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 섬긴 남편 뜻 따랐을 뿐"

"어려운 이웃 섬긴 남편 뜻 따랐을 뿐"

[ 피플 ] 고 장규현목사 전역보상금 실로암 아이센터에 기부한 조성애권사

정보미 기자 jbm@pckworld.com
2008년 11월 22일(토) 15:28

고인이 된 한 목회자의 전역보상금이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심어줬다.

한국전쟁 당시 군목이 아닌 일반인 신분으로 군종사역을 감당했던 고 장규현목사(전 푸른동산교회 담임). 장 목사가 별세한 뒤 나라에서 지급된 전역보상금 2백40만 원이 그의 아내 조성애권사(푸른동산교회)에 의해 실로암아이센터 건축기금으로 전달된 것. 이 기금은 아들인 장영수선교사(총회 파송 인도네시아)의 손에 들려 실로암안과병원 김선태목사에게 전달됐다.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전역한 이들을 위해 최근 정부는 실사를 통해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장 목사의 유족으로서 전역보상금을 받은 조 권사는 알차게 쓸 곳을 고심하던 차에 실로암안과병원 병원장 김선태목사를 만났다. 실제가 아닌 방송 프로그램에서 였다.

자신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평생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한 김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조 권사는 무릎을 쳤다. "뜻밖에 주어진 돈, 값지게 써야한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기금을 호소하는 김 목사의 간증은 적확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돌아가신 목사님은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사시던 분이었죠. 남편의 그 뜻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기회가 닿아 전달하게 됐지요."

조 권사에 따르면 장 목사는 한국전쟁 당시 신의주까지 진격해 올라갔다가 포위당한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남한으로 내려왔다. 1954년 5월 17일 제대할 때까지 5년 7개월간 최전방에서 목숨바쳐 참전한 그에게 나라는 54년 만에 명예 퇴직금을 지급했다. 그는 조성애권사를 만나 삼남매를 두고 장로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50대가 되서야 뒤늦게 신학을 공부했다.

그가 목회했던 10년간은 개척교회 목회자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등 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는 삶이었다. 1996년 11월 20일 하늘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의학도들의 연구를 위해 써달라며 시신을 기증할 때까지도 그랬다.

조 권사는 매년 10월, 1년에 딱 한번 귀국하는 아들 장 선교사를 이번에는 더욱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기금을 빨리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조 권사는 "남편의 뜻을 이은 것일 뿐인데 부끄럽다"며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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