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민들레 홀씨로 떠난 강아지똥 권정생

[피플] 민들레 홀씨로 떠난 강아지똥 권정생

[ 교계 ] 일직교회 안수집사 권정생선생, 10억 넘는 인세 북한 굶주린 아동들에게 기부 유언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6월 24일(화) 00:00

   
 
지난 5월 17일은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이 하늘로 떠난지 1주년 되는 날이었다. 사진은 고 권 선생 생가 마루 위에 놓여있는 고인의 사진과 작품들. /사진 정보미기자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 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껴안아 버렸어요.
-고 권정생선생의 작품 '강아지똥' 중에서

【안동=정보미기자】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사랑을 불어넣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일깨워주던 한 동화작가가 있었다. 온몸에는 결핵균이 창궐하여 자신 몸 하나 가누기도 힘겨웠던 그는 오직 신앙안에서 희망을 얻었다.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다섯평 남짓한 흙집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그는 유서에까지 세계 평화를 기도했고, 자신이 지은 책의 인세를 북측 굶주리는 어린이들에게 남겼다. 그리고는 홀홀단신 다시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몽실언니',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선생. 지난 5월 17일은 그가 하늘로 돌아간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가 생전에 출석하던 본교단 경안노회 일직교회(이창식목사 시무)는 하루 앞선 16일 조촐한 추도예배를 가졌다.

올해 시무 4년째로 접어든 일직교회 담임 이창식목사는 그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분과 함께한 3년은 제 인생에 있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신보다 어린이들을 더 사랑했던 권정생집사님은 홀로 여생을 보내다 결국 지병으로 별세하셨죠."

권정생 선생, 아니 일직교회의 권정생 안수집사는 일직교회의 종지기였다. 마을에 거주하는 성도들은 이른 아침 권 선생이 치는 종소리가 '댕- 댕-' 울리면 눈 비비고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교회에 모였다. 이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그가 입원해 있는 대구 가톨릭병원에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들려줬다. 권 선생이 별세하기 3주 전이었다.

   
 
고 권정생선생을 추모하며 다시 세운 종탑. 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일직교회 앞마당에 위치해 있다. /사진 정보미기자
 
"'목사님, 하나님이 예수님이 안계셨더라면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었을 텐데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라고 말씀하셨죠. 그분은 세속화 되지 않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셨어요."

1937년 9월, 도쿄 빈민가의 한 노무자 아들로 태어난 권 집사는 1946년 귀국선을 타고 아버지의 고향 안동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와 고된 가난으로 그의 가족들은 청송, 안동 등지로 뿔뿔히 흩어졌다가 이듬해 12월 안동 일직 조탑리에 정착하게 된다.

가난에 찌들었던 그는 초등학교 졸업후 나무ㆍ담배 장수, 구멍가게 점원 등 돈을 벌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다. 석달간은 배고픔에 시달려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며 구걸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의 나이 29세, 일직교회의 문간방 한 칸을 얻어 16년을 지내다가 83년 인세로 벌어들인 60만 원으로 교회 청년들과 함께 생전까지 거주하던 아담한 흙집을 한 채 짓는다. 빌뱅이 언덕 위에 지어진 이 집은 권 집사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가 일평생 지은 작품은 총 90여편 정도.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유언한 그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그만치 10억이 넘는 유산과 앞으로 들어올 인세까지 북한과 세계 굶주리는 어린이들에게 남겼다.

최소한의 생활비 이외에는 '낭비'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다. 찾아오는 손님이 하도 많아 왠만하면 밖에서 불러도 나오지 않던 권 집사는 "선생님"하면 기척이 없어도 "집사님"하고 부르면 내다 봤단다.

권 집사는 지난 1969년 그의 첫 작품 '강아지똥'이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공모에 당선된 이래 아픈 몸 가운데서도 집필의 열정을 늦추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에서 삶의 위안을 찾았던 그의 모든 작품에는 아픈 것들, 소외된 것들을 따뜻하게 품는 기독교 정신이 투영돼 있다.

'강아지똥'이 빗물에 녹아지듯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떠난 고 권정생집사.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일직교회 한 켠에는 교회를 신축하며 없앴던 종탑이 한 권사의 후원으로 다시 세워졌다. 그가 동화책 한권 한권에 담았던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종소리가 되어 읽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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