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ㆍ3사건 60주년, "道民 구명 교회가 앞장섰다"

제주4ㆍ3사건 60주년, "道民 구명 교회가 앞장섰다"

[ 교단 ] 고 이도종목사 말씀 전하다 순교, 고 조남수목사 주민 3천명 구호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3월 26일(수) 00:00

제주도민들에게 뼈아픈 역사로 남아있는 '제주 4ㆍ3사건'이 오는 4월 3일 60주년을 맞는다. 올해 선교 1백주년을 맞으며 지역민들을 품기 위한 사역으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제주교회들이 4ㆍ3사건 당시에도 제주도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앞장섰던 것으로 알려져 귀감이 되고 있다. 제주도 첫 순교자 고 이도종목사는 제주도민들을 위해 죽기까지 복음을 전파했고, 고 조남수목사는 목숨을 담보로 지역주민 3천여 명을 살려냈다.

   
 
4ㆍ3사건 당시 산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며 순교한 이도종목사가 시무했던 대정교회 앞마당에 위치한 기념비. /대정교회 제공
 
이기풍목사를 통해 복음을 접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제주도민 1호 목회자' 이도종목사는 고산교회를 10여 년간 시무하다 목회자 없이 방치돼 있던 산간지역 교회로 찾아가 순회하며 담임 목회 사역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종목사는 4ㆍ3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경찰과 '재산무장대'의 공방전이 주로 일어났던 산간지역에서의 복음 행렬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재산무장대'에게 잡혀 순교를 당하게 됐다. 최초의 제주도민 목회자인 동시에 첫 순교자인 것이다.

순교 직전 이도종목사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 교회 목사"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으며, 자신들이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면 살려주겠다는 '재산무장대'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이쪽편도 저쪽편도 아닌 하나님 편이다. 나 살자고 하나님께 거짓 기도를 드릴 수 없다"고 말한 뒤 순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도종목사 순교 직후 이 목사가 시무했던 대정교회 교인들은 교회 마당에 그의 순교신앙을 기리는 순교비를 세웠고, 역사정리를 통해 사료적 가치를 발견한 제주노회에서도 지난 2003년 이도종목사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다. 현 대정교회 담임 박경식목사는 "4ㆍ3사건 기간 뿐만 아니라 연중 내내 많은 목회자 및 성도들이 순례지로서 이도종목사님의 기념비를 찾고 있다"면서 "이기풍목사님이 제주 선교의 뿌리라면, 이도종목사님은 열매같은 상징적인 분"이라고 강조했다.

   
 
목숨을 담보로 3천여 지역민들을 살려낸 조남수목사 공덕비./모슬포교회 제공
 
4ㆍ3사건 당시 모슬포교회(기장)를 시무하던 고 조남수목사 또한 3천여 명의 지역민들을 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 모슬포교회 담임 손재운목사는 "당시 '재산무장대'를 일가친척으로 둔 지역주민들이 산간지역으로 식량을 조달하다가 경찰 측에 알려져 몰살당할 위기에 놓였는데, 조남수목사님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경찰서에 자수할 것을 권유해 3천여 명의 지역 주민들을 살려냈었다"고 설명했다.

손재운목사는 "4ㆍ3사건 때 사람을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교회였다"면서 "마을 주민들이 조남수목사님의 공덕비를 세워 그분의 순교정신을 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4ㆍ3사건'이 일어난 1948년 4월 3일, 미 군사력은 '재산무장대'에 의해 발발된 유격전을 제압하기 위해 제주도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약 9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당시 '제주4ㆍ3사건'으로 인해 교회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제주노회사'를 살펴보면 당시 상황이 이렇게 기술돼 있다.

"우리는 원통히도 4ㆍ3사건으로 17인의 성도를 잃었다. 우리는 어떠한 눈물로도 저들을 잃은 슬픔을 씻을 수 없다. 하늘나라에 가서 저들에게 우리의 부족을 이야기할 날을 기다린다. 저들 중 다수는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고 있을 줄 믿는다."

당시 사건으로 희생된 본교단 목회자 및 성도는 '재산무장대'에게 납치돼 피살된 고 이도종목사(대정교회)와 고 허성재장로(모슬포교회)를 비롯한 17명. 파손 및 소각 약탈된 교회와 성도들의 가옥 수도 1백28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때 4ㆍ3사건으로 혼란한 와중에도 제주교회들은 더욱 믿음으로 무장하고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제주교회백년사'를 연구 및 집필하고 있는 한일장신대 한인수교수(신학과)는 "이러한 역사는 단순히 제주만의 역사가 아닌 한국 교회사적 사건으로서의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서 "특히 고 조남수목사의 희생은 한국기독교사 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수교수는 "'제주4ㆍ3사건'에서도 나타났듯이 기독교가 결국 우리 민족역사를 변화시키는 데 누룩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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