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온가족 참여해 필사성경 만든 이순동장로 가족

[피플]온가족 참여해 필사성경 만든 이순동장로 가족

[ 교계 ] "기회되면 또 쓰고 싶어요" 필사동안 받은 은혜 말로 다 못해, 주변에 적극 권유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10월 09일(화) 00:00

3만1천73쪽에 달하는 거대한 성경책이 거실 한 켠에 놓여있다. 두꺼운 흑색 표지를 여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손글씨 일색이다. 한글 뿐만 아니라 한자에 영어도 있다. 정자(正字)부터 삐뚤빼뚤한 글씨체, 종이를 오려붙인 흔적과 오자를 지운자국도 무수하다. 하지만 한 권을 제작하기 까지 들인 정성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어설픈듯 보이는 이 성경은 의외로 격(格)이 있고 멋이 있다.

   
 
1년여에 걸쳐 온가족 28명이 함께 성경 필사본을 제작한 이순동장로(좌측 두번째·은광교회 출석) 가족.
 
웅장한 겉모양새 만큼이나 이름도 거창한 '가보성경(家寶聖經)'. 이순동장로(85세ㆍ은광교회 원로)의 온가족, 28명이 함께 만든 수제성경이다.

"성경 필사를 마칠 무렵에는 손자 호범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글씨를 못쓰는 호범이(1세)와 그의 형 호준이(3세)는 부모의 도움으로 점 하나를 찍으면서까지 가족성경필사에 참여했죠. 딸 아들 손자 손녀 모두 참여해서 쓴 우리가족에겐 아주 소중한 성경책입니다." 성경필사본을 완성한 그 날이 생각났는지 이순동장로가 감격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제작기간만 1년이 걸렸다. 뉴질랜드,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들도 누구하나 빠지지 않았다.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온가족이 참여한 필사성경, 가족애를 발휘해 만든 이 성경은 이순동장로 가족에겐 더할나위없이 소중한 보물과도 같았다.

   
 
총 3만1천73쪽에 달하는 성경필사본.
 
가족성경필사본은 막내아들인 이상수장로(뉴욕한민교회 출석)의 권유로 시작됐다. 이상수장로는 성경필사 후기에서 "작년 4월 입원하신 아버님 병상곁에서 시중을 들며 부모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어려운 고비마다 함께 동행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에, 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모습이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성경필사를 구상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순동장로 부부는 창세기와 마태복음, 큰 딸인 이정숙권사(은광교회) 부부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ㆍ요한복음을 맡았다. 이렇게 성경 66권이 이순동장로의 자녀 2남3녀 각 가정에 고루 배분됐다.

이정숙권사는 성경필사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전했다. "보통 하루에 성경필사 종이 3장을 쓰는데 2시간 정도가 걸려요. 보기에 예쁘게 써야한다는 생각에 작업이 더뎌지죠. 또 3장 정도 쓰면 팔이 후들거리고 마비된 것 같이 아파서 더이상 못쓰죠. 원래 더 빨리 쓸 수 있었는데 팔이 아파서 속도가 안나더라고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이 장로의 손녀 손자들은 한글을 몰라 영어로 성경을 필사했다. 펜은 검정색으로 통일할 것을 약속했지만 쓰다보니 파랑색으로 쓰여진 부분도 생겨났더란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한참을 쓰고 있는데 모르고 앞장에서 한 쪽 전체를 비워놓고 쓴거예요. 이미 너무 많이 진행한 탓에 다시 처음부터 쓸 수도 없었죠." 이순동장로의 이런 실수 덕분(?)에 성경필사본 중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지난 8월 2일에는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 이를 기념하는 '성경필사 기념예배'를 가졌다. 이순동장로의 가족과 은광교회 담임 이동준목사 및 타교회 목회자들, 지인들이 손님으로 초청됐다. 감명을 받은 이동준목사는 이날 이후 교인들에게 가족성경필사를 장려하며 교회내에 성경필사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고.

성경을 필사하는 동안 이순동장로 부인 강대희권사도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며 가족들은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혹한을 견딘 나무가 새움을 틔우듯이 고통은 가족들을 더욱 견고한 사랑으로 성숙케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와 나란히 장로가 된 아들들과 목회자, 권사가 된 자녀들.

   
 
지난 8월 2일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 '성경필사 기념예배'를 가진 후 기념촬영한 이순동장로 가족 사진.
 
성경필사본은 총 7개를 제작해 한 권은 교회에 기증하고 나머지 6권은 각 가정에 한 권 씩 맡겨졌다. 이번엔 성경책의 이름이 바뀌었다. '가보성경(家寶聖經)'의 '보(寶)'가 계보를 뜻하는 '보(譜)'로. 큰 사위 김교국장로는 "믿음의 유산이 부모님과 당대의 자손 뿐 아니라 이어지는 후손들에게도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고 전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 5:16~18)" 말씀을 가훈으로 돈독한 정을 나누는 이순동장로의 가족. "죽기전에 기회가 된다면 또 한번 쓰고 싶어요. 성경을 필사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은혜를 받았거든요. 아내와 저도 그 은혜로 건강을 차차 회복하고 있고요. 누구에게나 적극 권하고 싶어요." 검지손가락에 박힌 굳은살이 이순동장로 가족들의 소중한 훈장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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