니다." 이 집사의 말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부분만 깨끗해졌을 뿐 표본조사를 해보면 바닷속에는 타르덩어리가 가라앉아 있고, 민간인 손길이 닿지 않는 가파른 지역에는 여전히 기름이 남아있다고 했다.

태안의 95%가 치유되고 5%가 남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복구가 안된 지역은 양식업 등 생계와 직결된 곳이어서 피해가 극심하다고. 신 집사는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큰일"이라며 "내년엔 태안군청에서 공공근로 계획도 잡혀있지 않아 배가 없는 맨손업자들은 살길이 막막하다"고 근심을 털어놓았다.

해수욕장 인근에서 관광업을 하는 이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송강신씨(천리포펜션)는 "올 여름 매출이 예년에 비해 80% 떨어졌다"면서 "그나마 교회와 삼성이 와줘서 입에 풀칠은 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수고가 큰 도움이 됐냐는 질문에는 "말할 것도 없이 고맙다"고 했다. 근처에서 슈퍼와 횟집을 운영하는 신호철씨(천리포횟집)도 "작년대비 70% 정도 매출이 급감했다"면서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현장에 다시 찾아와서 깨끗해진 바다의 모습도 보고 인근 식당이나 숙소를 이용해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천리포 주민들은 당장 내일의 삶이 막막해 보였지만, 그래도 이날은 군청으로부터 지난 3~6월 4개월간 수고한 방제작업비가 나온 날이라 기분이 좋아보였다.

천리포교회(오창영목사 시무)로 가서 현지 사정을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때마침 방문한 김관섭장로(소원교회)가 이제껏 들은 얘기와는 색다른 화제를 꺼냈다. 생계비 차등 지원으로 주민들 간에 위화감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환경은 복구되고 있지만 태안관내 2만5천건 중 6백건 만이 보험회사에 접수된 상태"라며 "정부로부터 적게는 70만원 많게는 5백만 원까지 생계비가 지원됐지만 이렇게 차등 지급돼 형제 간에도 갈등이 생긴 가족이 있다"고 귀띔했다.

또 식품의약청에 검증받은 지역 농수산물도 오염됐을 거라는 소비자들의 불신으로 판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자신도 바지락양식장을 7월부터 재개했다는 김 장로는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품질이 검증된 제품"이라면서 "오염된 바다에서는 양식장이나 수산물 채취는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에 현재 판매되는 태안 농수산물은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고 강조했다.

1년 전, '힘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 합니다'는 태안주민들을 울린 메시지였다. 1백23만 자원봉사자 중 70만 명이 한국교회 성도들이었다.

서광희장로(천리포교회)는 "그래도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이만큼이나 복구됐다"면서 "개미 역사하듯 한국교회 성도들이 참여해 태안을 이만큼의 청정해역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감격했다.

원유유출 사고 1년, 이 시점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태안을 위해 이제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천리포교회 담임 오창영목사는 "기름이 아닌 사람 닦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의 검은 띠를 씻어낼 차례입니다. 돈이나 쌀보다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필요하죠. 지난 1년간 돈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극심하게 황폐해졌습니다. 우리 교회만도 일당을 벌기위해 공공근로작업에 참여하느라 출석교인 4분의 1이 빠져나간 상태죠. 말릴 수가 없습니다. 교회만 강조해서는 주민들 마음 생각지 않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 목사는 "사람이 변화되면 환경은 치유될 수 있다"면서 "감사와 웃음을 잃어버린 태안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 교회와 우리 총회가 해야할 남은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삭풍에 귀가 얼얼해지는 겨울이다. 겨울에는 태안의 별미 '갱개미(간자미) 무침'이 별미라던데, 올 겨울에는 작년 이맘때 즈음 구슬땀을 흘렸던 태안지역 바다로 '홈 커밍'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몸 가득 싣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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