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가해자 용서하고 사랑전한 고 김선동집사 가족

[피플] 가해자 용서하고 사랑전한 고 김선동집사 가족

[ 교계 ] 평소 선행 실천했던 남편 뜻 이어 가해자 위해 기도 선처 호소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11월 08일(목) 00:00

"창수는?"
"괜찮습니다."
"......"

고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이 한마디 만을 남긴채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소천했다. 죽음의 위기에서 의식을 잃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외손자를 먼저 걱정했던 고 김선동집사(순천세광교회). 그의 삶은 늘 이렇게 자신보다 다른 이가 우선이었다.

김선동 집사는 지난 9월 10일, 유아원을 마친 손자(창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레 변을 당했다. 좁다란 골목길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교통사고, 가해자는 친지의 차를 빌려 운전연습을 하던 여성 초보운전자였다. 가속페달을 브레이크인줄 알고 잘못 밟아 일어난 사고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만큼의 대형사고였다.

   
 
지난 9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 고 김선동집사의 생전 모습과 가해자를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한 부인 황의분권사.
 
하지만 유족들의 뜻은 달랐다. 고 김선동집사의 부인 황의분권사는 슬하의 6남매를 설득해 가해자가 구속되지 않고 불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가해자의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선처해줄 것을 경찰에게 부탁했다. 유족들이 가해자에게 받은 건 거액의 합의금이 아닌 그녀의 이름 석자와 주소 뿐. 가해자가 비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게 된 황 권사가 그녀가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향년 78세로 가족들의 품을 떠난 김 집사. 지난 9월 17일 진행된 고인의 발인예배에서 부인 황 권사는 자녀들에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이 세상 살아갈 때 꼭 3번은 생각하고 말을 하라"며 인생에 있어 당부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유난히 아버지 사랑이 각별했던 고 김 집사의 차녀 김미자집사(46세)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누구나 부모를 존경하겠지만 내게 아버지같은 분은 또 없을 것"이라며 고인을 회상했다. "아버지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해요. 존경하는 두 분을 둬서 참 행복해요. 아버지 입관식 때 어머니는 울지 말고 다함께 찬송을 부르자고 하셨어요. 또 손을 맞잡고 남은 가족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끔 해달라고 기도하셨죠. 그 분(가해자)이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해요."

교회에서도 김 집사의 따뜻한 사랑은 이어졌다. "지난 2000년 우리교회(순천세광교회)가 매곡동에서 지금의 터전인 저전동 성전으로 옮길 때 일이예요. 성전 리모델링 공사로 한창 바쁘던 시절, 당시 교우들은 건설회사 직원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호박, 감자, 푸성귀, 고기 등을 교회 식당에 제공했죠. 그때 김선동집사님은 매주 한번씩 자전거를 타고 달걀 30개들이 두 판을 가져오셨어요." 평소 고 김선동집사와 함께 우애를 다지던 김수진장로가 고인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김수진장로는 "김선동집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봉사하고 있던 교우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아주며 격려 및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인정이 넘치고 늘 선한 일에 앞장섰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주일 예배 후 교회에서 나누는 애찬시간에도 그는 베풀기를 즐겨했다. "65세 이상은 식권없이 식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권을 내고 먹어야 밥맛이 더 좋다며 자주 식권을 냈어요. 또 앞 뒤를 살피며 대접할 사람을 물색하곤 했죠. 베푸는 것은 김 집사의 기쁨이었어요."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한다. 남은 가족들이 가해자에게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관용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생전에 예수님의 사랑을 뿌리고 갔기 때문이란 것을. "정이 많으셨던 분이세요. 아버지를 싫어하는 분이 없었죠.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셨어요. 매일 아침 전화로 안부를 물어보셨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나네요. 하나님 품에서 더 평안히 계실 거라 믿어요." 넷째 딸 김기하 씨(38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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