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자선냄비와 함께한 48년, 백선민부교

[피플] 자선냄비와 함께한 48년, 백선민부교

[ 교계 ] "평생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할 거예요" 전도대왕도 소망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1월 08일(화) 00:00

"딸랑 딸랑~." 은은한 구세군 종소리가 들리면 조건반사처럼 누구나 추운 겨울이 온 것을 안다. 그만큼 겨울철에 구세군 종소리가 없다면 그것은 '앙꼬' 없는 찐빵, 단무지 없는 김밥처럼 김 새는 일일 것. 12월이 되면 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키며 오른손으로는 금색 종을 붙들고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사랑의 메시지를 외치는 그들, 48년째 자선냄비를 지켜온 백선민부교(구세군 서울제일교회 출석)도 그중 한 명이다.

"스무살때부터 시작했으니까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직접 도와주진 못해도 이렇게 자선냄비 봉사활동을 하면 모아진 금액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울 수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해요." 그녀는 2년 후면 칠순이다. 자선냄비와 함께 청춘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길렀다. 인생의 3분의 2를 매년 빨간냄비와 동행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듯 대로변에서 하던 자선냄비 봉사는 몇년 전부터 서울시의 배려로 각 역의 지하도에서 할 수 있게 됐다. "옛날엔 엄청 추웠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봉사했으니까요. 지금은 지하도에서도 할 수 있게 되서 감사해요."

그랬다. 폭설이 내리거나 길이 온통 빙판 천지로 변해도 불우이웃을 돕자는 그들의 목소리는 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보통 두 사람이 함께 두 시간 씩 봉사하게 돼 있는데 자기 차례인줄 깜빡 잊고 안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땐 네 시간을 봉사하죠. 점심식사를 못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백선민부교는 다음 차례 봉사자의 이같은 실수 정도는 애교로 봐준다. 봉사 자체에 즐거움과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또 별로 힘들지도 않단다.

연말이 다가오면 각 구세군 교회에서는 자선냄비 자원봉사 시간표를 게시판에 붙여 놓는다. 성도들은 봉사시간이 가능한 때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그렇게 시간표가 이름으로 빽빽해지면 그 해의 자선냄비 봉사 스케줄이 완성된다. 백 부교가 자원봉사를 시작하던 1959년, 당시 10일간만 진행됐던 봉사도 점점 앞당겨져 올해부터는 12월 1일부터 시작했다. 마감시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성탄절 하루 전 24일 저녁까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만 들을 수 있던 구세군 종소리가 이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울려퍼진다. 자선냄비도 독일 'H'사의 지원으로 튼튼하게 탈바꿈했고, 군복을 입고 봉사하던 자원봉사자들도 국내 'ㄱ' 보험사에서 빨간색 누비점퍼를 지급하며 따뜻하게 봉사하고 있다고. 모금액 목표도 작년 25억에서 올해 31억원으로 늘었다. "넘치면 넘쳤지 목표 금액에 미달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옛날엔 구세군 냄비 하나밖에 없어 그랬다 치더라도 지금은 ARS를 통해서나 각종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도와주시는 손길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오랫동안 봉사한 만큼 기억에 남는 후원자들도 많다. "3년 전 시청역 지하도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에는 한 직장인이 3천8백만 원이 든 두꺼운 봉투를 들고 왔어요. 사장님이 자선냄비에 넣고 오랬다면서. 또 한번은 1백만 원이 든 봉투가 서울 전역에 있는 자선냄비 속에서 발견돼 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었죠. 수표를 넣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한편, 자선냄비를 매몰차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볼때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종을 치면서 종과 함께 울어요. 밍크코트 걸치고 가는 돈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자선냄비를 그냥 지나치거든요. 월남치마 입고 등에는 애를 업고 가는 이들이 만원을 넣고 가요. 어려워 보이는 이들이 더 크게 베풀때 감동을 받아 또 눈물이 나고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죠."

이렇게 한푼 두푼 모아진 소중한 기금은 힘겹게 겨울을 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지원되지만, 연중 내내 구세군대한본영(사령관:전광표)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 양로원, 노숙인공동체 등 산하 복지기관에 후원금으로 지원되고 있다. 또 중국 연변의 선천성심장병 환우 어린이들을 데려와 수술해 주고, 수해나 재해를 입은 지역에 구호물자를 싣고 달려간다.

자선냄비 뚜껑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표어가 적혀있다. 백 부교는 "자선냄비의 목적은 결국 영혼 구원"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는지 간경화에 대형사고를 세 번이나 겪었는데도 살려주셨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봉사할 거예요. 자선냄비는 내 오랜 벗이니까요." 백 부교는 자선냄비 봉사와 더불어 남은 여생 전도를 하며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녀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이 거리를 지키고 있기에 아직은 살맛나고 더 살아봐도 좋을 세상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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