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주체성 확립, 초기 한국 선교가 도왔다

여성 주체성 확립, 초기 한국 선교가 도왔다

[ 교계 ] 여신협, '여성의 눈으로 본 1907 평양 대부흥운동' 주제로 여성신학정립협의회 개최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12월 14일(금) 00:00

한 상에서 남자와 함께 밥을 먹지 못했던 여성들이 평등한 지위와 주체성을 갖게 된 것은 한국선교 초기 성경교육의 긍정적 영향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흥운동의 주체는 여성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여신협 제21차 한국여성신학정립협의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공동대표:성명옥 이은선, 이하 여신협)는 지난 8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여성의 눈으로 본 1907 평양 대부흥운동'을 주제로 제21차 한국여성신학정립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날 모임에서 '한국 초대교회 성경해석과 여성'을 주제로 발제한 이영미교수(한신대 구약학)는 "한국선교 초기의 성경교육은 단순한 전도의 차원을 넘어 한국여성들에게 교육을 통해 자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면서 "무디성경학원에서 모델을 찾은 한국선교는 평신도 중에서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1907, 그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주제로 발제한 채승희박사(장신대 강사) 역시 "여성들은 집회의 인도자 뿐 아니라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치며 지도력을 행사했고, 연합집회에서 남성들로부터 대표기도를 부탁받았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하며 "새벽기도와 성미운동이라는 한국교회 만의 독특한 신앙형태 또한 여성들의 실천으로 토착화 된 것"이라면서 부흥운동 확산의 모체는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시기에 일명 '전도부인'이라 불린 여성지도자들은 교회내 여성지도자들을 배양하고 폭발적으로 부흥운동을 일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영미교수는 이러한 성경의 권위로 인해 해방적 복음이 되지 못한 채 한국교회가 제도화 과정에서 여성을 보조적 역할로 국한시켰고 그 폐해가 현재의 교회 모습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이영미교수는 "초기 성경해석이 여성들의 주권의식 형성에 도움을 주고 여성들을 기하급수적으로 조직화 하는데 동기부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의 문자적 권위가 강조되며 여성의 안수를 제외시키는 등 여성을 교회지도력에서 제외시켰다"는 부정적 의견도 제시됐다.

지난 1983년 제1차 여성신학정립협의회를 개최한 여신협은 여성신학을 정립하고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해마다 그 해의 특정 주제를 찾아 토론회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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