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않는 목회 원칙

변치않는 목회 원칙

[ 목양칼럼 ] 목양칼럼/박금호(완)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7년 11월 22일(목) 00:00

 

박 금 호
광천교회 목사

그 시절 목회하던 교회의 장로님은 열 일곱 분이 계셨다. 모두가 심성이 곱고 무던하신 분들로 장로로서 사역은 계신 듯 안 계신 듯 무리가 없었다. 잠잠히 자기의 몫을 감당해 나가셨다. 사회적 신분이나 배움은 물론 경제력까지 모두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 조금 특출한 분이 한 분 계셨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성실하며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고, 어쩌면 다른 열 여섯 사람의 몫보다 더 많은 일을 할 때도 있는 분이었다. 이런 장로님에 대해 다른 분들도 시기하거나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일함에 대해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20년 이상의 선배 장로님도 귀히 여겨주시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교회는 평안할 수밖에 없었고 당회는 가족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는 가운데 교회는 예배당을 이전 신축하게 되었고 해가 갈수록 부흥해 갔다, 그러면서 목회자와 성도, 아니 당회는 일종의 밀월의 관계를 즐기는 것처럼 행복한 때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특출한(?) 장로님이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면담을 청했다. 조용한 곳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장로님이 말씀하시면 제가 듣고 메모한 뒤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공직에서나 사회생활을 할 때 항상 오너를 위해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하는 책임자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 '장(長)'이 보호되고, 그분의 뜻을 아래로 전달해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니, 목사님께서도 어떤 일을 계획하시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다른 장로들과 의논해서 일을 원만히 처리해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목사님도 편하시고, 대접 받으시고, 목사의 권위가 서서 위계질서가 확립되고 결국 교회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들이었다.

내가 얘기 할 차례가 되었다. 볼펜을 들고 종이 위에 "제일 위에 목사, 그 바로 밑에 그 장로님 그리고 그 아래 열여섯 장로 이렇게 투망처럼 조직 관리를 하자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바로 이해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님의 목회가 얼마나 편해지겠습니까? 제가 목사님의 총알받이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간곡한 어조로 "장로님, 그런 조직 관리는 비신앙적, 비성서적, 비민주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조직관리가 한 두 사람에게는 좋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이나 성도 모두는 기뻐하지 않는 일입니다. 설령 그런 조직관리가 내 목회를 편하게 할지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하며 단호하면서도 분명하게 내 의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덧붙여서 "장로님, 지금 하시는 것처럼 헌신 충성하십시오. 지금 장로님이 섬기시는 모습에 모두가 행복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장로님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감추려고 했던 비수와 같은 한 마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장로님, 그 총알받이가 총을 거꾸로 잡고 오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장로님은 더 이상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대화는 끝났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내 목회는 골고다의 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변치 않는 네 가지의 목회원칙이 있다.

첫째 성서에 위배되지 않고, 둘째 본 교단 신학과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며, 셋째 윤리와 도덕율에 저촉되지 않으며, 넷째 보편타당성이 있으면 곧 비민주적이지 않는 한 목회는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로 목양의 모든 사역을 주도하게 하라.

이러한 나의 소신을 전근대적, 비민주적, 평신도와 함께하는 사역이 아니라고 주장하십니까? 졸저이나 '파트너쉽 목회 모델에 관한 연구'가 나의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이고 내 목회철학이라 할 수 있다. 내일도 목사안수식의 권면을 부탁 받았다. 나는 안수 받은 후배 목사들에게 '성직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목회의 프로(Proffesional)가 되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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