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권사

[피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권사

[ 교계 ] 정대협 8백차 수요시위 앞두고 만난 길 권사 "역사속 죄 용서받는 길은 진심어린 사죄뿐"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2월 14일(목) 00:00

   
 
지난 13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수요시위가 8백회를 맞았다. 사진은 일본의 사죄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권사.
 

"진짜 불쌍한 건 일본사람들이에요. 절단난 몸뚱이 되어 버린 우리같은 사람들보다. 저 야만인들 (생각) 마냥 역사가 감춰질 줄 아나. 왜 그렇게 거짓말하면서 진실을 왜곡하는지 모르겠어요. 일본 학생들이 수요시위에 와서 하는 말이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대요. 그러면서 깜짝 놀라요. 학교에서 배우질 않았으니 모르는 거죠. 이제 우리나라 아이들은 점점 기가 살고 일본 아이들은 기가 죽을 거예요. 세계 여러나라에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잖아요. 일본은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겁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역사는 절대 감춰지지 않아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라는 말은 이제 그들에게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지난 1992년부터 16년간 진행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윤미향)의 수요시위가 지난 13일 8백차를 맞았다. 고령에 노환이 겹쳐 하늘로 떠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8백차 수요시위를 마치고 지난 1998년 71세의 나이로 '위안부'에 등록한 뒤 2004년 10월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수요시위에 참석해온 역사의 산 증인 길원옥권사(81세ㆍ생수감리교회)를 본보가 만났다.

당뇨와 골반 통증으로 평소에는 걷기도 힘들다는 길 권사는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청소년들의 "힘내세요 할머니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메시지를 들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이 시원하다고 했다. "생명이 참 질겨요. 하루 세 번씩 약봉지 챙겨 먹고 침 맞으며 교정받고 있는데도 안 아픈 곳이 없어요. 모진고통 다 겪은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길원옥권사는 "일본에서는 '위안부' 생존자들이 모두 죽고 나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진실을 수호할 우리의 자손들이 있지 않느냐"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머리숙여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이상 절대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고 했다.

1928년 10월, 평양북도 희천에서 태어난 길 권사는 1940년 13세의 나이에 만주 하얼빈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다. 길 권사는 공장에 취직 시켜준다는 말만 믿고 따라나선 길이 그녀를 삶의 나락으로 끌어 내렸다고 했다. "작은 방에 떠밀어 놓고 하는 소리가 '큰 소리내면 죽을줄 알아'였어요.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일본 군인이 한명 씩 쉴새없이 들어왔어요. 소리지르기도 하고 울기도 했지만, 울면 운다고 주먹으로 때리고 소리지른다고 구둣발로 짓밟고 심지어는 칼집으로 정수리를 내리쳐 피가 철철 나기도 했어요." 길 권사는 샅 주위에 주먹만한 종양이 생기는 '요꼬네'라는 성병에 걸려 1년 뒤 귀국했지만 그 이듬해 중국 석가장으로 2차 연행됐다.

고국땅은 그의 나이 18세, 1945년 해방이 되어서야 다시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부천에서 만물상 노점상 등을 꾸려 나갔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유로 양자를 들여 신학을 공부시키고 아들을 목회자의 길로 이끌었다. 길 권사의 아들은 현재 인천 옥련동에서 생수감리교회(황선희목사)를 시무하고 있다.
 "당한일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리고 증오심때문에 살 수가 없어요. 하지만 원한 갖는다고 내 몸이 돌아오진 않잖아요. 정대협에서 지난 1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수요시위를 했건만 일본대사관에서는 누구 하나 문 열고 내다본 적이 없어요. 그들이 바른말을 할 때까지 한 마디라도 더 증언하며 알릴겁니다."

길원옥권사는 작년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네덜란드의 앨랜(85세), 필리핀의 메넨(78세) 할머니와 함께 벨기에 독일 영국 등 유럽권 국가를 순회하며 증언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네덜란드 하원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사죄 및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는 길 권사는 "전시체제에 돌입할 경우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잘못을 비는게 아닌 우리나라에 와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앞에서 용서를 구하라"고 역설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