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 여신협, '여성의 눈으로 본 1907 평양 대부흥운동' 주제로 여성신학정립협의회 개최
한 상에서 남자와 함께 밥을 먹지 못했던 여성들이 평등한 지위와 주체성을 갖게 된 것은 한국선교 초기 성경교육의 긍정적 영향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흥운동의 주체는 여성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여신협 제21차 한국여성신학정립협의회. | ||
이어서 '1907, 그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주제로 발제한 채승희박사(장신대 강사) 역시 "여성들은 집회의 인도자 뿐 아니라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치며 지도력을 행사했고, 연합집회에서 남성들로부터 대표기도를 부탁받았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하며 "새벽기도와 성미운동이라는 한국교회 만의 독특한 신앙형태 또한 여성들의 실천으로 토착화 된 것"이라면서 부흥운동 확산의 모체는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시기에 일명 '전도부인'이라 불린 여성지도자들은 교회내 여성지도자들을 배양하고 폭발적으로 부흥운동을 일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영미교수는 이러한 성경의 권위로 인해 해방적 복음이 되지 못한 채 한국교회가 제도화 과정에서 여성을 보조적 역할로 국한시켰고 그 폐해가 현재의 교회 모습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이영미교수는 "초기 성경해석이 여성들의 주권의식 형성에 도움을 주고 여성들을 기하급수적으로 조직화 하는데 동기부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의 문자적 권위가 강조되며 여성의 안수를 제외시키는 등 여성을 교회지도력에서 제외시켰다"는 부정적 의견도 제시됐다.
지난 1983년 제1차 여성신학정립협의회를 개최한 여신협은 여성신학을 정립하고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해마다 그 해의 특정 주제를 찾아 토론회를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